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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동화 Nov 25. 2024

프롤로그

비행 청소년은 못 되고 비행 중년이 되어 떠난 비행 이야기

공항, 출국, 탑승 게이트, 입국장, 기내식.

들을 때마다 가벼운 설렘과 행복감을 주는 단어들이 있다. 내겐 그 단어 중 비행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비행’이라면 안 좋은 장면도 그만큼 많이 연상된다. 밀폐되고 갑갑한 자리, 흔들리는 기내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견디는 불안, 장시간 꼿꼿이 앉아 느끼는 목과 허리의 통증, 불특정 타인과 밀착된 어색한 시간을 견디기, 여행을 좋아하지만, 비행기 안의 이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나는 때로 순간이동의 초능력을 꿈꾸기도 한다. 그럼에도 떠남의 설렘과 홀가분함이 몸과 마음의 불편함을 상쇄하는, 난관을 기어이 넘어서고야 마는 즐거움이 비행에는 있다. 어쩌면 나는 ‘기어이 넘어서기’ 위해서 ‘그만 타야지’라는 어제의 다짐을 뒤로 하고 오늘의 비행을 꿈꾸는지 모른다.   


내 사주는 갑목, 큰 나무이다. 나무가 살아가려면 물이 필요한 법인데 내 사주에는 오행 중 물이 없다고 한다. 부족한 물을 채워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물을 건너는 것, 즉 여행이라고 그래서 내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거라고, 사주명리를 주역책으로 어설프게 공부한 사이비 점쟁이 친구는 말했다. 어쩌면 비행기로 대양을 건너는 것은 내 운명일지 모른다.


대학생 때까지는 돈과 여유가 없어서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비행기는 종이접기나 고무동력기로만 봤고,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주인공이 비련의 이별을 할 때 창공을 가르는 떠남의 방식으로만 만났을 뿐이다. 내게 비행기는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고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우리 남매들을 앉혀 놓고 말씀하셨다. “애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듣고 다녀선 안 된다.” 열두 살 때부터 머릿속에 새기고 산 문장이다. 언제나 모범생이었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고3때 평소보다 시험을 망친 나에게 선생님은 차선책으로 생각에도 없던 사범대학교를 권했다. 자격증이 하나라도 있으면 혹시나 필요할 때 집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설득에 나는 조금은 슬퍼하고 더 많이 수긍하며 원서를 썼다. IMF 사태가 터지고 정말 취업하기 힘들어졌을 때 그 차선책은 나를 구했고, 나는 취업을 해서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동생의 학비를 댈 수 있었다. 


대학 생활 내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 아르바이트를 몇 탕씩 뛰면서 통학을 위해 매일 왕복 세 시간을 지하철 안에서 오가는 동안 나는 친구들의 유학과 어학연수, 배낭여행 이야기를 곱씹으며 언젠가 해외에 꼭 나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돌바닥이 예쁘게 깔린 이국의 거리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흥분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작고 예쁜 빨간색 파라솔이 펼쳐진 노천 카페 한자리에 앉아 카푸치노를 시켜놓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아! 입가를 촉촉이 적시는 우유 거품…. “아이고, 저리 좀 치워!” 누군가 내 머리를 휙 반대편으로 날리는 반동에 놀라 깨 보니 옆자리 사람이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침을 닦으며 그의 어깨를 적신 나의 얼룩에 놀라 사과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내 눈에 들어 온, 창밖으로 지나치는 역 이름. 으악! 내릴 역임을 뒤늦게 확인하고 황급히 전철을 뛰쳐나오던, 침 묻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침 흘리며 부러워하던 비행기를 취업 후 드디어 타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행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비행의 과정 자체가 모두 새로웠고 비행 후 도착한 새로운 세계는 나에게 도파민 세례를 퍼부었다. 하루하루 아등바등 코앞만 보고 살던 나에게 비행기 위에서 바라본 세계는 세상을 보는 다른 시야도 있음을 알려 주었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 보게 된 확장된 세계는 삶의 방식이 달라도 생존할 수 있다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교사로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가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사람들의 이야기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다양한 학생과 교사 동료를 만날 수 있는 학교라는 공간은 무한한 삶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직장이었다. 하지만 때론 그 이야기 때문에 힘들기도 햇고 이야기를 들은 책임감에 무겁기도 했다. 이야기에 참견했다가 그르치는 오류를 감당하는 무게를 버틸 자신도 점점 없었다. 


이 직업이 참 무섭고 무거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한 학생이 질문했다. “선생님도 원래 다른 뭐가 되고 싶었어요? 대부분 선생님은 들어보면 다 선생님 말고 다른 꿈이 있었대요. 교사가 원래 꿈인 선생님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선생님도 혹시 그러세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웠다. 언제나 자신의 삶을 즐기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라고 했던 나조차도 이 직업 외에 내가 꿈꾸던 다른 삶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이야기했다. “나 그만둘래.” 


오잉? 이게 아닌데…. 그 아이가 원한 것은 나는 교사가 꿈이었고 그래서 만족하고 좋다는 대답이었을지 모르는데 나는 엉뚱한 대답을 적어냈다. 퇴직의 사유에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라고 적다가 커서를 뒷걸음질 치며 다시 적었다.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두 번째 세 번째 인생도 있다는 것을, 첫 번째도 너무 좋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도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은 괄호 안에 넣고, 그냥 내가 먼저 그런 선택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아이들에게 생각의 기회를 줄 수 있겠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홀어머니의 착한 딸로 사느라,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나는 중년이 된 지금 지랄 총량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청소년기에도 안 해 본 ‘꼴리는 대로 막 살기’를 실현 중이다. 그 행위 중 하나가, 하고 싶었으나 해보지 못한 목록인 ‘비행기 타고 여행가기’이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나는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주 적게 있는 사람이다. 비행기 표를 끊는 것은 아직도 내겐 사치이고, 경제적 형편이나 지구 환경을 생각해서도 매우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를 탈 때마다 설렘과 긴장과 두려움이 함께했고 이 복합적 감정의 덩어리가 내겐 언제나 궁금하다. 왜 무서워하면서도 또 타는지, 귀찮아하면서도 다시 짐을 꾸리는지, 돌아오고 싶어 하면서도 떠나는지 나만 이런 건지 다른 이도 비슷한지 궁금하다. 


처음엔 남들도 가는 비행기 여행, 나도 가보자는 호기심으로 떠났지만 떠난 자리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자유로움, 아름다움이 나를 매번 놀라게 했다. 그렇다고 내가 여행 고수들처럼 남들이 안 가는 오지 탐험이나 극한 체험을 떠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다녀오는 흔한 여행지들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모르는 세상의 이면과 내가 사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 내가 소비하는 대상이 달라지면서 느끼는 낯선 기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실은 내가 몰랐던 나의 다른 모습을 찾는 여정이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어쩌면 아직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비행기를 타는지 모른다. 떠나지 않아도 마음먹기에 따라 자리한 곳의 새로움, 자유와 아름다움은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직도 삶의 초보자인 나는 비행이라는 수단의 도움을 받아 나를 리셋한다. 


항공사나 공항의 직원도 아니고 조종사도, 승무원도 아닌, 심지어 여행사 VIP 회원도 아닌, 비행 마일이 한 줌도 안 되는 평범한 인간이 자격도 없이 쓰는 비행 이야기지만, 그래서 비행 한번 한번이 아주 소중했으므로 한 번의 비행도 소중하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쓴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자리한 비행의 경험이 우리에게 남기는 발자국에 관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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