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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을 내다

보통의 삶, 빛나는 순간

by nay

내 인생은 평탄했다.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범생’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모범생답게 착실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에 취직했으며, 많은 이들과 비슷하게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그런 내가 출간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와, 축하해요. 근데… 무슨 책을 쓴 거죠?”


정말 책의 내용이 궁금했을 사람들도 일부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당신처럼 재미없는 사람이 책이라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이런 질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즉 ‘무슨 책’이라는 표현에는 '아니, 어쩌다'라는 뜻이 살짝 담긴 듯했다. 글을 쓰는 사람 - 즉, 작가라고 불리는 - 들의 전형성은 어딘가 살아온 자취가 평범하지 않아 털어놓을 거리가 많다거나, 사람 자체가 어딘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거나, 아니면 괴짜스러운 면이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지인들에게 나란 사람은 별로 그럴만한 구석이 없어 보이니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싶다.


남들은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삶의 이벤트를 겪었을 때, 그걸 글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하나의 책으로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 주변에 많은 사물이나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있다 보면, 남들은 보지 못하는 발견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은 글쓰기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꼭 특별한 경험이 없어도, 남들과 다른 시선이 조금 부족해도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회사에서 선배에게 한 소리를 듣고 속상해서 욱하는 마음을 글로 남겼었다. 기업의 연구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꼽씹으며 적은 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을 때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를 하다가 한 편의 글로 완성된 적도 있다. 아내에게 쓰는 카드의 사연을, 아들과 도서관을 다니며 만나는 풍경과 사람을, 미용실에 다녀왔다가 마주친 풍경을, 혼자 밥 먹으며 가졌던 외로운 마음을. 거창한 서사는 없었지만 그때그때 마음을 흔든 순간을 붙잡았다. 그게 남들에게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의 얼떨떨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출간을 빌미로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던 그때의 내가 우습다. 해외 근무를 했던 때라 정작 서점에 깔린 내 책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출판사와 지인들이 보내온 사진을 보며 느꼈던 감동, 해외 배송된 상자를 열었을 때 등장한 선명한 녹색 표지의 책에 분명히 적혀 있던 내 이름 석 자가 줬던 비현실적 기분 또한 그대로다.

그 순간 확신했다. 글쓰기는 참 공평하다고.


물론 재능이라는 측면에서 오는 결과물의 차이는 있다. 어떤 이는 술술 읽히고 남들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글을 쓰는 반면, 누군가의 글은 무슨 내용인지 몇 번이나 읽어야 이해가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글은 ‘작가’라고 정해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온 직장인도 꾸준히 일상이나 일에 대한 흔적을 남기다 보면 마침내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져볼 기회가 생기지 않나 싶다. 특별한 도구도, 엄청난 자본도 필요 없다. 오직 자신의 경험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것을 언어로 옮기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나는 그 사실의 증거다.


간혹 지인들이 사인을 부탁할 때가 있다. 때로는 강연 도중에 퀴즈를 내고 답을 말하는 분들에게 소위 ‘수요 없는 공급’으로 내 책을 선물한 적도 있다. 독자가 누구든지 사인을 할 때 요즘 이렇게 적는다.


“보통의 삶에서 빛나는 순간을 찾으세요”


이 말의 뒤에는 사실 숨겨진 다음 문장이 있다.


“그걸, 꼭 글로 남겨 보세요”


브런치와 함께한 날이 10년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10년의 시간 끝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나 나처럼 작가의 이름을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글쓰기는 언제나 그랬듯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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