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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y Jul 19. 2017

기술개발과 마케팅의 갈등

회사 연구원을 위한 조언 

주니어 시절에는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되었다. 일을 하다보면 가끔 얼토당토 않은 의뢰를 받을 때가 있다. 사수에게 왜 이걸 해야 하나요? 하고 물어보면 돌아오던 대답이 바로 '마케터가 원한다'고 였다. 내가 보기엔 아무 근거도 없는데 일단 이런 결과를 원하니 기술적으로 해결해 주세요, 라고 요청이 오면 안할 수도없고 신나게 하기도 힘들다. 보통 그럴 때 기술자/엔지니어들이 하는 말이 있다. '기술도 모르면서...'. 


연차가 쌓이다 보니 이제는 내가 마케터를 직접 만나게 된다. 안타깝지만 내가 주니어 때 받던 요청에서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마케터도 충분히 고민하고 기술개발을 요구하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일들이 많다. 그러면 우리(기술개발자)는 말도 안된다, 이거 꼭 해야 하냐 이런 논쟁이 일곤한다. 마케터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마케팅도 모르면서...'


마케팅의 본질에 대한 유명한 일화로 소개되는 Steve Jobs의 동영상이 있다. Think Different campaign을 런칭하면서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presentation 했던 내용이다. 여기서 스티브는 Marketing is about values라고 한다. Value (가치)? 마케팅에서 말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이키의 사례를 든다. 나이키는 신발을 팔지만 신발의 성능을 얘기하지 않는다. 나이키라는 회사의 존재 이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다른 것 - 위대한 운동선수들을 존경하는 마음 - 에 있다는 점이다. 


유사한 의견을 CIO 기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술회사의 마케팅 전략 새로짜기). 일부만 발췌해서 아래에 소개한다. 


좋은 마케팅이란?
마케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마케팅=광고’라고 생각해 버리고 단순히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 정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광고는 ‘마케팅’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 마케팅에는 그 외에도 제품 선택 및 개발, 가격 결정, 배포 등 다양한 것들이 포함된다. 광고는 마케팅의 한 분야인 프로모션 전략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비즈니스 딕셔너리 닷컴(BusinessDictionary.com)은 정의하고 있다. 마케팅이란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며 때문에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마케팅에 소질이 없다. 마케팅이 비과학적인 분야여서가 아니라 단지 열역학보다는 심리학과 더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케팅은 제품 설계나 제작보다는 판매에 더 가깝다. 때문에 마케팅의 궁극적인 목적은 해당 제품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설득해 그 제품을 사도록, 그것도 되도록이면 많이 사도록 하는 것에 있다.


제품의 개발도 마케팅의 범위에 들어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특정 제품을 사고 싶은 욕구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제품이나 브랜드, 회사가 제공하는 가치에 있다. 나 역시 스마트폰으로서 기능은 유사하지만 갤럭시가 아닌 아이폰을 선택하는 이유는 애플 제품의 가치를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같은 돈을 투자해서 다른 것이 아닌 특정 회사 제품을 사는 이유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치의 근거는 다양하다. 제품의 효능/효과가 제1가치일 수도 있고, 제품이 얼마나 착한 생산과정을 거쳤는지가 1순위 일수도 있다. 최고로 멋진 디자인, 패키징을 구매 가치에 두는 고객도 있을 것이다. 


마케팅의 'ㅁ'도 모르는 기술개발자 입장에서 요청하고 싶은 건, 마케터가 이 제품으로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먼저 결정해 주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 뿐이라 매우 한정적이겠지만 많은 마케터들이 설익은 제품(가치)을 일단 들고 와서 기술을 적당히 입혀주길 기대한다. 또한 아래와 같은 사례는 지양해야 할 점이다. 

1)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것: 달에서 가져온 신비한 소재를 사용해서 ...

2) 마케터 혼자만 꽂힌것: 기술적으로 전혀 다른 결과가 예상되지 않음에도 마케터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고객에게 제공하고 싶은 가치를 기술개발자와 조율하면서 개발 방향을 보완하면 좀 더 생산적이리라 믿는다. 기술개발자 역시 평소 만나기 꺼려지는 마케터와 합의점을 찾는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 기술개발자들이 빠지기 쉬운 잘못은 '기술 그 자체'의 중요성만 본다는 점이다. 기술이 고객에게 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마케터와 함께 고민하면 기술의 의미와 필요성, 방향이 더 선명해 질 것이다. 실제로 많은 회의에서 늘 공격 받는게 이거다. 


담당자: 이 기술은 세계 최초로 OOO을 시도해서 OOO를 성공시킨 것으로.. 

마케터: 그래서, 이 기술은 고객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주나요? 

담당자: ..... (그건 당신이 고민해야지!)



기술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마케터만 고민해야 할 몫이 아니란 뜻이다. 기술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개발자 자신이 더 고민 하고 효과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케터를 만나더라도 적대적으로 대하지 말고 같이 제품을 개발하는 담당자로 생각해 보자. 마케터는 요구하는 위치, 기술개발자는 대응하는 위치라고 관계를 규정하면 내가 그 동안 겪었던 사례들의 무한 반복일 뿐이다. 



여전히 남은 고민이 있다.  

기술개발의 방향은 마케터의 통찰 또는 직관에 온전히 의지해야 할까? (일종의 market-driven) 

vs. 

기술개발자가 마케터 말만 들어야 하나. 좋은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고 마케터를 통해 고객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옳을까? (tech-driven)


이 갈등도 참 오래됐다. 마케터를 만나면 기술개발 내용을 먼저 요청한다. 그것도 오늘만 사는 것처럼 일단 다 내놓으라 하는 경우가 일쑤다. 기술개발자 입장에선 마케터가 설계한 제품을 먼저 보여주길 바란다. 제품의 내용물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다. 기술개발자 입장에선 똘똘한 기술을 잘 만들어서 마케팅이 원하는 가치의 하나를 제대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 역할이다. 


결국 이 부분은 업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어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라면 뛰어난 기술력이 우선일게다. 반면 일반 소비재 제조업은 유사한 다른 제품들에서는 제공하지 못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마케팅이 좀 더 우세해야 하지 않을까? 같은 기술도 각 브랜드가 추구하는 바에 따라 다른 옷을 입혀서 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마케팅 기술(skill)이 아닐런지. 기술개발자 역시 선행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마케터에게 역으로 제안하고, 고객 가치를 함께 찾는다면 아주 아름답고 이상적인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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