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칼 루이스 vs 벤 존슨 @ 88 서울올림픽
1988년 가을, 나는 친구들을 꼬드겨 자전거 하이킹을 가기로 했다.
신림동에서 출발해 행주산성까지 가는 당일 코스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오랜만에 공부에 대한 압박을 벗고 주말에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설레었다.
그때는 토요일에 오전 수업을 하던 때여서, 4교시 수업을 마치고 바로 출발하기 위해 모두 자전거로 등교를 했다.
드디어 수업을 마치고 무거운 책가방은 집이 가장 가까운 친구 집에 맡겨두고 지도 한 장과 빵과 물을 싸들고 대장정의 길을 나섰다. 그리고 중요한 물건을 하나 더 챙겼는데, 바로 휴대용 라디오였다.
1988년 9월 24일, 공교롭게도 그날은 서울올림픽 100m 달리기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갈색 탄환 칼 루이스와 마하 인간 벤 존슨의 올림픽 결승 맞대결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경기였다.
84년 LA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 계주, 멀리뛰기까지 4관왕을 차지했던 미국의 칼 루이스가 단연 화제였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는데, 오랜 가난의 설움을 딛고 당당히 올림픽을 개최하는 기쁨에서였을까 우리 국민들의 환영이 지나쳤는지, 칼 루이스는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무시하는 듯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 젊은이들 사이의 반미감정이 더해져 칼 루이스는 실력은 있지만 인간성은 쓰레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어부지리로 캐나다의 벤 존슨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우리도 반항심이 강한 사춘기 소년들이었기에 벤 존슨을 응원했다.
휴대용 라디오를 챙겨 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한 달 전에 약속했던 하이킹을 이 경기 때문에 취소하기에는 아쉬워 대신 라디오 중계라도 들으려 한 것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신림동에서 행주산성까지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영등포를 지나 여의도를 거쳐서 마포로 해서 가기로 계획했었는데, 그때는 자전거도로가 없었고 도로에 학생들이 자전거 타고 떼 지어 가는 모습이 위험해 보였는지 지나가는 차들마다 클랙슨을 울려대는 통에 깜짝 놀라 넘어질 위기를 몇 차례나 겪었다.
지도를 보며 영등포를 지나 어찌어찌 가다 보니 길은 넓은데 차가 거의 없는 큰 도로가 나왔다.
아무도 클랙슨을 울리지 않으니 살만해서 신나게 달렸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검문소가 나오는 게 아닌가. 우리는 도로 위에 검문소가 있는 게 신기했고, 검문소를 지키던 헌병은 우리를 보고 당황한 것 같았다.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묻기에 도로 입구로 들어왔다고 하니, 어이없다는 표정과 함께 위압적인 말투로 자전거에서 모두 내리란다. 그곳은 자동차 전용도로인데, 겁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무단질주를 한 벌로 기합을 주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군인이 제일 무서운 때라 우리는 할 수 없이 푸시업과 앉았다 일어서기, 제자리 토끼뜀 등 헌병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실 기합은 겁 없는 철부지들한테 겁만 주려는 것이었고, 차가 많지 않지만 자동차 전용도로라 위험하니 다음번에 나오는 출구로 꼭 나가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우리를 풀어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도로가 이제 막 시범개통을 한 올림픽대로였다.
아마도 올림픽대로에서 자전거로 신나게 질주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믿거나 말거나~
검문소에서 풀려난 우리는 다급해졌다. 결승전을 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가져온 휴대용 라디오는 스피커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친구가 이어폰으로 듣고 중계를 해주기로 했다. 자전거로 달리면서 친구가 입으로 중계를 하는데, 다행히 차가 없어서 잘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나서 벤 존슨이 밉상 칼 루이스를 이겨주길 내심 바랬다.
그리고, 마침내 기적이 일어났다. 벤이 칼을 누르고 세계신기록으로 100m 우승을 차지했다. 우리는 마치 대한민국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 어쩔 줄을 몰라했고,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 행주산성을 향해 달렸다.
벤 존슨의 금메달은 3일 천하로 끝났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메달을 박탈당하면서 금메달이 칼 루이스에게 돌아갔고, 세계신기록도 무효가 되었다. 덕분에 세기의 맞대결로 이목을 끌었던 이 경기는 더욱 유명해져서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목적지인 행주산성에 도착한 우리는 매우 실망하고 말았다.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아낙네들까지 행주에 돌을 옮기며 결사항전을 했던 산성의 위용을 기대했었는데, 산이라 하기에는 너무 낮은 언덕이고 허름한 유적지와 산성 터만 덩그러니 있었다.
하이킹을 주도했던 나는 실망감보다도 친구들에게 미안함이 더 컸지만,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친구들을 만나면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의 하이킹은 순수했던 철부지들의 낭만여행이었다.
<1988 Olympics Men's 100m fi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