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Oct 20. 2024

연구자라면 관행을 타파해야.

잠시 테슬라의 주주였던 때, 마침 일론 머스크의 일생을 다룬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로 보면 오너 리스크가 높다고 본다. 돌발적인 행동과 표출, 다분히 ‘관종’적인 그의 행보를 생각하면 함께 일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일론이 궁금하기는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아니 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도전적이고 공격적인 삶을 택하면서 좋은 방향이든 나쁜 쪽이든 세상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다. 그래서 여태까지의 일생을 다룬 두꺼운 책을 펴 들고 자라온 환경과 삶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덕분에 이 이상한 사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회사 또한 시총 1-2위를 다투는 회사의 오너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라니 놀라웠다. 환경적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온 다양한 사건과 경험들이 지금의 일론을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한 편으로 안타깝고 측은한 면도 있고, 달라질 수 있을 기회가 훨씬 많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생겼다.


그러나 인간미라던가 사뭇 궤팍한 그의 성격은 차치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실 엔지니어로서 그의 태도와 파격적인 시도였다. 최고 경영자 이전에 일론은 천재성이 엿보이는 연구자이자 공학도다. 그의 이런 면모는 특히 스페이스 X를 개발하면서 많이 드러났다(책에서 그걸 더 다루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다분히 목표 지향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 동료들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무모함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따르라는 독단성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여러 가지 상황들을 없애면서 성공하는 모습에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머스크는 다시 한번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하는 의지를 보였다. … 발사 예정 전날, … 로켓의 2단 엔진 스커트에서 두 개의 작은 분열이 발견되었다. … 모든 직원은 발사가 몇 주 동안 중단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해결 방법은 엔진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커트만 자르면 어떨까요? 머스크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말 그대로 치마 밑단만 빙 둘러서 잘라내면 어떻겠느냐고요?

다시 말해, 두 개의 균열이 발생한 아래의 작은 부분을 균등하게 잘라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머스크는 그래도 임무를 수행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 로켓은 머스크의 예상대로..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라는 표현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열에 아홉은 그렇게 판단하고 처리한다는 뜻이다. 그걸 통계라던가 경험의 축적으로 얘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안이 없다거나, 일반적 처리의 프로세스나 방법이 최선을 뜻하는 건 아니다. 생각을 달리하면 개선할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그는 모든 공정을 무시무시하리만치 잘 꿰고 있다. 그러니 어느 공정에서 어떤 작업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안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로켓 개발 산업의 경우 예전부터 해오던 관행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대중적인 산업의 영역이 아니다 보니 경쟁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을 이유가 없어서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단순한 부품 하나에도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는 이것을 매우 집요하게 파고들어 원가를 낮출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반 엔지니어들은 ‘원래 그렇게 사 오는 것이니까’ 그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일론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묻고 바꿀 수 있다면(실은 바꾸도록 몰아붙여) 바꾸게 했다.


“스페이스 X 로켓 역시 원가가산 계약으로 가격을 잔뜩 부풀린 업체들의 로켓처럼 비용이 많이 들고 늦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서 머스크는 모든 구성요소와 그 원자재 가격, 납품을 받는 경우 공급업체에 지불하는 비용, 그리고 그 비용을 절감할 책임이 있는 엔지니어의 이름까지 포함된 차트를 작성하도록 했다”


물론 내가 이런 사람을 보스로 두었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힐 것처럼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이유는 알아보지도 않고 선배들이 해오던 방식이니까라는 것을, 맹목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건 어느 회사의 연구원이라도 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과거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더 나은 방식을 찾아내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태도의 문제다. 


공학자 (engineer)는 현실성, 규제, 안전, 비용에 의해 부과되는 제한을 고려하면서 목표와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도록 기계, 체계, 구조, 물질을 발명, 설계, 분석, 제작, 실험(테스트)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던 대로 하면 편하다. 남들에게 설명하기도 좋다. 일정이 미뤄져도 명분이 생긴다. 나를 방어할 이유가 된다.

‘원래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이렇게 해결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어요’. 

여기에 만족하고 편히 있으면 일정한 틀 이상의 단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일론 머스크는 규제나 현실성을 남들보다 더 가혹하게 생각함으로써 결과물이 가져야 할 요구사항을 놀랍게 개선하도록 만들었다. 주변까지 힘들게 하는 극단적인 경영을 옹호하긴 싫다. 그러나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제조업 회사의 연구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으로 관행 타파라는 식상한 구절을 몸소 보여 준 그의 추진력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