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Eyes wide shut은 큐브릭 감독의 마지막 작품으로, 톰 크루즈-니콜 키드먼이 실제 부부인 상태일 때 출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꽤 오래 전이다. 1999년 작품이니 무려 20년 전이다. 대감독의 유작이라는 특징, 셀럽 부부의 동반 출연이라는 화제성에 더해서 파격적인 19금 장면이 들어간 것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다. Eyes wide shut을 머리에 떠올리면 조금은 처연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가 깔리고 니콜 키드먼이 옷을 벗는 뒷모습으로 등장하는 첫 장면이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넷플릭스에 소개 되었길래 예전의 추억을 소환하며 다시 보았다. 처음 접했던 때로부터 20년이 지나 결혼 생활 14년 차인 나에게 이 영화는 전혀 다르게 읽혔다. 중년 부부의 권태로움, 인간의 욕망, 그리고 질투와 믿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잘 나가는 의사(남편)와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육아에 집중하는 아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어쩌면 평범한 부부이다. 파티에 가기 전,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묻는 아내를 쳐다도 보지 않고 예쁘다고 말하는 장면 만으로도 이들의 관계가 간단히 설명된다.
권태로움을 깬 시작은 아내의 뜻 밖의 고백으로 부터다. 우연히 마주친 한 남성에게 마음을 빼앗겨 가족과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단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는 이야기. 남편은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이었지만 아내의 속마음에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배신감과 질투에 사로잡혀 이성적인 판단의 끈을 놓아 버린다.
이후 영화는 질투심에 불타 거리를 방황하면서 닥치게 되는 남편의 <꿈(악몽) 같은> 위험한 여정을 차분히 보여 준다. 아내의 말에 자극 받아 우연한 유혹으로 시작된 남편의 여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내 때문에 위험에서 구출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 나가기로 결심한 탓인지, 억눌렸던 욕구를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 때문인지 호기심과 질투는 결국 그를 엄청난 위험으로 몰고 간다. 관객 입장에서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도 폭주 기관차처럼 계속 앞만 보고 달린다. 이쯤되면 짧은 순간 일탈을 꿈꿨지만 그동안 아무 말 없이 가정을 지키며 살아 온 아내가 가식적인 것인지, 자기 욕망과 안전을 주체하지 못하고 돌진하는 남편이 더 가식적인 삶을 살아온 것인지 헷갈린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도운 사람으로 부터 진실을 알게 된 빌(톰 크루즈)은 마지막 남은 멘탈의 끈을 겨우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잠자는 아내의 곁에 놓인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한 순간, 그는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음을 느낀다. 결국 아내에게 그동안의 사건들을 솔직히 고백한 뒤, 둘은 다시 차분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다짐한다.
평범한 부부가 그러듯 함께 잠자리를 가지면서 말이다.
딸을 위해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나간 백화점에서 둘이 나누는 마지막 대화 장면이 무척 의미있게 해석된다. 결혼 전, 젊은 시절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대사들이다.
부부의 세계에서는 안정적인 가정을 가진 이태오가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 여타 불륜 드라마에서는 남편이, 아내가 서로의 일상을 파괴한다. 중년 부부의 느슨한 일상은 깨지기 쉬운 유리 그릇인가 보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쇼윈도 부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익숙한 서로의 모습을 의식적으로라도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지 싶다. 서로가 가진 욕망을 누르면서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