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 쓰는 남자

by nay

매년 아내의 생일이 다가오면 생일 축하 카드를 하나 마련한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하는 인사를 남긴다. 성의 없는 몇 줄이 아니다.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운다. 결혼 후 단 한 번의 거름도 없이 손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주로 겨울에 쓰게 되는데 이유인즉 아내의 생일인 11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에 모두 카드를 써서 건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통 연말에 쓰게 되니 일 년의 안부를 한꺼번에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쓸 말이 많았다. 카드를 준비하는 마음의 부담도 크지 않았는데 해가 갈수록 마음가짐이 점차 달라짐을 느낀다. 특히 작년엔 처음으로 '올해는 무슨 얘기를 쓰지'하는 걱정을 했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에이. 그것보다는 이젠 서로 익숙해진 일상, 별다를 것 없는 루틴한 모습들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럼에도 펜을 잡고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다 보니 무언가 쓸 것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것도 글을 쓰는 일이라 브런치에 글 쓰듯 딴에는 훈련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차마 아내에게 올해는 내용을 채우기 어려웠다 말을 할 수 없었다. 별로 티는 나지 않았는지 카드를 받은 아내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축하 카드는 그녀가 마련해 둔 전용 공간 - 신발 상자 하나를 비우고 매년 받은 카드를 모아둔다 - 으로 쏙 저장되었다.


어느 날은 집안에서 각자의 자리에 앉아 서로 조용히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가만 생각해 보니 부부 사이에 대화가 문득 낯설게 생각되었다. 그 생각은 계속 꼬리를 물고 커져서 문득 같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되었다. 부부 사이에 주고받을 말과 대화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하게 되지만 카톡이나 메시지로 주고받는 것도 많은 요즘이다. 같은 공간에 있다 해도 연애 시절만큼 궁금한 것도,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질 필요가 없다. 서로에 대한 관심보다는 먹고사는 문제, 자식 문제, 부모님 걱정 같은, <우리 사이> 보다 <우리를 둘러싼 것>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각자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 서로를 케어하는 관심은 줄어들었다.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고작해야 영양제를 잘 챙겨 먹었는지, 혈압과 혈당은 어떤지를 물어보는 것일 뿐.




14년 넘게 같이 살면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가 싶다가도, 막상 무슨 말로 생일을 축하해 줘야 하는지 걱정했던 작년 모습을 떠올리니 그녀에게 더 관심을 갖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그녀에게 쓰는 생일 편지는, 생일을 핑계 삼아 잠시라도 정성스럽게 아내를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진지하게 그녀에 대한 감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매개체다. 여전히 길을 걷다 손을 잡으면 설레는 감정이 드는 것을 보면, 늘 먼저 스킨십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그녀를 더 사랑하는 것이 맞다 보다. 그러니 편지도 꼬박꼬박 쓰는 것이겠지.


솔직히 언제까지 이렇게 카드를 써야 할까, 언제 적당히 아름답게(?) 끝내야 하나 고민 안 해 본 것은 아니나, 막상 카드 한 장 없이 생일 축하 노래와 케이크만으로 넘어가기엔 내 마음 또한 편치 않다. 사랑하는 만큼 마음을 담아 올해도 어김없이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를 남길 것이다.



keyword
이전 14화15년을 함께 살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