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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화 Nov 25. 2024

1+ 뽀나쓰

보석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오줌을 지리며 떠난 첫 해외여행은 패키지여행이었다. 이 패키지여행 덕분에 이후로는 단 한 번을 빼고는 패키지여행은 다시 안 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패키지치고는 단촐한 여섯 명이었으나 인원이 적다고 좋아했던 것이 무색한 3박 5일이 되었다. 나랑 학교 동료 빼고 나머지 네 명은 가족이었다. 50에서 60대로 추정되는 남편과 아내, 형수 두 명. 이들끼리도 특이한 조합이었는데 20대인 여자 둘까지 더해지니 뭐 하는 그룹인지 모호한 그림이 되었다. 남자의 직업은 의사였고 형수 둘을 관광시켜준다면서 본인이 다 쏜다고 데려온 여행이었지만 대가 없는 공짜는 없는 법, 여행 내내 형수 둘은 이 부부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고 비위를 맞춰주었다. 아니, 그런데 의사 아저씨? 저희 패키지 비용도 대신 내셨나요? 왜 우리까지 눈치보고 끌려다니게 만드셨나요!


나와 동료는 첫 해외여행으로 들떠 새로운 문물에 대한 기대로 가득찼건만 우리가 3박 5일 동안 간 곳은 대부분 쇼핑과 관련된 곳이었다. 방콕 여행가이드는 우리보다 몇 살 많은 언니였는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승합차에 태우고 시내에서 꽤 떨어진 외곽 지역으로 데려갔다. 주변에 딱히 볼 것 없는 벌판에 큰 건물 하나가 나타나자 나는 태국의 역사를 알기 위한 박물관부터 견학하나 보다 했지만 웬걸, 그곳은 ‘돌’을 판매하는 쇼핑몰이었다. 동료와 내가 그 건물의 로비에서 멀뚱히 세 시간 정도를 기다리다 허기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다른 일행 세 명은 뾰로통하고 의사 부인과 가이드만 흡족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무엇을 샀냐 물으니 돌덩이를 샀단다. 뭔 돌멩이를 방콕까지 와서 세 시간 동안 골라서 사나 의아했지만, 질문할 힘도 없어서 밥을 먹으러 따라나섰다. 저녁은 한식이었다. 아니, 여기 방콕인데 팟타이는요?


다음날에는 왕궁과 수상 시장과 식물원을 핥듯이 지나쳐 다시 어떤 쇼핑몰로 갔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 라텍스와 꿀, 의약품 등을 파는 곳에서 동료와 나는 구경할 것도 없어 또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다른 일행은 손에 뭘 주렁주렁 들고 몇 시간 후에 나타났고 매출을 잔뜩 올린 가이드 언니는 신이 나서 우리에게 음료수도 사주고 마사지도 공짜로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리곤 오래 기다린 우리에게 미안했는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따 밤에 좋은 데 데려가 줄게. 마사지 끝나고 숙소 도착하면 방에 가지 말고 기다려.” 그런데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의사 아저씨가 뭔가 알아챘다는 듯 가이드 언니에게 살짝 자기도 데려가라고 했다.


다시 승합차를 타고 오래 달려 밤늦게 도착한 숙소에서 피곤한 형수님 둘은 먼저 방으로 올라가시고 가이드 언니는 우리 둘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의사 아저씨가 어허, 하며 따라붙었고 그의 부인도 “나도 데려가요!”가 되었다. 언니는 대단히 난감한 표정을 보이다가 별수 없다는 듯 우리 넷을 데리고 다시 승합차에 올랐다.


