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dy Sep 19. 2024

선생님 전공이 배우고 싶어요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중국으로 유학 가있는 한학기동안 전공과목인 디자인을 배우지 못했다. (물론 오기 전에는 스트레스에 한 몫 했지만) 처음에는 그저 즐거웠다. 3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노트북을 열고 마우스를 잡던 날들의 반복이었고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사이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


’이걸 한다고 다 무슨소용이지? 뭐가 창작이고 뭐가 예술인거지. 나는 어디가서 디자인 한다고 해도 되는 수준에 속하긴 하나?‘

의미없는 물음의 반복은 자기혐오로 이어졌고 좋아서 택한 길은 자꾸만 즐거움과 멀어졌다. 멀쩡히 졸업하고 쉴틈없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선택지에 등돌린 이유에도 ‘반복되는 일-공부 가 지겨워서‘ 가 있었다.


’오늘은 아침조깅을 갈까 말까. 밥 뭐먹지, 숙제가 있었나, 수업 몇시지...‘

빠르게 돌아가는 쳇바퀴처럼 쉼 없이 헐떡이는 삶을 살던 한국에서 도망친 중국. 타국에서의 나는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중했다. 어제는 조금 생산적인 하루, 오늘은 놀고 먹으며 보낸 비생산적인 하루. 매일을 뛰면서 보내지 않아도 되며, 이렇고 저러한 하루하루가 모여 ’해외유학‘ 이라는 한 줄이 되어준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밖에서는 중국어를 공부하고, 집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며 다른 언어에 슬슬 익숙해지는 한 달을 맞이할 무렵.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디자인 배우고 싶다.’


분명 타인에게 평가당할 수 밖에 없는 전공 특성이 지겨웠고, 어도비를 키고 한숨을 쉬며 시작하는 하루가 싫었고, 인스타에서 꿀팁이랍시고 뜨는 디자인 툴 강의 릴스가 싫었는데. 어느새 바리바리 싸들고 온 모눈종이와 4B 연필로 글자를 끄적거리고 있었고, 내가 있는 지역의 미술관과 박물관, 전시를 찾아보고,  학교 내 미대라고 소개하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한번 올라가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정도면 전생에 청개구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답도없는 갈증을 느끼던 어느 날. 학교에서 ‘학교의 개선/건의 사항을 말하는 회의’ 자리에 일부 학생들을 초대했다.  


아직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싶고 듣고싶은 것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

나는 전날부터 대본을 쓰며 하고픈 말들을 정리했다. ‘하반기에만 다전공이 열리는 커리큘럼이 불만족스럽다. 언어가 완벽히 안 통해도 좋고, 시각디자인이 아니어도 좋고, 점수 반영 안 되어도 좋으니, 순수미술이든 뭐든 예술관련 수업을 청강으로라도 듣고 싶다’ 고.




”캘리그라피 수업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시는건지, 작품활동을 하시는건지 모르겠어요. 시범이 너무 길고 지루해요“

”더 높은 급수의 자격증을 취득하고싶어요. 지금 배우는 강의의 폭을 확장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외국인 학생들은 생각보다 적극적이었다. 의견 표출에 있어 방어적인 한국인들 위주로 봐 오다가, 거침없이 본인의 의견을 발표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알수없는 기분을 느꼈다. 학교의 운영진을 겸임하시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충분히 납득가능한 의견이라며 말해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또 건의사항 있나요.


”저... 하나 있습니다.“


조심스레 손을 드니 시선이 쏠렸다. 말해보라는 눈짓에 입을 뗐다.


“저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주 전공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환학생을 온 이 학교에서는 1학기 커리큘럼에 언어수업만 있다는 이유로 전공 공부를 못하고 있어요. 디자인이 배우고 싶어요. 언어가 부족한것도 알고 있고, 학점 인정 안 될 수도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청강이라도 좋습니다. 들을 수 있는 관련 강의가 있다면 꼭 듣고싶어요.”


앞에 앉아있던 몽골인 친구는 내가 엉망진창으로 영어를 뱉으며 발언하는 내내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바라보았다. 무슨소리인지 알아들으셨으려나 싶었는데 선생님들께서는 저마다 열심히 노트에 필기를 하셨고, 운영진 중에서도 대표로 게신 분이 “적극적으로 논의해볼게. 아마 유학 커리큘럼에는 없겠지만 중국 미대생들의 커리큘럼 청강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건의해줘서 고맙다” 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전공을 배우게 되었냐 하면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적극적으로 논의해보신다던 그날 이후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수업 청강 관련하여 별다른 안내는 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내가 이야기 함으로서 미대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 이후 학교 체험 프로그램에 미술 관련한 활동이 있으면 가장 먼저 나에게 따로 연락을 주셨고, 학교 운동회 유니폼 디자인을 제안 주시려고도 했다고 한다. (기한이 빠듯해서 나에게 오진 못했지만.) 내가 원하는 바를 미숙하더라도 직접 표현했던 그 날은 나에게 손에 꼽는 기억이 되었다.

이전 05화 K-컬쳐의 위력이 이정도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