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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화 Nov 25. 2024

1. 촉촉한 첫 비행의 기억

임용고사를 보고 배정받은 첫 학교에서 처음 담당한 학년은 고3이었고 그야말로 고3은 수업 지옥이었다. 새벽 7시반에 아침 보충수업을 시작하고 정규수업, 이후 저녁 6시에 오후 보충까지 끝내면 10시까지 지속되는 자율학습. 그 사이에 또 특별보충수업. 누가 교사는 방학이 길어서 좋다고 했던가. 고3 교사의 여름방학은 주말 포함 단 5일이었다. 남은 방학 기간도 내내 보충수업의 개미지옥. 하지만 보충수업 덕분에 얻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노란 봉투였다.


오늘날 노란봉투법의 노란 봉투만큼이나 당시의 나에게 개인적으로 아름다웠던 노란 봉투. 그건 매달 현금으로 지급되던 보충수업비가 든 돈봉투였다. 바쁜 고3 교사 생활은 돈 쓸 시간을 주지 않았기에 받은 보충수업비는 차곡차곡 쌓였고 영혼을 갈아 넣은 이 피 같은 돈으로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고 결심한 나는 드디어 비행기를 한번 타보자며 단 5일 동안 홍콩과 방콕을 다녀오는 살인적인 스케줄의 패키지 여행 티켓을 동료 교사와 함께 끊었다. 


떨리고 흥분된 마음도 잠시, 비행기 탑승 전까지는 낯선 경험에서 오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당시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교류하던 시기도 아니었고 변변한 여행 책자 한 권 없던 때라 내가 의지한 건 영문판 론리플래닛 한 권뿐이었다. 동네에서 리무진 버스가 있는 정류장까지 가는 길의 험난함(시내 버스 기사 아저씨가 그런 가방을 들고 타면 어떡하냐고 잔소리), 리무진 버스에 짐을 들고 올랐다가 또다시 듣는 기사님의 지청구, 다시 들고 내리다가 캐리어 바퀴에 발 찧기, 공항에 도착해서 표를 어디서 받는지 몰라 동에서 서까지 긴 공간을 횡단하던 난감함, 컨베이어에 짐 미리 올렸다가 한 소리 듣기, 입국장 개념을 몰라서 표 받고 또 공항 밖으로 나가기, 출국심사의 복잡한 절차에서 만난 지그재그 줄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고개 숙이고 줄들 밑으로 종단하다가 혼나기, 그리고 만난 휘황찬란한 면세구역에서 립스틱 하나 사려고 하다가 여권이고 탑승권을 달라는 요구에 가방을 뒤지다 짐을 한바탕 끄집어내 펼친 이야기는 물론, 환전은 환율이 가장 안 좋은 면세구역 은행에서 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는 입 아플 정도다. 그래도 좋았다. 다 너무 재밌고 신나고 계속 웃음이 났다. 혼나도 웃고 다쳐도 웃고 손해를 봐도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니까. 


우주선에 탑승하듯 흥분된 기분으로 밀폐된 복도로 걸어 들어가 다정한 승무원들에게 자리를 안내받은 행복도 잠시, 좁은 좌석에 앉아 밸트를 어떻게 매는지 몰라 당황한다. 아니 왜 의자 옆에 고정된 꼽는 곳이 없는 거야! 꼽는 곳이 있어야 버클을 꼽지. 근데 이 버클 모양은 왜 이래? 같이 간 동료도 첫 비행이긴 마찬가지라 우리는 벨트 한쪽을 손에 들고 우왕좌왕이다. 그러기도 잠시 이내 시작된 기내 안내 방송. 초집중 모드로 방송을 경청하며 고개를 한껏 내뽑고 저 앞에 서 있는 승무원의 몸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아, 저렇게 끼우는 거구만. 밸트를 해결한 안도감은 일순 지나가고 각종 위험 상황의 대처법에 손잡이 밑, 발아래를 샅샅이 훑으며 어디를 열고 무엇을 꺼낼지를 시뮬레이션한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왠지 곧 추락할 것만 같아서 이 여행을 감행한 것을 잠시 후회한다. 


불안감에 의자 손잡이를 꼭 붙들고 있는데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녀석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100미터 달리기만큼의 몸의 충격도 바람의 감각도 없지만, 왠지 내 인생 최대의 속도를 찍고 앞으로 나가는 듯한 기묘한 느낌. 촉감이 아니라 소리로 달려 나가는 그 느낌 속에 몸이 부웅 떠올랐다. 우와~! 다행히도 비행기에 같이 탄 몇몇 아이들의 소리에 묻혀 내가 내지른 소리까지 묻혔으니 망정이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쪼끔 부끄럽다.       

동료와 나는 빙긋 웃으며 타원형의 동그란 창밖을 응시했다. 아이들 소풍 인솔자로 따라가 에버랜드의 독수리 요새를 타고 날았을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오바이트도 안 나오는 첫 비행. 은 그렇게 아름답게 두둥실 떠오르고……. 오잉?


동료와 나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둘의 표정이 똑같았을 것이다. 오잉? 이거 뭐야? 어떡하지? 그리곤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한번 터진 웃음은 멈출 줄 몰랐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입을 틀어막고 계속 웃어댔다. 동료는 고개 숙인 내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쳐 가며 따라 웃었다. 그렇다. 우리는 오줌을 지렸던 것이다. 


공중에서 비행기가 기류를 타면서 한번 부웅~ 뜨는 순간이나 쑤욱 내려앉는 순간 나는 그 후로도 약한 방광 탓인지 오줌을 찔끔거릴 때가 종종 있었고 때론 그 느낌이 올 때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를 느낄 만큼 여유도 생겼지만 첫비행 때 부지불시간 이루어진 공중방뇨의 상황만큼은 너무도 당황스러워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린 약간은 젖은 채로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다. 


지금은 셀프체크인, 심지어 모바일 체크인도 할 수 있고 패스트트랙이 뭔지도 알뿐더러 무인 출국심사도 할 줄 안다. 처음에는 방법도 몰라 헤매던 면세점은 이젠 들르지도 않고, 살 물건이 있으면 인터넷 면세점에서 구매 후 공항 수령처를 찾아가 받는다. 환전은 당연히 모바일앱으로 해서 수수료를 아낄 뿐 아니라 국제현금카드나 QR결제 앱도 만들어서 환전을 거의 하지 않고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공항에서 허둥대지 않는 느긋하고 점잖은 ‘으른’이 되었다. 그래도 첫 비행 때의 흥분과 기대는 잊히지 않는다. 


3박 5일의 여행을 다녀오고도 6개월을 우려먹을 만큼의 무용담을 만들어내, 심드렁을 넘어 ‘또야?’라는 표정을 짓는 친구들 앞에서 침을 튀기며 세세한 이야기를 쏟아놓는 순간이 좋다. 모든 것이 새롭고 즐거워서 숨구멍 하나하나에 공기도 냄새도 풍경도 다 새겨지던 그때의 기억이 좋다. 오늘 당장도 떠나고 싶은 나의 마음은 아마 첫 비행이 내게 준 아드레날린의 흔적 때문일 것이다. 비록 지금은 재채기에 더 자주 오줌을 지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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