아이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화장실 막히게 하기'다. 똥을 엄청나게 많이 싸서는 아니고 (가끔 그럴 때도 있지만), 보통은 휴지를 많이 써서 그렇다. 제 딴에는 손에 묻기 싫으니 많은 양의 휴지를 쓰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변기 안에 휴지가 꽉 차기 일쑤다. 일단 화장실이 막히고 나면 배시시 웃으며 미안한 태도로 아빠를 찾는다. 그럼 나는 성질을 내며 막힌 화장실을 뚫는다. 긴 사투 끝에 나와서 잔소리를 한 바가지 쏟아낸다.
그러니까 제발 휴지 좀 아껴 쓰라고!! 손에 좀 묻으면 어때. 5학년이나 되어서 아직도 그러면 어쩌냐 등등.
그러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아빠가 휴지를 많이 쓰는 걸 유독 싫어해.
나는 휴지에 진심인 편이다. 다른 물품에 대한 씀씀이에 대해서는 관대한데 유독 휴지 사용은 조금의 낭비도 참기 어렵다. 두루마리 휴지의 한 칸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내가 걱정할 만큼 큰 낭비가 되는 금액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한 칸, 어른 손 채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백색의 사각 종이를 한 장 쓰는 것이 못내 아쉽다. 막 쓰면 안 될 것 같다. 그에 비하면 갑 티슈에 들어 있는 더 큰 사이즈의 티슈에는 관대하다. 그렇다고 이것도 마구 뽑아서 쓰기는 싫다. 환경에 대한 고민도 아니고 형광 물질에 대한 걱정도 아니다. 그냥 휴지를 휴지처럼 써버리는 행위가 싫다. 두루마리 휴지에 대한 생각은 쓸데없이 집요하기만 하다.
어렸을 적 집안이 어려웠던 기억은 없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삶도 아니었다.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삼 남매와 할머니의 여섯 식구가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월급으로 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많은 것을 아껴야 했다. 형이 자라서 못 입게 되는 옷을 물려받는 것이 일상사였는데 그걸 꽤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딴에는 형의 옷이 좀 멋져 보였나 보다. 어쨌든 아끼고 사는 생활에 대해 많은 기억들과 생활 습관이 있었을 텐데 유독 내가 물려받은 것이 바로 휴지 (아까운 줄 알고) 아껴 쓰기가 되었다. 왜 그런지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기억 속 아버지의 휴지 사용은 늘 필요한 만큼 잘라서 쓰기였다. 심지어 한 장의 휴지도 필요하면 끝만 잘라서 쓰시던 기억이 있다. 원래 쓰임보다 더 뜯어내면 남은 부분은 접어서 잘 두었다가 다음에 쓰곤 하셨다. 당신의 그런 습관은 지금도 유효하다. 기억에, 너는 꼭 휴지를 아껴 쓰라고 강요하신 것이 없다. 내가 보고 자란 것은 당신의 그런 작은 일상이었다. 그래서일까, 두루마리 휴지의 칸칸은 일종의 향수鄕愁다. 과거의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는 아니다. 그냥, 그걸 막 쓰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행위로 굳어져버린, 내 마음속의 박제다. 아버지와의 연결 고리다. 갑 티슈에 반응이 없는 것은 어렸을 때 써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인과관계다.
누구나 무언가 하나에 꽂히는 것이 있듯, 부지불식간에 부모의 어떤 습관을 물려받게 되듯 그저 그뿐이다.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어 무엇하랴. 이유를 알았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이제 와 딱히 바꾸고 싶지도 않다. 내 아들은 휴지 한 칸을 아끼라고 말하던 나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할까. 녀석의 기억 속에는 막힌 화장실을 성질내며 뚫어주던 아빠의 뒷모습으로 남을지 모르겠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