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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을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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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Nov 01. 2024

정신이 부지런하니, 작가랍니다.

평소 잘 알지 못하던 다른 부서 사람들과 일로 엮인 만남을 갖다 보면, 그 모임에 있는 누군가는 나의 출간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럽게 책 쓰셨다면서요?라는 인사치레를 받을 때면, 약간의 쑥스러움을 뒤로하고 최근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긍정적인 답을 하곤 했다. 오다가다 얼굴은 봤지만 인사 한 번 제대로 안 했던 옆 팀 사람과 여름부터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어쩌다 보니 또 출간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럼 계속 글을 쓰시는 건가요?’

‘그거 정신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하는 건데’


정신이 부지런하다는 말 -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었지만 그가 하려는 말의 의도가 대단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말을 바로 들었던 당시에도 신선하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며칠 동안 그 표현이 머리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책을 보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샤워를 할 때도 뇌가 계속 간질간질했다. 더 생각해 보라고 나를 부추겼다.


부지런한 정신이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부지런한 정신에 대한 받아들임은 다를 것이다. 흔히 근면성실을 뜻하는 부지런함을 떠올릴 수도 있고, 머릿속이 멈춤 없이 항상 바쁘게 회전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가 말한 부지런한 정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글을 적으며 생각하는 지금의 내 정신 또한 쉬지 않고 작동 중이니, 또 다른 의미는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고 생각을 키워나가는 사고의 행위 또한 부지런한 정신의 범주에 들어가지 싶다. 그게 무엇이든 정신이 부지런하다는 말이 꽤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최근에는 근면성실의 미덕이 썩 달갑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한때 나도 이 말에 동의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누군가 이룬 성취가 그저 ‘잘한’ 것 때문으로 비칠지 몰라도 실은 그 뒤에 숨은 부단한 노력의 뒷받침 없이 성공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는 케케묵은 명언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꾸준히 계속할 때 근육이 붙고 더 빨리 달리거나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라 생각의 뇌근육을 놀지 않게 해야 글로 탄생할 기회가 더 높아진다. 부지런한 정신을 갖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걸 유지하는 건 또 다른 도전이다.


한편 정신만 부지런해서는 결코 생각이 글로 전환될 수 없다. 언젠가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하여 생각하는 것이 자동으로 어딘가에 텍스트 파일로 남는다면 모를까, 가까운 미래엔 그럴 일 없지 싶다. 사실 가끔은 그런 일이 짠하고 벌어지면 좋겠다 싶다. 막 떠오른 날 것의 생각들이 하릴없이 사라질 때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겠네


지나치며 가끔 보는, 음식점 바깥에 붙은 글귀다. 귀여운 말장난이지만 그 뜻을 헤아려 보자면 걱정만 하는(정신적 활동)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물리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일게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부지런하게 정신 활동을 통해 높은 이상을 고고하게 세웠다 해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않으면 남들이 알 수 없다. 아니, 그전에 자기도 잘 모를 수 있다.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문구, 문장과 문단, 기승전결을 이뤄 펼쳐지는 글의 힘을 빌지 않으면 생각은 그저 잠시 머물다 흩어질 뿐이다. 글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꼬인 실타래 같던 두서없는 생각들이 매끄러운 흐름을 타고 앞과 뒤에 배치된다. 그러니 글쓰기는 단순히 뇌활동 중심의 정신적 부지런함에서 멈추지 않는다. 컴퓨터든 태블릿이든 아니면 스마트폰이든 기록할 매체에 각 잡고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 내는 귀한 창조물이다. 사고 활동을 성실하게 한 결과물이 ‘글쓰기’로 구현되는 과정의 근면함 또한 높게 평가될 가치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글쓰기가 어마어마하게 여겨진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잠시 아내가 식당 예약 때문에 물어보러 옆에 다녀갔다. 나는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자판에서 손을 떼고 그녀의 눈과 핸드폰을 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린 덕분에 글로 완성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작은 편린을 정리하는데도 이렇게 날카로운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그러니 그의 말마따나 정신이 부지런한 사람은, 작가가 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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