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인생에 있어 모든것이 그러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 교환학생 준비할 때.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 파견교와의 인터뷰 (및 레벨테스트), 입학통지서 수령, 학생비자 준비, 건강검진, 본교 오리엔테이션 참석, 비행기 예매... 아니 인터넷으로 찾아볼 때는 다들 야무지게 출국해서 내일이 없는 것 처럼 놀던데, 이런 수고로움을 거친 거였냐며. 준비를 해도 해도 끝이 안보여서 '와 진짜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가야돼?' 라는 생각도 했다. 뉴욕 행 비행기를 예매해놨던 인턴 퇴사날, 오후 반차를 내고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도 10개월간의 근무를 회상한다거나 첫 미국 여행의 설렘을 만끽할 틈도 없이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노트북을 켜고 중국에 계신 선생님들과 화상 인터뷰 겸 레벨테스트를 봤다.
중국은 입출국이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이다. 인터넷 신청 후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나오는 미국비자와 달리 한 학기 파견교환학생을 다녀올 경우 ’X2‘ 라는 이름의 학생 단수비자가 필수로 필요한데, 이를 발급받으려면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작성해야하고, 직접 지정 센터에 방문해서 신청하고, 약 일주일 뒤 방문해서 수령해야한다. 지정 센터가 서울 한 곳 뿐이고 일찍 닫아서 맛집도 아닌 곳을 오픈런 해야하는 피곤함은 서비스. 집에서 편도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오직 '서류신청 및 수령' 을 위해 왔다갔다 하면서 여러번 '참을 인'을 마음에 새겼다.
번거로운 준비과정만 문제가 아니었다. 감수해야 할 리스크 천지였다. 4학년 1학기를 교환학생을 다녀오게 될 경우 졸업을 위한 '1학기 - 2학기' 1년 커리큘럼의 졸업전시가 '2학기 - 1학기' 로 엇박을 타거나, 4학년 2학기에 내부적으로 그럴듯하게, 즉 '가라'로 진행될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이유로 2학년 혹은 3학년에 교환학생을 많이 간다고 한다. 편입생인 나는 4학년 1학기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돈 또한 스트레스에 한 몫 했다. 매달 가족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게 싫기도 했고, 학비를 제외한 비행기 값, 기숙사비, 보험, 식비 등 모든 비용을 책임지고 떠나야 진짜 독립을 했다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하지만 기분은 기분이고, 연말에 떠난 뉴욕에서 벌어둔 돈 절반을 지출한 상태였다. 반토막난 자산에 계좌마다 흩어진 돈들을 모아 계산해본 결과, 돌아오면 거지 확정이었다. 디자인과의 꽃 졸업전시를 코앞에 두고 거지가 되는 결말에 할복하고 떠나야 했다. 주변에서 대부분 나의 무계획 타지생활을 응원해주었지만 친한 친구들한테 지갑 사정을 이야기 했을 땐 "근데 그렇게까지 가야돼?" 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될 경우 전공수업을 못 들었다. 수업 교과목 확인 중 24년 봄 학기에 아무리 찾아도 디자인 강의가 없었다. 이상함을 느껴서 파견 학교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너가 오는 1학기에는 디자인 전공 강의가 없고, 언어(중국어) 강의만 수강이 가능해. 전공 듣고싶으면 2학기까지 (1년) 있거나 교환학생 다음학기에 신청해" 라는 답변을 받았다. 4학년 2학기에는 본교 커리큘럼 상 파견 자체가 불가하다. 즉, 교환학생이라 쓰고 어학연수라 읽는 타지살이를 하러 가야했고, 남은 학기는 1학기가 아니라 1년이 될 수도 있었다.
뭐? 당연히 전공 수업만은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교환’ 학생이니까. 그럼 나는 ‘중학교 때 간체자 잘 쓴다고 칭찬 받은 그 길로 독학했던 중국어’ 만을 배우러 피같은 내 월급을 주고 중국에 갔다 오는거라고? 차라리 영미권 어학연수면 간지라도 있었을거다. 누가 망치든 후라이팬이든 두꺼운 무언가로 머리를 내리치고 간 느낌이었다. 학교에 전화를 열심히 돌려봐도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요소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가면 인생 망한다.
‘교환학생 후회’, ‘교환학생 가지말걸’, ’교환학생 비추‘... 나처럼 집안 지원도 없이 무리해서 떠났다가 땅치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포털에 부정적 키워드를 검색해봤다. 회의적인 후기를 본다면 충격요법으로 이 답없는 여정을 정리한 뒤 정신차리고 복학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쉽게도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교환학생 따위 가지 않으리...’ 식의 원하던 후기는 나오지 않았고 ‘언어가 다르니 적응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한국 유학생이 많은 점은 좀 아쉬웠어요‘ 식의 애매한 후기들만 볼 수 있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거지. 무슨 후기를 다 저런식으로 쓰냐 싱겁게. 엄한 사람 탓을 하면서 노트북을 덮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삼남매 집안의 장녀로서 나름 이성적인 판단을 빠릿하게 내리는 편이라 스스로 믿어왔건만, 이상하게 손가락 까딱 한 번이면 크고작은 스트레스와 골치아픈 과정들이 없던 일로 되는 [항공편 취소] 버튼 앞에서 나는 자꾸만 머뭇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