로비에만 앉아 있다가 끝날 줄 알았던 우리의 첫 패키지여행, 동료와 나는 그날 밤, 이 패키지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만나게 되었다. 방콕의 가장 핫한 초대형 나이트클럽으로 우리를 데려간 언니는 뒷돈을 주고 저지당하는 의사 부부까지 무사히 클럽 안에 입장시켰다. 그리곤 무대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멋지게 생긴 사람들이 무대에서 안무에 맞춰 댄스곡을 부르고 있었고 사방팔방에 대형 전광판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나이트클럽의 규모는 웬만한 학교 체육관 크기에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조명도 화려했다. 한국에서 몇 번 간 콜라텍이나 나이트클럽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화려함과 거대한 규모에 우리는 압도되었다. 가이드 언니는 내 귀에 입을 바싹대고 외쳤다. “이 무대에 서는 애들은 태국에서 젤 잘나가는 가수들이야. 한국으로 치면 가요 TOP10 1, 2위 하는 애들이지.” 언니의 설명을 입증하듯이 가수들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출 때마다 엄청난 환호 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가이드 언니가 갑자기 차가운 맥주잔 바깥에 10달러 지폐 두 장을 감아 붙였다. 잔에 서린 물방울로 지폐는 잔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곤 그 잔을 내 손에 쥐여주더니 내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갑자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가수가 내가 든 맥주잔을 받아 들더니 내 손을 잡아끌어 무대 위로 올리는 것이 아닌가. 사방의 전광판에 오줌싸개의 얼굴이 생중계되자 관객의 환호인지 야유인지 모를 엄청난 외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오는 코요테의 노래. “워어어 워어어 워어 어.어어.어어어~” 으흐흐…. 나는 이성을 잃고 되는대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소리는 더욱 커지고 나는 잘생긴 가수와 함께 얼굴이 팔리는 것도 잊은 채 광란의 춤사위가 아닌 몸사위를 선보였다. 이틀 동안의 로비 대기 여행을 깨끗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홍콩으로 가서 다음 가이드를 만날 때까지 의사 부인의 냉랭함은 홍콩 열도를 얼려 버릴 듯했다. 형수님 두 분께 전해 들은 얘기로는 나이트에서 젊은 여자들 앞에서 비비적대던 남편에게 화가 나서 그날 숙소에 돌아와 대판 전쟁을 치렀다 한다. 그러나 아내의 얼음장을 녹일 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방콕에서 사 온 돌멩이였다. 홍콩에서도 다시 반복된 쇼핑 지옥에 끌려다니던 우리는 어느 허름한 건물에 끌려 들어갔다. 철문을 몇 번이나 여닫는 과정을 반복하며 건물의 깊숙한 곳에 안내되면서 이것은 홍콩 누아르 체험 테마 여행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보석을 세공하는 곳이었다. 유리판으로 나눠진 수많은 각방에는 테이블 앞에 사람이 한 명씩 앉아서 이상한 광학기구 같은 것을 눈에 끼고 각종 쇳소리를 내며 예의 그 돌멩이를 하나씩 들고 신중한 손놀림으로 돌을 갈고 있었다. 가이드는 의사 부인에게 태국에서 사 온 각종 돌멩이를 받아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건넸고 그는 그것들을 유리문 안의 사람들에게 배분했다.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수많은 돌멩이가 보석의 모양을 갖추길 기다리는 동안 동료와 나는 신기하게 그곳을 둘러보았다. 완성된 보석을 파는 전시장도 다른 층에 있어서 가이드는 가공할 돌멩이가 하나도 없는 우리 둘을 그곳에 데려가 여기가 한국보다 훨씬 싸니 뭐라도 사라는 식으로 우리를 압박했다.


그렇게 다시 로비의 시간을 보내고 또 다른 명품 비밀 매장, 건강식품 판매장 등을 전전하며 우리의 로비 여행도 어느덧 마칠 시간이 되었다.


홍콩에서 가공한 수많은 보석을 몸에 걸치고 기분이 좋아진 의사 부인은 우리에게 홍콩-방콕 패키지여행을 이렇게 묶어서 하는 이유는 방콕에서 원석을 사서 홍콩에서 가공해 몸에 차고 들어오면 세금도 안 붙고 훨씬 싸게 비싼 보석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건 아무에게도 안 가르쳐주는 귀한 정보라고 생색을 냈다.


3박 5일의 로비 여행으로 피곤해진 우리는 드디어 한국에 돌아왔다. 의사 가족과 아쉬움이 전혀 없는 인사를 하고 헤어지자마자 의사와 그의 부인은 세관에 바로 잡혔다. 세관원은 팔목과 목을 들춰보라면서 주렁주렁 차고 온 보석을 가리켰고 둘은 원래 자기들이 차던 것들이라며 우겼지만 결국 어디론가 끌려갔다.


새로운 나라를 구경한 기억은 거의 없다. 쇼핑몰의 로비만 기억날 뿐이다. 그런데도 오줌을 지릴 만큼 흥분된 기억은 남았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태국의 유명 가수 손에 끌려 무대로 올라가던 그 순간,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고 사람들이 환호인지 야유인지를 쏟아내던 그 순간. 사회인으로 첫해, 힘든 줄도 모르고 바쁘게 달렸던 하루하루에서 당장 몰려오는 일거리에 파묻혀 나를 잊고 살았던 그해 여름, 단 몇 초 주인공처럼 온전히 내 몸의 흥분과 열기에 집중했던 그 순간만큼은 늙어서 방광을 조절하지 못해 기저귀를 차는 순간까지도 ‘행복한 젊은 시절’하면 떠올릴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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