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아이의 짧은 방학이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느라 일찍 일어날 필요 없이 하루를 약간 게으르게 시작했다. 늘 도시락 준비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먼저 주방으로 가야 했던 아내도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며칠 동안 갓 자고 일어난 아내의 얼굴을 반갑게 볼 수 있었다. 막 깨어난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화장기 없이 차분하고 얌전해 보였다. 세상 착한 얼굴이다.
"참 착해 보인다"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나도 모르게 아내 앞에서 바로 말을 해 버렸다. 내 얘기를 듣더니 아내가 웃으며, 그럼 다른 때는 안 착해 보인다는 거야?라고 그런다. (또 한 번 나도 모르게) 동의의 고갯짓을 했다. 평소 낮에 보는 얼굴과 잠을 푹 자고 일어난 그녀의 인상은 같은 얼굴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아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
언젠가 50대 임원들의 얼굴을 한 번 잘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웃는 상이 아니라 항상 수심에 가득 차거나 인상을 찌푸린 상태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후 미팅이 있을 때 가만히 관찰해 보니, 과연 그 말대로 미간에는 주름이 졌고 입술은 불독처럼 양 끝이 내려와 앉았다. 나 지금 불만이 많아, 그런 인상이다. 과거에 바로 옆에서 모셨던 상무님의 얼굴도 늘 그랬다. 연봉과 직위는 높으나 행복이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그런 얼굴. 그 이후 임원들과 회의를 할 때면, 비록 깨지거나 혼나는 날이 있더라도 조금 덜 상심한다. 그들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회사를 떠난 임원들이 대부분 듣는 첫인사가 '얼굴 좋아지셨네요'라는 말이란다. 왜 그런지는 익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무언가 보여 줘야 하는 임원의 부담감을 내가 감히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트레스가 주는 마음의 짐은 고스란히 얼굴에 다 묻어난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얼굴이 주는 인상은 중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남는다.
긴 잠을 자고 나면 잠시 동안이지만 마음속에 아무런 잡념이 없다. 짧은 시간, 마음속 어딘가 작게라도 숨겨 둔 근심 걱정을 잊거나 덜어 내었기에 아마 얼굴에도 평온함이 드러나는 것이리라. 막상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난 평소에 어떤 인상으로 지내는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무뚝뚝하고 살짝 인상 쓴 채로 생활하는 것은 아닐지. 가만 생각해 보니 하루에 몇 번이나 소리내어 웃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이가 들었을 때 미간에 주름 가득한 괴팍한 인상을 갖고 싶지는 않다. 마치 매일매일 숙면을 취해서 마음 속 깊이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가득찬, 그런 선한 인상으로 살아가고 싶다. 아내에게, 아이에게, 동료들에게 보면 그저 빙그레 웃게 되는 좋은 얼굴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