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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Sep 13. 2024

K-컬쳐의 위력이 이정도라니!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장 크게 느꼈던 적이 언제였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고민없이 중국 교환학생 시절이라고 말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만나는 이들 모두가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케이팝에 눈을 반짝였고, 한국어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넓은 캠퍼스는 동교와 서교로 나뉘어있었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려면 호수가 보이는 긴 다리를 지나야 했다. 숙소는 동교에 위치해있고 수업은 서교로 잡혀있던 나와 동기,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들은 매일같이 하얀색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좌석구분없이 마주보는 상태로 낑겨타면 그만이고 입석도 가능한 스쿨버스는 옆사람과 작게 사담을 나눠도 기사아저씨 귀까지 들어갔다.


점심 뭐먹냐. 시켜먹을래? 그러지 뭐.

나란히 앉아 한국어로 시덥잖은 소리를 중얼거리면 다들 이어폰도 없이 보던 틱톡의 볼륨을 줄이고, 또는 하던 대화를 멈추고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버스 하차 직전까지 내내 쳐다보는 친구도 있었고, 종종 용감한 친구들은 ’너네 한국인이니?‘ 이라고 물어봤다.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길에서 아이돌 마주친 마냥 입틀막을 하는 중국 학생들을 보며 ‘이정도일줄은 몰랐던’ 한국의 인기를 실감했다. 버스에서 만나 친해진 친구들과 위챗 메신저를 교환하기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같이 치거나, 농구를 하거나, 시외로 맛있는것을 먹으러 나가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대체로 장원영과 한국의 메이크업을 좋아했고, 남학생들은 르세라핌과 블랙핑크를 좋아했다. 중국어로 발음하는 한국 아이돌들의 예명은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하루는 나도 안 본 환승연애를 시즌 2까지 정주행했다는 친구를 보며 ‘국적 바꿔줘야하나 이거?’ 라는 생각을 했다.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언어를 배우러 온 유학생들 또한 한국을 참 좋아했다. 특히 내가 파견 간 학기에는 아랍인 학생들이 전체 유학생의 8할을 차지했다. 공통 교양수업 첫날, 가까이 앉은 아랍 친구들이 살며시 오더니 영어로 말을 걸었다. 한국을 좋아한다고, 만나서 반갑다고. 손흥민을 좋아한다는 친구, 아랍이랑 한국이랑 축구 경기한 거 봤냐는 친구 (당시 월드컵 시즌이었다)... 서글서글 웃는 모습이 인상깊었던 한 아랍인 친구는 나에게 ‘김치를 먹어보고싶은데 어디서 먹을 수 있냐’ 고 물었다. 마침 볶음 하나, 일반 하나 총 2개 챙겨온 팩김치가 생각났다. 나 한국에서 팩으로 된거 가져왔어. 원하면 수업 끝나고 받아가! 내 말을 듣고 엄청 기뻐하며 고맙다 답하는 모습에 홍보대사라도 된 마냥 흐뭇했다.


“이왕 주는 거 맛다시도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헐 맛다시도 가져왔어? 대박 얘네 이거 먹으면 못빠져나온다.”


배달의 민족, 빠름의 민족 그리고 정 많은 민족 한국인 답게 나와 동기는 김치 외에도 뭐를 더 챙겨줘야 하나 고민했다. 아무리 시골이어도 한인마트 정도는 있겠지 하면서 양심상 김치 두팩 덜렁 챙겨온 나와 달리, 동기의 캐리어에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먹거리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정겨운 글자, 맛다시. ’외국인 중에 맛다시 먹어보는 기회 흔치 않을텐데 그 친구는 행운‘이라며 우리끼리 신나서 낄낄거렸다. 아랍인 대다수의 종교는 무슬림이고, 무슬림은 고기를 못 먹는다는것도 까먹은 채.


“이거는 김치고, 이거는 맛.다.시.라는거야. 양념인데 밥에 비벼먹으면 맛있어!”


수업이 끝나고 어둑해진 기숙사 앞. 나는 한국 문화 소개시켜주는 유튜브 채널의 고정 패널마냥 들뜬 목소리로 김치와 양념장을 설명해주었다. 와, 잘먹을게! 패키지를 이리저리 보고선 받아든 후 그 친구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몇시간 뒤 하얀 쌀 위 김치를 얹은 사진과 ‘so delicious' 라는 코멘트를 인스타그램으로 보내왔다. 훗 당연하지. 뉴욕 여행에서 친구가 들고와 먹고 감탄했던, 종갓집 볶음 김치라구. 맛다시에 대한 코멘트는 없었다. 처음 도전해보니까 두려울 수 있어, 그렇고말고. 한 치의 의문도 없이 그날은 뿌듯하게 잠이 들었다.


“잠깐만, 맛다시 고기 들어갔지 않나?”


다음날. 동기의 손에 이끌려 끊은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다가 머리에 퍼뜩 번개가 스쳤다. 시원한 실내에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와 잠깐만. 설마... 다급하게 맛다시 성분을 검색한 결과, 다진고기 함유, 여섯글자를 똑똑히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다. 먹지도 못하는 걸 선물이랍시고 준 것이다. 이것보다도 ‘혹시 모르고 먹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가장 컸다. 한국애들이 준 음식을 의심없이 먹었다가, 신성모독자가 되어, 온지 얼마 안된 우리와 한참 남은 학기 내내 겸상을 안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비디오처럼 빠르게 재생됐다. 망했다.


[ 안녕. 어제 너한테 김치와 같이 준 맛다시라고 부르는 양념장, 그거 혹시 먹었니? 혹시 안 먹었다면 먹지 마. 내가 미처 체크를 못했는데 거기 고기가 함유되어있어. 미리 성분을 알아보고 줬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러닝머신을 걷는지 기는지 뛰는지도 모르게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한채로 ’내가 지금 치명적인 실수를 했고 압도적으로 미안하다 한번만 용서해다오‘ 라는 내용을 한참 쓰고 지우며 긴 장문의 텍스트를 보냈다. 진짜 먹었으면 어떡하지. 짐싸서 집가야하나.


[괜찮아, 너네가 건네줬을때부터 난 그거 못먹는다는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어. 배려해줘서 고마워, 너네 참 따뜻하다. 내일 저녁에 작은 답례를 주고싶은데 시간 되니?]


답장이 올때까지 손에서 놓지않겠다는 집념으로 꼭 붙들고 있던 핸드폰에 ‘1개의 다이렉트 메세지’ 알림이 떴다. 무슬림으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딱 보면 고기함유인지 아닌지 구분이 간다나. 나의 사려깊은 연락에 오히려 감동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다행이다...!


그 친구가 불러내 건네준 답례는 넓직한 접시에 담긴 바나나, 사과, 그리고 직접 만든 파운드케이크였다.


“와 너네 숙소에서 베이킹도 해? 너가 만들었어??“


눈을 한껏 크게 뜨며 물어보니 친구는 설설 웃으며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고 답했다. 마침 윗층의 아랍권 여학생이 웰컴디너로 저녁을 만들어주겠다고 한 날이었기에 우리의 숙소로 돌아가 다른 친구들과 같이 파운드케이크를 맛봤다. 베이킹 좀 하는 친구구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때마다 알려주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번거로운 일을 대신해주면서 ‘너네 떡볶이 만들 줄 알아?’, ‘한국 화장품이 그렇게 좋다던데 무슨 브랜드가 제일 유명해?‘, ’나 한국 드라마 진짜 좋아하는데!‘ 라며 ’코리아‘ 라는 단어 하나에 열광하는 전세계 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던 기억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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