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을 강조하는 스웨덴 학교 시스템
나는 학창 시절 소위 말하는 '모범생'에 가까운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알려주는 것을 잘 받아 적고, 잘 외우기만 하면 성적은 잘 나왔고, 또 지시하는 대로 잘 따르기만 하면 칭찬받고 예쁨을 받으니 계속해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 같다.
모범생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자신만의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것만 잘해왔기 때문에, 어른들이 하는 말에 의문을 품지 않으며, 절대 그것이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 효율적인 노동력 양성의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었을까)
어른들의 말이라고 다 맞는 게 아니고, 모범생이 꼭 좋은 것만이 아니라고 깨달은 건 내가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온 후에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착한 아이' 착한 학생' '착한 사람'으로 3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 온 내가 스웨덴에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바로 '너무나 많은 자유'였다. 스웨덴 학교에서는 정답이나 정답으로 갈 수 있는 빠른 길을 바로 제시하기보다, 최대한 스스로 생각하고, 틀리고 잘못되더라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한다는 특징이 있다.
나는 이 점이 바로 한국 교육과 스웨덴 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학생들이 시간을 아껴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정확한 방향 제시를 즉각적으로 하지만, 스웨덴 교육은 효율성보다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스스로 그 방향을 찾아가는 방법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35년 동안 한국에만 살면서 한국식 시스템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에겐 처음엔 이 점을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첫 학기, 첫 번째 과제를 받았을 때 그 당혹감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ESD(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지속 가능 발전 교육)에 대한 논문 3개를 읽고 분석하여 에세이 쓰기'
끝.
그것은 지속 가능 발전 교육이 무엇인지 단지 3번의 강의와 세미나를 한 뒤 우리가 받은 과제였다. 그 어떠한 세부 내용이나 과제의 방향성도 없고, 학생들이 과제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도
"일단 해 보세요. 과제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함께 토론할 겁니다."
"에세이가 중간쯤 완성되었을 때 교수들이 코멘트를 할 시간이 있으니 그때 피드백을 바탕으로 다시 생각할 시간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다였다.
이런 식의 강의는 두 번째, 세 번째, 그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지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관심 있는 토픽을 하나 선택하고, 같은 토픽을 선택한 사람들끼리 모여 연구 계획 세우기'
'마음이 맞는 5명의 사람들이 모여 지속적인 토론 과정을 통해 토픽을 하나 정하고 연구를 실행해서 결과 도출하기'
과제를 진행하면서 궁금한 점을 질문할 때에도 절대 바로 정답을 말해주거나 디렉트 한 방향성을 설정해 주지 않았다. 그저 관련된 책이나 논문을 추천해 준다거나 생각할 수 있는 질문거리를 던져 줄 뿐 명확한 답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도 통과할 때까지 계속 계속 5번이고 6번이고 재시험을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도 절대 '옳은 방향'을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방식에 처음에는 약간 화가 났다.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명확히 알 수도 없었을뿐더러 내가 하고는 있지만 이게 맞는 방향인지 확신할 수도 없었고, 질문을 해도 애매모호한 대답밖에 들을 수 없으니 답답했다.
어느 날은 내 에세이에 대한 교수의 피드백에 대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방향이 더 맞는 것인지 설명을 더 부탁한 내 메일에 대해서 그 교수는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단지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적인 면에 한해서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야. 네가 너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적었다면 그것은 맞는 거야. 나는 단지 옆에서 너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일 뿐이지 이것이 꼭 맞다고 말할 수는 없어. 네가 생각하는 것의 근거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공부하는 것이 앞으로 더 도움이 되겠지."
'...??......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나는 처음에 이런 식을 방법이 교수들의 설명이 명확하지 않고, 스웨덴의 학교 시스템이 친절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답'으로 가는 과정이 멀고 험난했지만, 그래서 그 과정과 결과가 더 값지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을.
그들은 그 과정에서 일관적으로 '나만의 생각'을 존중해 주었고,
교수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동등한 연구자로서 평등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자신감 있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냥 내 생각, 내 주장을 쓰면 된다. 그것이 맞다.
하지만 뒷받침해 주는 명확한 근거와 함께.
이렇게 '많은 자유'를 보장받는 교육을 경험한 지 1년 뒤
나는 내가 한국의 '철저하게 계획되고 짜여진' 교육 과정보다 이처럼 덜 계획되고 더 짜여진, 유연하고 자유로운 교육 과정이 더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만 제대로 제시하면 어떠한 나의 아이디어도 존중받는 환경.
그리고 그 어떤 생각도 틀렸다고, 잘못됐다고 아니면 이상하다고, 심지어 다수의 생각과 다른 조금 동떨어진 소수의 생각도 인정받는 환경.
그 속에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공부가 너무 재밌고 흥미 있고 즐겁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계획된 프로그램 속에서 정해진대로 하는 것이 더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다.
특히 성인이 아닌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이러한 '너무나 많은 자유'가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다.
이것은 요즘 스웨덴 학생들의 기초 학력 부진의 문제점 중 하나라고 꼽히기도 한다.
왜냐면 이런 시스템이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어서 때로는 그냥 방관하거나, 자기 주도 학습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어 그 결과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의 갭(gap)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든 다 장단점은 있는 법, 밸런스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 이상, 즉 고등 교육의 시스템에서는 이렇게 덜 규제되고 덜 짜인 방식(unstructured system)이 학생들의 자기 주도 학습을 보장하며, 나아가 창의적이고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우리나라는 명확한 상하관계, 보수적인 조직의 계층 구조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눈치를 보며 튀지 않게 적당히 묻어가고 순응하며, 나보다 높은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가 전반적인 조직의 안정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되는 문화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또 하나,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의 아이들은 남들에 비해 한 발이라도 먼저 앞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우물쭈물할 깊게 생각 할 시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정답으로 가는 '직선의 거리'를 미리 경험해 본(?) 부모들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제시하고, 아이들은 그렇게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그 방법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질문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질문을 하는 순간 남들보다 뒤쳐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각자 다른 사회적 분위기는 모두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를 저지한다.
'그냥 하라는대로 하면 돼. 그게 제일 편하고 오래갈 수 있는 길이야'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이 정말 싫다.
왜 은근슬쩍 두리뭉실 넘어가는 말로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을 막아 버리는가.
언제부터 우리 사회는 개인이 어떤 이슈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질문하는 기회를
'효율성'이라는 핑계로 전체를 위해 희생해도 된다고 치부해 버렸는가.
우리보다 더 나은 대한민국에 살 우리 미래 세대에게는
이제는 좀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주어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