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을 맞았더니 회사에서 이틀의 휴가가 나왔다. 주중 휴가의 여파였을까. 회사에 갔더니 평소에는 아무 일 없다가 여기저기서 말을 걸지 않나, 답해야 할 메일이 급격히 쌓이고, 하필 오늘은 외근까지 잡혀 있었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대응하고 오후 3시쯤 되니 비로소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겼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다. 자율근무제 이후 출퇴근 시간을 평소보다 앞당겨 쓰게 된 이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내보다 일찍 귀가하게 되었다. 저녁 준비는 당연히 내 몫이 되었다. 기껏해야 찌개 좀 끓이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 내어놓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오늘도 별다를 바 없다. 아직 시간이 있어 건조대에 남아 있던 빨래를 개어 정리하는데 어젯밤 배고프다며 참외를 깎아먹은 아내의 흔적 - 참외 겉에 붙어 있는 스티커 - 이 소파에 남아 있음을 알아차렸다. 바로 치우면 될 것을 꼭 저렇게 둔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항상 '나중에 치우면 되지 않느냐' 한다. 치우겠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다. 어쨌든 살짝 짜증이 오른다. 분명 내가 치워도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나갈 일이다. 치울까 말까 고민하다 두기로 하였다. 집안일은 참지 못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다.
이윽고 아내가 돌아왔다. 당뇨가 있는 그녀는 가급적 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혈당을 적정선으로 유지하려면 루틴한 식사 시간이 좋기 때문이다. 아들은 학원 때문에 7시 반은 되어야 집에 온다. 가급적 아이 혼자 밥을 먹게 하지 않으려다 보니 항상 기다리는 쪽은 내가 된다.
'저녁은 뭐 먹을까'
'엄마가 갈비탕 해 놨데'
그렇다. 다행히 장모님이 우렁각시 마냥 차려주고 가신 반찬과 국이 많은 날이다. 갈비탕 이야기를 하였기에 냄비에 덜어 데워먹을 준비를 해 두었는데 오자마자 대뜸 인덕션 위의 보이는 돼지갈비를 먹잔다. 이 포인트에서 짜증이 한 스푼 추가 되었다.
역시 장모님이 사다 놓으신 아보카도. 너무 많이 익었다며 어떡해~ 아까워~ 하면서 아내는 2개나 흡입하듯 해 치웠다. 잘 파먹은 잔해-껍질-는 싱크대 옆에 고이 남겨 두는 그녀.
이것저것 식탁에 차려 두니 말없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눈과 손은 바쁘게 핸드폰을 오간다. 잠깐 백신에 대해 대화한 것이 전부. 맞은편에 앉은 내가 보이지 않나 보다. 저렇게 지금 봐야 할 것이 많을까. 나도 그녀처럼 핸드폰을 들어 별로 집중하지도 않으면서 이런저런 글을 살펴본다. 엄마가 해 준 돼지갈비와 반찬이 맛난 지 찹찹 거린다. 입에서 나는 소리마저 거슬린다. 슬쩍슬쩍 눈짓으로 그녀에게 시그널을 주지만 받은 체도 하지 않는다.
"(천장에) 팬 좀 틀어줄래?"
너털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의 의미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녀도 머쓱한 웃음으로 대답하였다. 천천히 일어나 리모컨을 누르고 오니 '나만 더운 거야?' 그녀가 묻는다. 그렇다고 짧게 대답해 주었다.
그녀의 식사가 끝났지만 아직 아이는 오지 않았다. 이미 식어버린 돼지갈비를 다시 데우려고 일어나 그녀 뒤에 서서 몇 가지 짜증의 요소를 떠올려 본다. 뭐라고 할까 말까. 앞으로 자기 먹은 흔적은 좀 치워주면 좋겠어. 아니.. 그렇게 말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해볼까? 항상 내가 치우면서 뭐라고 하면 '자기가 너무 빨리 치워서 그런 거야'라고 대꾸하니 안 치우고 그냥 둬볼까. 아냐.. 집안일은 내가 많은 부분 담당하지만 또 다른 많은 일들은 아내가 하니까, 이건 공평한 거야. 별별 생각이 든다.
그러다 불현듯, 같이 사는 것이 어딘가 허망하다.
고작 몇 개의 흔적들. 지나간 자리를 알 수 있는 쓰레기, 오자마자 바닥에 내려 둔 가방, 벗어 둔 옷가지 때문에 싸우거나 헤어지는 것이 정당할까?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한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을 '싸움'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말다툼이지만 어쨌든 스트레스는 나의 몫이 더 크지 않았나 싶다. 깔끔한 아내지만 치우는 속도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보니 먼저 지치는 것은 늘 나였다. 빨리 버렸다고 혼나기도 한다. 억울하다. 치우는 것도 죄라면 죄다. 얼마 전에는 택배를 보내는데 안에 완충재로 쓸 뽁뽁이가 없다며, 제발 그런 것 좀 빨리 버리지 말라고 한 소리를 들었다.
15년 동안 살을 맞대고 살았는데 별 것 아닌 일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우습다. 이렇게 지치는 날엔 감정의 폭이 커지는 것에 당혹스럽다. 살아보니 부부는 각자의 생각이 있고 삶의 패턴이 나이와 함께 더 견고해짐을 깨닫는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고, 나도 그녀를 잘 알고 그녀도 나를 잘 안다. 서로의 포인트를 알기에 그걸 인식하면서 지내지만 어느 한쪽이 마음의 균형을 잃어버리는, 오늘 같은 날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생각의 끝에 그냥 혼자 사는 것이 어떨까 싶은 마음은 못내 당혹스럽다. 배우자의 외도나 경제적 이유, 함께 하는 삶을 망가뜨린 어떤 커다란 귀책사유도 아니라, 고작 서로 싫어하는 행동을 조금씩 한다고 말이다. 못마땅한 것을 함께 조금씩 양보해 가는 것이 결혼 생활의 묘미이자 미덕 아니겠는가.
쓸모없는 생각은 아이의 귀가와 저녁 식사로 끝이 났다. 내 위장에 밥이 들어가니 그제야 좀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당이 떨어지면 이렇게 위험하다. 내 마음을 달래주는데 탄수화물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양껏 식사를 하고 나니 쳐진 기분도 좀 돌아왔다. 그러나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아까 지나친 아보카도 껍데기가 눈에 다시 띄었다.
하아.
내 짧은 탄식. 눈치 빠른 그녀는 쪼르르 곁에 다가와 왜 또 얼굴이 그래~ 묻는다. '내가 설거지 할까?' 한다. 그래, 이게 그녀지. 살살 달래가며 나를 조련하는 사람. 꽁했던 마음의 실타래를 푸는 한쪽 끝이 삐죽 튀어나옴을 느낀다. 괜히 심술부릴까 하다가, 소파에 둔 쓰레기나 치우라고 하였다.
'에이 겨우 그거 때문이야?'
아니거든. 아까 잠시 혼자서 서운했던 감정을 슬쩍 토로해 보니 역시나 아깐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눈치다. 쳇. 15년을 살고도 나를 잘 모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