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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동아빠 구재학 Apr 29. 2023

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인기 정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가수들

이지연

"잊는다는 슬픔보다~ 잊어야 한다는 이유가~ 내겐 너무도 서글픈 아픔이었네~"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88년에 고교 2학년이었던 나는 안타깝게도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고1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의 여학생이었는데, 한 번도 여자로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번개를 맞은 것처럼 여자로 보였고 그때부터 짝사랑의 열병에 빠져 버렸다.

눈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때까지 그녀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미성년자들의 연애가 금기시되던 때였고, 그보다도 그녀에게 대시를 할 용기가 없었기에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을 때 10분간의 휴식시간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고,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가사가 마치 내 얘기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울어버렸다.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남자 고교생 가수는 있었지만, 여자 고교생 가수는 이지연이 처음이었다.

가녀린 모습에 가창력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 그리고 비슷한 또래라는 동질감 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당시 남학생들은 하나같이 이지연의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를 자기 노래라며 빠져들었다.


서구적인 미인이 유행하던 시절에 청순하고 깔끔한 이미지로 남학생들을 설레게 했던 여고생 가수 이지연


88년에 1집으로 데뷔한 이후 89년 2집까지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를 치며 인기 가도를 달리던 그녀는 90년에 3집을 낸 이후 미술공부를 하러 유학을 간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거짓말처럼 돌연 잠적해 버렸다.

나를 비롯해 팬들은 패닉에 빠져버렸고, 그녀에 대한 각종 루머가 성행했다.

2년 후인 92년에 귀국한 그녀는 기자회견을 통해 방송 활동 재개를 선언했으나 방송사들은 그녀를 이전처럼 대해주지 않았고, 인사도 없이 떠난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팬들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쓸쓸히 연예계를 떠나게 된 이지연은 주로 미국에 거주하면서 요리에 매진하며 프랑스로 유학까지 다녀왔고, 현재는 요리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김민우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는 내게 묻지만~ 대답하기는 힘들어~"

90년에 1집 '사랑일뿐야'로 데뷔한 김민우는 호소력 짙은 미성의 목소리로 데뷔와 동시에 정상에 오르며,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에게 수여하는 골든컵을 받았다.

김민우는 대원외고 시절 단짝 친구 윤종신을 만나 밴드 활동을 하며 음악을 시작했고, 주변에 소문이 나면서 김완선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에 캐스팅되어 2년간의 앨범 준비 끝에 데뷔했다고 한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던 90년에는 아직 노래방이 없었고, 술집에서 손뼉을 치거나 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동창회처럼 선배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 나갈 때면 노래를 3곡 정도 연습해서 나가곤 했는데, 그때 내 18번이 '사랑일뿐야'였다. 비록 술을 너무 마셔서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넘치는 사랑일뿐야~"를 마저 부르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가곤 했지만, 어쨌든 난 김민우의 노래가 좋았다.


그 뒤 후속곡인 '입영열차 안에서'도 히트를 치며 가요톱10 골든컵을 받았는데, 젊은이들의 군입대 환송회에서도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대신 이 노래가 불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입영곡으로 자리매김한 이 노래가 한참 히트를 치던 90년 7월에 김민우에게 입영통지서가 날아들었고, 입영통지서가 나오면 바로 입대를 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던 김민우의 순진함과 '입영열차 안에서'를 부른 가수가 실제로 입영열차를 타고 군대를 간다는 극적인 효과를 통해 노래를 더 띄우려는 소속사의 탐욕의 결과로 그는 인기의 정상에서 군대에 입대했고, 그렇게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데뷔하자마자 스타가 됐다가 3개월 만에 자신의 노래처럼 입영열차 타고 군대로 가버린 김민우


비록 노래가사처럼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은 아니고 짧은 18개월 방위 복무를 마치고 92년에 복귀했으나, 때마침 가요계를 강타한 '서태지와 아이들'에 밀리고 전 재산과 빚까지 내서 야심 차게 차렸던 음반녹음실이 조현병 환자의 방화로 불타버려 모든 것을 잃고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 이후 그는 수입차 세일즈맨으로 변신하였으며, 회사 내 영업실적 신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어 3년 만에 빚을 모두 갚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정현

"너를 처음 만난 날, 소리 없이~ 밤새 눈은 내리고~~ 끝도 없이 찾아드는 기다림~ 사랑의 시작이었어~"

89년에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로 데뷔한 조정현은 90년에 가서야 이 노래가 히트를 치며 다소 늦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내 친구들 중에는 아직도 이 노래가 본인의 최애곡이라는 친구들이 많다.


조정현은 데뷔하기 전에는 원래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약했다고 한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잘 생긴 외모로 한국의 장국영이라 불리며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라이브가 음반과 똑같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가창력이 뛰어났다.


그의 외모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노래만큼은 정말 최고다.


김민우, 윤상, 윤종필, 이현우 등과 함께 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조정현은 93년에 3집 활동을 끝으로 돌연 연예계를 떠나며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94년에 오랜 연인과 비밀리에 결혼했다고 하는데, 그가 왜 갑자기 가수 생활을 은퇴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운동선수 출신답게 골프에서도 연예계 최고 실력을 자랑하던 그는 골프 관련 스포츠 마케팅회사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고은희 이정란

오락거리가 많지 않던 80년대에 대학가요제는 한해를 결산하는 국민 이벤트와도 같았다. 84년에 나도 중학생이 되면서 동요를 떼고 가요와 팝송에 관심을 가지던 시기였고, 어린이가 아닌 청소년으로서 처음 시청했던 대학가요제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노래가 바로 고은희 이정란 듀오의 '그대와의 사랑'이었다. 독특한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화음이 인상에 깊이 남았었는데, 다음날 친구들을 만났을 때 다들 같은 반응이었으며 이 노래가 대상을 받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은 나이는 같지만 고은희가 한 학년 위여서 이정란이 언니라 부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은희가 재수를 해서 둘은 홍익대학교에서 동급생이 되었고, 노래 동아리 '뚜라미'에서 활동하다가 '뚜라미' 대표로 1984년에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


1984년 대학가요제에 홍익대 노래 동아리 '뚜라미' 대표로 출전한 고은희 이정란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가 대학가요제에서 동상 수상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대학가요제 본선에 진출했을 뿐 본선에서 입상을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래가 아직까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본선에 오른 곡들은 대학가요제 음반 발매를 위해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는데, 그때 이들의 실력을 알아본 음반사 사장이 대학가요제와 별도로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앨범이 나오는 날 고은희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그녀는 시댁에서 연예활동이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방송 출연은 물론 앨범 홍보 활동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고은희 이정란'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이 나왔으나 쇄도하는 출연 요청에도 방송 활동은 이정란 혼자 솔로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정란은 솔로 활동을 하다가 93년부터 CCM(기독교 음악)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고, 고은희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서 샌프란시스코에서 평범한 은행원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앨범만 남겨놓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는데, 최근에 MBC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출중한 노래 실력과 잘생긴 외모로 인기를 끈 데이비드 오가 고은희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고은희 이정란이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지연 -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1988>


<김민우 - 입영열차 안에서, 1990>


<조정현 -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1989>


<고은희 이정란 - 그대와의 사랑, 1984 대학가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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