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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l 05. 2017

좋은 연구 계획서란 무엇일까

얼마 전, 한 독자분이 남겨주신 댓글에 요청이 있었다. 기업에서 잘 쓴 연구 계획서란 무엇일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참 많은 계획서를 써봤는데 어떻게 쓰면 좋을까를 정리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연구 계획서에 반드시 담겨야 할 것

-연구배경 (시장환경, 경쟁사동향, 기술동향), 연구목적, 접근방법, 마일스톤, Output, 리스크 관리


R&D에는 자원(돈과 인력, 시간)이 투여된다. 그 결과물이 되는 제품은 판매를 통해 투자 이상의 가치를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또 새로운 일에 자원을 투자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생긴다. 연구 계획서는 R&D의 각 업무를 몇 개월 또는 연간 단위로 어떻게 진행할지 실행 계획을 구성하는 의미가 있다. 특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왜 이 과제/연구를 해야 하는지, 하고 나면 어떤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는지, 그래서 우리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경영진에게 설득이 필요하다. 


보통 연구계획서에는 아래 내용들이 들어간다. 

-연구배경: 시장환경, 경쟁사 동향, 기술개발 동향

-연구목적/목표: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접근방법: 어떻게 목적, 목표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

-마일스톤: 목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일정한 주기마다 세부 목표를 제시하고 관리

-Output: 연구가 끝나면 얻게 될 구체적인 성과물

-리스크 관리: 이 연구가 진행되는데 방해가 되거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어찌보면 논문을 쓰는 과정과 썩 비슷하다. 일단 남들이 뭐하는지, 어디까지 했는지 살펴보고 (Introduction), 이 연구에서 밝히고자 하는 점은 무엇이며 (Objectives), 어떤 연구방법을 사용해서 (Materials and Methods), 결과는 이런 것을 얻었다 (Results). 결과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인사이트를 주는지를 설명한다 (Discussion). 


연구 계획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하는 연구와 기업의 연구에서 가장 큰 차이는 상업적인 성과다. 학문적 새로움과 뉴파인딩이 중요한 학계의 연구와 달리, 기업의 연구란 궁극적으로 고객에게 의미를 줘야한다. 아무리 최초성이 뛰어난다한들 고객 고충을 해결하지 못하거나, 사용을 통해 편리함이나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R&D로서 의미를 두기 어렵다. 연구의 목적이 나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향해 있으면 곤란하다. 따라서 기업의 연구 계획서에서는 연구개발의 끝에 고객이 있어야 한다. 이공계 연구자들이 종종 겪는 어려움이 바로 일의 당위성, 즉 고객과 연구 개발의 목적을 연결하는 부분이다. 학문적 궁금증과 성과에 훈련되어 있던 석박사 과정과 달리 기업은 고객 가치가 있는 연구개발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양해야 할 것-모호하고 일반적인 내용

나 역시 많은 계획서를 쓰고 제안서를 만들어 봤지만 쓰기도 어렵고, 좋은 레퍼런스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구체성을 가지려고 했는가를 주목한다. 누구나 아는 일반론으로 계획서를 채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공계 연구자들은 문제를 푸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전문성을 갖고 있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일이 다 고객을 위한 것 아냐? 라고 하기 쉽지만 고민 중에서도 어떤 고민을 해결해 줄지, 타겟 고객은 어떤 연령으로 하는 것이 맞는지 한 번 더 고민해야 한다. 

제일 막연하게 다가오는 것이 연구 성과의 활용이다. '계획'이기 때문에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제안한 결과를 기한 내에 얻을 수 있을지도 막연하다 보니 대게는 흔한 표현을 쓰기 마련이다. OOO제품 개발에 반영, 특허/논문 O건, 지적 자산 확보를 통한 방어막 구축 등등.. 나도 그런 말을 쓰긴 하는데, 정말 이 연구 계획에서 얻어야 하는 목표나 성과가 무엇이고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지 한 단계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 좋은 계획서는 많이 고민한 정도에 비례한다. 

내 계획서를 잘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이 쓴 것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어떻게 썼느냐를 벤치마킹 할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남이 쓴 것은 부족한 점이 잘 보인다. 좋은 용어나 표현 등도 따올 수 있다. 그런 점들을 잘 체크해 두고 내가 작성할 때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남보다 좀 더 나은 계획서, 완성도 높은 제안서가 가능하다. 


계획서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

계획은 머릿 속에 구상한 것을 구체화 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예병일의 경제노트를 메일링 받는데 마침 이런 내용이 전달되어 마무리에 딱 맞는 얘기다 싶어 소개한다. 


좋은 아이디어, 멋진 착상을 떠올리는 사람은 제법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의 아이디어에서 그치지요. 그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머릿속의 아이디어에 실제 작업, 즉 노동이 더해져야, 그것도 오래 더해져야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 화가인 에드가 드가. 그는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볼줄 알았고 시적 창의성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드가의 시는 한 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드가는 친구이자 시인인 스테판 말라르메에게 시를 짓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머릿속에는 많은 시상이 떠오르지만 그걸 싯구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말라르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드가, 시를 만드는 것은 시상들이 아니야. 실제 단어들이야."
시를 만드는 것은 머릿속의 시상이 아닌, 노동에 가깝다는 얘기였습니다. 

조각가 니나 홀튼도 비슷한 말을 했더군요.
"어떤 생각의 씨앗만으로는 스스로 우뚝 서 있을 조각 작품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저 씨앗으로만 존재할 뿐이지요. 그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힘든 작업(일,노동)입니다."

시를 만드는 것은 머릿속의 시상이 아닌 현실의 노동입니다. 시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그렇다. 좋은 계획서를 실현 시키는 구체적인 실행이 따르지 않는다면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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