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y Dec 02. 2024

입장의 차이, 이해의 시작

과제를 같이 하는 후배와 미팅이 있었다. 원래 미팅 목적은 과제에서 몇 가지 챙길 것들을 정리하고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얼마 전 있었던 과제 리뷰 미팅에 대해 후배는 나에게 ‘공식적인 입장’과 ‘비공식적인 입장’ 두 가지를 전달했다. 보통 이런 식의 입장 차이가 나올 땐 어딘가 간극이 클 때다. 생각이나 상황의 차이가 없다면 굳이 둘을 나눠서 따로 말할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는 비공식적 입장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않고 내 선에서 끝나기를 바랐던 것.

“하지만 바로 그 비공식적 입장이 과제를 하는데 해결해야 할 문제잖아요. 저는 과제가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역할이고요”

내가 물었다.


“그렇지만 그걸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실 걸 바란 건 아니에요”


즉 문제는 둘 사이의 비밀(?)로 간직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에 있었다.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다. 과제 PMO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비공식적 입장에서 나온 얘기에 대해) 상사와 상의를 했다. 둘 사이의 상의 결과를 알려주는 과정에서 눈치 빠른 후배는 ‘아 내 얘기가 전달된 거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요. 적어도 나의 입장에선 - ‘


이런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는데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몇 가지 더 던져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을 물었다. 의도와 다르게 그가 느낀 감정의 고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사과했다. 얘기를 잘 나누고, 퇴근하고 운동을 다녀오는 사이에도 잠시 더 생각을 해보니 내가 경솔했구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후배의 뒤에는 나는 모르고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 숨어 있었다. 혹시 그걸 알았다면 조금 더 섬세하게 대응했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아까 하려다가 말았던 말, ‘적어도 나의 입장’ 따위는 사실 상대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우선 각자의 입장을 확인한다고 해서 객관적인 상태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물론 너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렇게 바라본다 등을 얘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다만 그 말을 멈춘 것은 적어도 이 상황에선 내가 억울하지도 않고, 관점을 관철시켜 얻어낼 것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상처받은 그를 받아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렇다.


나의 입장이 있듯 그에게도 같은 것이 있다. 입장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철학이니 관점이니 기준과 같은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자신의 주니어 시절 겪었던 얘기를 들려주는 걸 듣다 보니, 결국 우리는 각자의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뻔한 진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런 기준이나 관점의 차이는 생각보다 깊고 넓어서 같은 상황에 대해 인식하고 이해하는 결과 또한 달라진다. 그가 전했던 ‘비공식적 입장’의 진중한 의미를 캐치하지 못한 건 나의 섬세함 부족도 있지만, ‘내 관점’에서는 그게 왜 비공식적이어야 하는데?를 (나의 기준에서) 고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런 관점의 차이는 늘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거창한 주제로까지 발전시킬 생각은 없고, 그냥 회사 생활에 한정 지어 보자면 결국 일을 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야 하지 싶다. 사람에 대한 이해란, 누군가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평소 그럭저럭 안다고 생각했던 후배의 모습에, 어쩌면 내 경험을 비추어 불필요한 편견이 있었을 것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선배랍시고 나의 입장을 운운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 가만히 그가 처한 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게 어쩌면 함께 하는 이 과제의 성공을 위해 내가 가질 ‘입장’ 일지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