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할리퀸, 권성연, 마로니에
우연히 처음 들었는데 마음에 확 들어오는 노래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노래와 가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너무 짧게 끝나버려 아직도 아쉬운 나의 레전드 가수들이 있다.
1994년 3월,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ROTC 장교로 임관해 광주 보병학교에서 4개월간의 OBC(Officer Basic Course, 신임 장교 지휘참모과정) 교육을 받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교육과 훈련은 힘들었지만, 막사로 돌아와서 저녁 일과가 끝나고 취침 점호 전까지 1시간의 자유시간은 정말 꿀맛이었다.
그 자유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막사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최신곡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보병학교에는 교육 목적 상 TV는 물론 라디오도 없었다)
봄이지만 아직은 추웠던 3월 어느 날,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새로운 풍의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때는 스피커에서 노래만 흘러나와 노래제목을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라는 노래였다.
다양한 음색과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고음까지 감미로운 노래에 나뿐만 아니라 우리 내무반에 있던 동료 소위들 모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런데 얼마 후 외박을 나와 TV에서 음악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립싱크를 떠나서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너무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알고 보니, '마로니에'는 프로젝트 그룹이라서 객원 가수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칵테일 사랑'을 부른 싱어송라이터 신윤미가 메인보컬부터 코러스까지 스튜디오에서 혼자 녹음한 후에 음반이 나오기도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버렸고, 노래가 라디오 방송을 타자마자 TV 음악방송 섭외 1순위가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객원 가수들이 나와서 립싱크를 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원래 TV보다 워크맨으로 노래를 듣는 걸 좋아했기에 개의치 않고 날마다 잠이 들기 전에 이어폰을 꽂고 듣고는 했다.
그때 신윤미가 유학을 떠나지 않고 계속 활동을 했었다면 더 많은 좋은 노래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아쉬움일까..
2001년 어느 주말 나는 회사에서 새로 맡은 일 때문에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출출함을 달랠 겸 지하 매점에서 빵과 음료수를 마시며 멍하니 TV를 보고 있었는데, 남자인 내가 봐도 너무나 잘 생긴 남자 다섯 명으로 구성된 신인 그룹이 나왔다. 그것도 무려 데뷔 무대란다.
그런데 그냥 잘 생긴 것만이 아니라 노래도 잘하고,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았다.
오션(5tion)의 More than words였다.
난 그들의 세련된 외모와 과하지 않지만 끌리는 무대매너, 그리고 감미로운 음색 때문에 H.O.T. 에 이어 대히트를 칠 거라 예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예감은 벗어나 버렸고 오션은 More than words 이후 후속곡의 연이은 실패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금세 잊혀 버렸다.
1994년에 결성된 록그룹 '할리퀸'이 1996년에 발매한 1집 타이틀곡 '널 잊진 못할거야'는 아직도 내가 즐겨 듣는 최애곡 중 하나다.
저음인 듯 하지만 사실은 고음인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원음으로 불러보려 몇 번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할리퀸의 노래는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약간의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97년 IMF의 여파로 노래는 히트했으나 그룹은 사라지고 말았다.
90년대 초반부터 불어온 가요계의 르네상스 열풍에 편승하여 문화계에 진출했던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IMF를 계기로 손을 뗀 것이 이유였다.
LG미디어 음반사업부가 없어지며 할리퀸도 공중분해가 되다시피 했고, 그 이후에도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기는 했으나 1집 이후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권성연은 고려대학교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1990년에 MBC 강변가요제에서 '한여름 밤의 꿈'으로 대상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권성연과 같은 과 동기였던 동아리 선배 누나로부터 들었는데, 권성연은 원래 노래 부르기를 너무 좋아하고 가수가 되는게 꿈이어서 1학년 때부터 라디오에서 일반인이 노래 부르는 프로그램이나 지방에서 열리는 소규모 오디션 등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열성적으로 쫓아다녔다고 한다.
권성연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8090 학번이라면 '한여름 밤의 꿈'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91년 데뷔 음반 타이틀곡 '난 그랬던 것 같아요'를 가장 좋아한다.
저음부터 고음까지 부드러운 음색을 유지하며 부르는 감미롭고 편안한 음률도 좋지만, 첫 키스를 떠올리게 하는 가사가 너무 좋다.
이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첫사랑 때 느꼈던 설렘에 빠져드는 것 같다.
특히, 별을 보며 퇴근하는 날이면 더욱..
<5tion - More than words>
<할리퀸 - 널 잊진 못할거야>
<권성연 - 난 그랬던 것 같아요>
<마로니에 - 칵테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