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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Mar 30. 2023

영원한 팝의 황제 Michael Jackson

행복해지고 싶었던 불운한 음악천재

마이클 잭슨(1958~2009)의 본명은 Michael Joseph Jackson이다.

그는 전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장벽을 넘어 가장 성공한 흑인의 대명사로 기억되지만, 살아생전에 마이클은 그 명성만큼이나 많은 구설수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에 관한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1. 마이클은 왜 약물중독이 되었나?

잭슨 가족의 7번째 자식인 마이클 잭슨은 6살 되던 1964년에 형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Jackson Five)의 막내이자 보컬로 데뷔한다. 1971년 솔로 활동을 시작한 후 1980년대 초부터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1982년에 Beat It, Billie Jean, Thriller 등이 수록된 앨범 『Thriller』가 크게 히트하며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1984년에 펩시콜라 광고를 찍던 도중 그를 평생 약물에 의존하게 만든 사고가 발생했다.

그의 히트곡들과 현란한 볼거리로 유명했던 이 광고를 찍던 도중 무대 장치의 불꽃이 그의 머리에 옮겨 붙은 것이다. 현란한 춤을 추며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마이클은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한동안 계속 춤을 추었고 스태프들이 뛰어들어 겨우 불을 껐지만, 이미 마이클의 머리는 두피가 녹아내릴 정도로 타버렸다. 수 차례에 걸쳐 두피 이식수술을 했지만, 심한 통증 때문에 평생 진통제에 의지해야 했고, 내성 때문에 급기야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으며 결국 약물 중독에 이르게 된 것이다.


2. 마이클은 백인을 동경해서 피부 표백을 했다?

잭슨 파이브 시절 마이클은 크고 뭉툭한 코와 두툼한 입술, 동그란 곱슬머리, 그리고 흑인 특유의 까무잡잡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그의 모습은 조각같이 날렵한 코와 갸름한 입술, 그리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릿결과 하얀 피부를 가진 영락없는 백인의 모습이다.


그중에서도 그의 백옥 같은 하얀 피부색은 세간의 최대 관심사였다. 백인을 동경해서 표백 약품과 박피술로 피부를 하얗게 바꿨다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대해 생전에 그는 자신이 백반증 환자라고 해명한 바 있다.

피부 표피의 멜라닌색소가 없어지면서 피부가 탈색되는 백반증은 백인처럼 피부가 원래 하얀 경우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흑인에게는 크게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으며, 마이클 잭슨처럼 얼굴에 백반증이 나타나는 경우 미용적으로 굉장한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백반증 부위가 작은 경우 피부 이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부위가 광범위할 경우 남아있는 정상피부를 탈색시켜서 아예 백반증 피부로 바꾸는 시술도 있는데, 의사가 마이클에게 권한 시술이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3. 마이클은 왜 성형중독이 되었나?

마이클은 피부색 외에도 성형중독으로도 유명했다. 실제로 그의 외모의 변천사를 보면 어렸을 적 전형적인 흑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동양인 미소년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마이클은 자신이 성형에 집착한 이유를 생전에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잭슨의 아버지는 어릴 적 그를 집에 가둔 채 학대라 할 만큼 가혹하게 음악교육을 시켰고,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나이의 마이클을 형제들과 묶어서 잭슨 파이브로 데뷔시켰다.

잭슨 파이브의 막내였던 마이클은 성공적인 데뷔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데뷔해 학교도 못 가고 친구도 없었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가 건강을 해칠 정도로 성형을 반복한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애증의 감정으로 얽힌 아버지의 모습이 어느덧 자기의 얼굴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4. 성추행 소송에 휘말린 마이클

마이클은 1994년과 2001년에 아동 성추행 소송에 휘말렸다.

첫 번째는 형사고발 없는 민사소송이었고, 마이클이 합의금을 지급하고 취하되었다.

두 번째는 13살의 소년을 마이클이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형사재판이 열렸으나,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마이클이 사망한 후인 2009년 12월에 FBI의 비밀문건이 공개되었는데, 1차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기소를 고민했으나 중요한 단서가 전혀 없었고, 2차 사건은 포렌식 분석, 행동 분석 등을 수행했으나 마찬가지로 단서나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마이클이 아이들을 가까이 한 이유는 그들에게 자신이 어린 시절 그토록 갈망했던 진정한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재판 기록에 의하면, 마이클을 고소했던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그는 한 번도 아이들을 자신의 침실로 초대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집으로 초대된 아이들이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아이들은 늘 마이클 곁에 있고 싶어 했고 간혹 침실을 구경시켜 주길 원했는데, 사실 마이클의 침실은 누구나 언제든지 제한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다. 간혹 아이들이 그의 침실에서 놀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이클은 침대를 양보하고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비공개 재판을 결정했고 대중이 진실을 알기 힘들게 됨에 따라 왜곡된 언론보도가 여론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이는 80년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흑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으로 말미암아 흑인사회가 자신감을 갖게 되어 백인 주류사회에 더 많은 개혁을 요구하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편파적인 부정보도를 통해 마이클의 사회적 영향력을 희석시키려고 한 것이라는 유력하다.




2005년에 아동 성추행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마이클은 모든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대중으로부터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러던 2009년 3월, 4년 만에 대중들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 마이클 잭슨은 런던에서의 콘서트 투어 계획을 발표하며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7월에 만나자고 팬들에게 환한 모습으로 이야기했지만, 6월 25일 자택에서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장마비로 향년 50세의 생을 마감한다.


2009년에 나는 가장 친한 친구와 가족을 잃었고, 사춘기 시절 우상이었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소중한 친구로, 사랑하는 가족으로, 그리고 팝의 황제로 남아 있다.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2001 Live>

Pop을 듣는 음악에서 "보고 즐기는" 음악으로 만든 마이클잭슨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흐느끼며 열광하는 팬들과 "King of Pop"이라는 플래카드가 그이 인기를 실감케 한다.

<USA For Africa - We Are The World>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 작사 작곡, 1985년 1월 미국 LA에서 미국의 팝스타 45명이 대기근으로 굶주리는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해 녹음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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