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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Sep 12. 2024

울 시간에 김치 좀 더 챙길 걸

공항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3시간 가량 걸렸다. 테트리스마냥 짐을 차곡차곡 트렁크에 싣고선 앞자리에 앉으신 선생님은 우리보고 눈을 붙여도 된다고 하셨지만 피곤함보다 긴장도가 높아 잠이 오질 않았다. 중국에서 카카오톡으로 통하는 위챗 메신저어플을 열어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나 도착함ㅠㅠ]


중국은 VPN 우회 안하면 카톡부터 인스타 다 못한다고 하니까, 위챗 깔아두고 내 연락 꼭 받아야돼! 신신당부를 하고 왔는데, 고맙게도 내 말을 잊지않고 빠르게 답장이 왔다.


[미쳤다ㅋㅋ 그래도 금방 갔네]

[첫인상 어떰?????]

[밥 잘 챙겨먹어]


10년 넘게 보고지내며 한국에서는 못보던 애틋함이 메세지에서 묻어났다. 그러게 금방 오더라, 한국이랑 크게 다를 건 없네, 고맙다 너도. 답장을 하는데 자꾸만 입에서 풍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났다. 텍스트로 말끝마다 한숨을 길게 붙여 보냈다. 하아...


똑같은 풍경을 서른 번 정도 창밖으로 흘려보냈을까. 거의 다 왔어. 본인 짐 빠짐 없이 챙기렴! 선생님께선 말씀하셨다. 얼마 안 있어 비석에 새긴 ’大学 (대학)‘ 글자가 눈에 들어왔고, 본교 규모의 3배정도 되는 캠퍼스가 펼쳐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가 대학교라고? 한참을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니 곳곳마다 광활하게 펼쳐진 잔디, 빼곡하게 주차되어있는 전동바이크와 자전거, 아파트 규모로 솟아있는 기숙사... 학교라기보단 레고로 만든 소도시에 가까운 풍경이 반겼다. 학교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겠는데. 떡 벌어진 입으로 자본이 느껴지는 뷰를 감상하며 생각했다. 기사님은 넘버링이 1로 되어있는 건물 앞에서 차를 주차 후 차례로 짐을 내려주셨다.


실바니안 패밀리를 아는가. 비싸서 부모님 지갑을 거덜내기로 유명한 장난감. 엄지손가락 만한 작고 귀여운 동물 피규어들과 그렇지 않은 웅장한 규모의 저택이 한 세트이다. 기숙사라고 하는 커다란 빌딩 앞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데 순간 현실판 실바니안 패밀리의 객식구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기숙사는 5층까지 있었지만 나와 동기의 숙소는 2층이었다. 뉴욕에서 엘리베이터 없는 6층 숙소까지 똑같은 캐리어를 옮겼던 경험에 비하면 2층은 양반이었다. 1층 로비에서 입주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한 뒤 잃어버리면 물어내야한다는 방 키를 꼭 쥐고 올라가 한 학기간 집이 되어줄 숙소를 마주했다.




2인실 방 3개, 공용 거실, 공용 화장실, 공용 주방. 한 숙소 당 내구성이 생각보다 쾌적했다. 나쁘지 않은데? 거실에는 큰 탁자를 중심으로 푹신한 다인용 소파가 놓여있었다. 본가를 나와 생활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기숙사 비교대상 또한 없었다. 조심스레 열어본 방의 컨디션도 사진으로 미리 접했던 그대로였다. 대칭으로 2개씩 구성된 옷장, 책상, 침대, 그리고 한개의 베란다. 비싼 숙소비 주고 왔으면 살짝 실망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학기당 3000 위안 (한화 약 55만원) 인 것을 생각하면 가성비는 확실히 있었다.


방바닥에 커다란 캐리어를 내려놓고선 정신없이 풀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노크를 했다. 캐리어를 발로 낑낑 밀어 지나갈 공간을 확보한 다음 문을 여니 작고 호리호리한 애가 서 있었다. 길게 땋아내린 레게머리, 퍼 코트, 긴 네일, 반짝거리는 섀도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애는 가장 끝방에 사는 ‘린다’라며 소개하고는 (미드에서 오랜만에 만난 여자애들이 내는 돌고래 하이톤으로) 만나서 반갑다며, 이번에 한국인 여자애들 온다길래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하이 린다~ 하하하. 똑같이 손을 들어서 인사한다음, 대화에 마가 뜨는 상황을 못참는 나는 냅다 한국에서 대량으로 싸온 마스크팩부터 내밀었다. 이거 피부에 좋은거. 얼굴에 올리고 자면 되는거야. 나와 동기가 종류별로 공세한 마스크팩을 앞뒤로 확인하더니 린다는 고맙다고 답했다.


“잘쓸게. 너희 너무 친절하다. 저녁에 아직 안들어온 숙소 여자애들이랑 같이 밥먹을까 하는데, 시간 돼?”

“당연하지, 너무 좋아!“

“알겠어. 너네 짐 다 정리되면 위챗으로 나한테 메세지 남겨줘~”


오케이, 땡큐, 하하하 - 자동완성처럼 문장 끝마다 따라붙는 부자연스러운 웃음의 볼륨을 천천히 줄이며 방문을 다시 닫았다. 초등학교 영어교과서 본문으로 나올법한 대화를 나누고서야 여기 진짜 외국이구나 싶었고, 최종적으로 이 나라에서 나는 0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와... 영어 공부좀 열심히 할걸. 수능때도 안한 후회를 24살에 중국 와서야 하고있었다.


저 친구가 뭐래요? 방문 뒤에서 대화를 잠자코 듣고있던 동기가 물었다.


“아 저녁 같이 먹자고, 이따가 짐 풀고 문자하래요.”

“영어 잘하시네요.“


동기의 말에 열심히 짐을 풀다 말고 쳐다봤다.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린가? 그런 소리 생전 처음 듣는다고 대답했다. 한때 미드에 빠져 살았던 시기가 있긴 하지만, 흥미가 없으면 근처도 안가는 공부 편식쟁이였기에 명함 못내미는 실력인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잘하시는데요? 저는 영어 못해요. 한국에서 영어 할 줄 아는 게 디폴트값으로 여겨져서 싫어하고요. 그래서 중국어 공부한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되게 솔직하네. 속으로 생각했다. 한살 후배였던 동기는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본인은 없는말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고, 이후에도 종종 나보다 더 진솔하고 어른같은 면을 보였다.




“백스트리트에 먹거리 골목이 있는데, 그쪽 마라탕 맛있어. 너희 마라탕 좋아해?“


숙소 인원은 총 다섯. 중간 방을 쓰는 여자애들 두명을 만나 다같이 점심을 먹으러 향했다. 몽골인, 피지인, 나미비아인 그리고 한국인 두명. 이때까지만 해도 다른 기숙사에 사는 한국인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뿐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온 우리를 반기는 것도 신기헀고, 한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한국 대기업계 글로벌 광고대행사에서 일했다는 몽골인 쿠란은 ‘먹고죽자‘ 라는 한국의 회식 건배사도 알고 있었다. 커다란 운동장 뒤를 돌면 펼쳐지는 먹자골목에서 각자 먹고싶은 음식을 포장하고 숙소로 돌아와 나눠먹었다.


집을 떠나온지 반나절만에 ’어떻게 반년을 살아내야할까’ 라는 고민은 ’헤어질 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로 바뀌었고, 물티슈 한 통을 다 써도 나오는 먼지투성이 책상과 침대, 서랍을 새벽까지 닦으며 생각했다.


‘걱정하고 울 시간에 두팩밖에 안 챙겨온 김치나 더 챙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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