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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Apr 26. 2024

진심이 통했다.

아내의 반 학생 중에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친구가 있다. 3월, 처음 맡았을 때는 걱정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와 달리 귀여운 면모가 보인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아이들과도 별 탈 없이 지낸다며, 가끔씩 궁금하지 않은 안부마저 전달받는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어느 날부터인지 퇴근하고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러는 것이다.

“왜? 무슨 일 있어?”

“내가 지훈이(가명)랑 약속을 했는데, 지켜야 할 것 같아서”

“무슨 약속?”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훈이가 평소에 즐겨하는 게임이 있단다. 또한 공룡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순수한 아이의 마음으로, 지훈이는 자기가 즐겨하는 게임에 공룡 캐릭터가 나오기를 정말 바란다고 했다. 툭하면 친구들에게 ‘게임사에 연락해서 공룡 캐릭터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라고. 그리고 그 부탁은 선생님인 자신에게까지 왔단다. 하도 요청하고 요청해서 급기야 대체 무슨 게임인지 유튜브로 검색도 해 봤단다.


여하튼 학생의 바람을 핑계 삼아 ‘네가 잘 못 먹는 음식도 먹게 되고, 노력도 열심히 하면 선생님이 게임사에 연락해 줄게’라는 약속을 덜컥 해 버렸던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문제는(?) 선생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진짜로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먹기를 꺼려하던 음식도 먹겠다고 학교에 가져오는가 하면, 집에서 리코더 부는 연습을 엄청나게 한다며 엄마가 연락했다는 얘기. 아내마저도 이럴 줄은 몰랐단다. 급기야 대체 언제 게임사에 연락할 거냐고 독촉 아닌 독촉 때문에 곤란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냥 연락하면 되지”

“어딘지 몰라. 그리고 외국 회사인지, 국내 회사인지도 모르고, 요청한다고 되겠어?”


난 오히려 생각이 달랐다. 아이의 소원을 잘 전달한다면 게임사가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즐겨한다는 그 게임 이름으로 검색을 해봤다. 다행히 한국에 있는 회사였고, 홈페이지를 통해 담당부서의 연락처도 알아낼 수 있었다. 찾으면 나온다니까? 이메일 보내 봐! 밑져야 본전이지.




며칠이 지나 아내에게 진짜로 연락이 왔다. 이메일로 회신이 온 걸 확인 안 하고 놓쳤더니 급기야 물어물어 학교로 글쎄 전화가 온 것이었다. 메일 내용에 감동받았다며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보겠다는 말을 했다며, 놀라는 눈치였다.

거봐, 된다니까?!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내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진심이 통한 순간의 짜릿함이랄까. 게임에 공룡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맞는지, 대체 관련은 있는 건지 잘 모르면서도 무작정 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락한 게 유효했던 것이다. 어려운 부탁인 걸 알면서도 물어보는 용기가 때론 필요하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나, 이번엔 애플사에서 관련된 문의가 올 것이라는 연락까지 받았다. 응? 아니 웬 애플? 아이폰 만드는 그 회사?


듣자 하니, 애플의 앱스토어 내에 스토리보드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 업데이트 내용으로 ‘선생님과 학생의 사연’을 싣고 싶다는 것이었다. 국내 유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등으로 번역까지 되어서 릴리스 될 것이라고 한다. 앱을 업데이트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고(지훈이가 원하던 바로 그 공룡 캐릭터), 왜 그런 업데이트가 있었는지 설명할 이유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공룡을 돕는 선생님 캐릭터까지 나온다고 했다. 일이 점점 커지는데 혹시 기분 탓은 아닌 거겠지.


지난 이틀간, 아내는 게임사에서 만든 홍보 기사를 검토했다. 이런 기사가 나가는 것에 대해 혹시 학부모 입장에서 곤란한 것은 없을지도 확인하고, 학교 입장도 살폈다.


“지훈이 반응은 어때?”

내가 물었다.


세상에. 요즘 아주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자기를 보다가 ‘크면 선생님이랑 결혼할 거야’라고 한단다, 하하. 아이들이 그러면, ‘야, 선생님은 이미 결혼했잖아’라고 알려준다고.


살다 보면 참 별 것 아닌 것에서 시작한 일이 의외의 감동으로 실현될 때가 있다.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이번 사건이야말로 잊지 못할, 그야말로 이벤트다운 이벤트였다. 회사 일보다 뿌듯하고, 맛있는 음식보다 더 달콤했던, 지난 두어 달 사이의 사건이 정작 당사자인 아내뿐 아니라 내게 큰 감동이었다.


https://www.techm.kr/news/articleView.html?idxno=124065


https://zdnet.co.kr/view/?no=2024050411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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