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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Sep 24. 2024

우리는 모두 길 잃은 별들인가요.

첫 버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이슬란드로 떠난다는 글에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를 추천해 주신 블로그 친구분의 댓글이 생각났다. 공항 도착했을 때 들으면 딱이라고 했는데 아뿔싸, 이제야 생각이 날 줄이야. 돌아오는 길이라 가이드의 수다마저 끝난 조용한 차 안에서 나만의 음악 감상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였다. 추천곡은 원래 모르던 노래였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온다니 이런 기회에 음악 편식을 개선해 볼 수 있으리라. 주섬주섬 이어폰을 귀에 끼고 그의 추천 음악을 가만히 듣기 시작했다. 마침 차는 해저터널을 지나는 중이라 어딘가 묘한 분위기의 곡과 꽤 잘 어울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 이런 노래로군. 즐겨 듣는 취향의 곡은 아니었지만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영화를 연결하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신 다음은 뭘 들을지 고민하지 않고 알고리즘에게 맡겨봤다. 바로 다음 노래가 시작되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노래는 바로 - 영화 <비긴 어게인>의 주제곡, Lost Stars였다. 와, 이건 정말 멋진 선곡이 아닌가. 흐리던 날씨가 개면서 비로소 햇빛이 차창 바깥으로 나타날 때 시작된다니 타이밍 또한 기가 막혔다.


And, God, tell us the rea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It's hunting season and the lambs are on the run

Searching for meaning

But are we all lost stars

Trying to light up the dark?


지구 한 귀퉁이의 외딴섬에 있는 현재의 나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이어진 선곡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이쯤 되니 이래도 되나 싶었다. 유튜브는 아니 구글은 혹시 내 마음속을 꿰뚫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심각하게 의심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Space Oddity에서 시작된 노래의 흐름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서 나는 다음 곡을 자연스레 기대하게 되었다. 그다음은 모튼 하켓의 Can’t take my eyes off you.


완벽했다.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그랬다. 혹여 다음 노래가 맘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더 이상의 선곡은 거부하기로 했다. 대신 앞선 노래들을 두 번, 세 번 들으며 흥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노래를 흥얼거리고 머릿속에서 멜로디를 반복했다. 숙소까지 오는 길의 피곤함이 사라질 만큼 좋았다.




20인승 정도 되는 미니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자리가 썩 편하지 않다. 엉덩이도 배기고 등받이도 불편하다. 안전벨트는 왜 이리 짱짱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실로 오랜만에 노래들을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평소에도 가끔 듣기는 하지만 감상보다는 출퇴근 시간의 지루한 공백을 채우는 수단으로써 활용이 더 컸다. 보통 자동차 스피커로 크게 들으면 신나기는 해도 음악에 싹 빠져들긴 쉽지 않다. 이에 반해 이어폰을 통해 듣는 음악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혼자라는 상황 덕에 주변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창 밖으로 펼쳐지는 낯선 풍경과의 묘한 조화로움에서 오는 강력한 효과임을 부정하기는 어렵지 싶다.


의무와 책임이라는 가혹한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나 있으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음악은 그 시간을 강화, 증폭시키는 썩 괜찮은 매개체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나의 시간이 혹여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때문에 방해받을까 하는 걱정에, 최신 음악보다는 과거에 즐겨 듣던 올드팝을 선곡해 보고 있다. 그리고 Lost Stars와 Don’t look back in anger의 가사를 더 음미해 본다. 비록 지금 길 잃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일지라도 후회하며 뒤돌아 볼 필요는 없다고 되뇐다. 엄청난 절벽과 빙하가 펼쳐진 저 멀리 살고 있는, 전설 속 엘프 하나 쯤은 이런 내 마음을 달래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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