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벗어나 한 시간여를 달렸다. 빛 공해가 있으면 그나마 볼 수 있는 것도 어려우니 외곽의 어두운 도로를 타야 한다. 갑자기 차를 멈추더니 운전자이자 가이드인 그가 먼저 내려 뭔가를 하는 듯했다. 나와 보라는 말에 얼른 내렸더니 저기 있다며, 금방 찍은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가이드가 안내해 주는 곳을 아무리 눈 크게 뜨고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섬주섬 휴대폰 화면을 꺼내 들어 그가 가리킨 곳을 찍으니 비로소 희미한 녹색의 띠가 살짝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에는 잘 안 보여도 찍히긴 한다더니만 이게 정말 그런가 보구나 싶었다. 이 희미한 걸 알아챈 가이드의 능력이 놀랍게 느껴지면서도, 역시 9월은 안 되는 달인가,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건가 싶었다. 분명 예보에는 밤 11시가 지나면 구름이 개인 다고 해서 급하게 예약을 한 것인데 일기 예보는 여기나 저기나 믿을 것이 못 되는 말이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오로라의 감동은 워낙 소소하였다. 다만 이거라도 본 게 어디냐는 마음과 이런 걸 한 시간 이상 자리를 옮겨가며 봐야 하는 건가 생각하면 은근 비효율적인 투어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가이드는 계속 You never know, patience! 를 외쳤다. 또한 달빛 때문에 잘 찍히지 않으니 방향을 바꿔 다른 장소로 또 열심히 차를 몰아 다른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날의 오로라를 찍어 실시간으로 올리는 앱을 들여다보며 분명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걸 주지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 물론 희망적인 말만 한 것은 아니다. 오늘 밤 오로라 세기는 강하지 않아서 엄청난 걸 보지는 못할 것이라며 한 발 빼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약한 강도의 상황에서도 괜찮은 걸 본 적 많으니 걱정 말라는 말도 잊지 않고 계속하니, 대체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암튼 무경험의 게스트들은 노련한 가이드를 따를 수밖에.
새벽 1시가 다 되어갈 무렵, 마침내 우리는 썩 근사한 오로라를 마주하게 되었다. 분명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려보라니 이젠 살짝 짜증이 나면서도 몸은 자동으로 버스 의자를 일어나고 있었다. 가이드 말을 따르자면 ‘이러다가도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그 녀석이라 하였다. 추위에 벌벌 떨며 몸이 뻣뻣해지는데도 차 안에서 마냥 앉아 있기는 어려웠다. 비록 오늘 처음으로 경험해 본 바로는 전혀 없을 것처럼 굴다가도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가 순간 강하게 나타나고, 그게 짧게는 수 초에서 길면 1-2분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 언제 좋은 기회를 날려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분명 여러 영상에 나온 오로라는 막 춤을 추듯 현란하게 하늘을 수놓고,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볼 수 있었는데 현실은 달랐다. 이런 게 오로라 투어였는지 알았다면 했을까 싶은 마음과, 추워 죽겠는데 그냥 가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 덜덜 떨리는 몸을 지나 스르르 머릿속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나 비로소 ‘이 정도면 되었다’ 싶은 멋진 오로라가 나타나주었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을 본 사람들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맨눈 앞에서 녹색의 그것이 샤랄라 춤추듯 보일 땐 이 맛에 이거 하는 거구나 하는 보상이 엄청났다. 그래서 막상 눈앞에 펼쳐질 때는 사실 ‘찍는 것보다 감상 먼저!’의 자세를 가지고 싶었지만 손 시린 것도 참아가며 핸드폰을 들고 열심히 촬영을 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어쩌면 오늘 아니 인생의 마지막 오로라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 오로라는 강도가 셀뿐 아니라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서 여러 사람들이 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돌아가며 찍어도 쉬이 사라지거나 약해지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탄성과 웃음이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오로라 헌터들의 가졌던 긴 추위와 졸음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잘 안 보인다고 쉽게 포기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수십 번 이상의 경험을 가진 가이드의 말을 믿고 따르니 원하던 것을 얻게 되었다. 물론 You never know라는 표현이 썩 전문가의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긴 하다만 어쩌겠는가, 정말 그의 말대로 몇 초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자연 현상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