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된 이야기
* 6월 중순부터 8월까지 긴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스웨덴은 1년에 '5주'라는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휴가 기간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고, 회사에 따라 7주, 8주까지 긴 여름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학교는 보통 두 달에서 두 달 반정도의 여름 방학이 있다.) 한국의 여름은 너무 더웠지만, 그리운 한국 음식을 많이 먹고 재충전해서 돌아왔습니다.
새 마음으로 다시 글을 써 보겠습니다.
제 어설픈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외국 유학'은 내 오랜 로망이었다.
그것을 꿈이라기보다 로망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늘 원하고 하고는 싶었지만, 내가 감히 꿈을 꿔서 실현을 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유학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어떤 목표나 외국에서 꼭 공부를 해야만 성공이 보장받을 수 있는 분야에 있는 특별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학을 온 사람들은 모두 조금은 '특별'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었던 것 같다.
대학원을 시작하면서 이 기대감이 깨지는 데 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물론 이게 상대적으로 스웨덴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학비가 저렴하고,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세계 몇 대 대학처럼 이렇다 할 굴지의 엄청난 대학이 아니어서도 그럴 수 있다. (옥스퍼드나 하버드와 같은 대학에 가면 어마어마하고 엄청난 사람들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성급한 일반화는 하지 않기를.)
스웨덴 대학은 참 조별과제를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과정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얻은 결과를 가지고 개별 과제를 완성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강의를 듣는 과정의 교수님들은 항상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누고, 다른 사람이 가진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연구자가 가져야 할 가장 큰 자질 중 하나'라고 강조하곤 한다.
이러한 결과로 나도 정말 많은 조별 과제에 참여를 했다.
조별 과제를 할 때 제일 먼저 이루어지는 과정은 바로 조를 구성하는 것이다.
마음에 맞는, 때론 랜덤으로 인원을 배분하고, 조원들끼리 서로 의논에서 함께 이야기해 갈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정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보통 4명에서 많게는 6명까지 인원이 한 조가 되는데, 나는 불행히도(?) 지금부터 이야기할 어떤 한 아이와 두 번이나 같은 조로 배정받는 상황에 놓였다.
그 아이는 20대 초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로 아마도 자신의 나라에서 대학교를 마친 뒤 스웨덴으로 바로 대학원 과정을 온 듯했다. 스웨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오빠와 함께 살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자신이 여기서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안 하고 있는 걸로 봐서 그 오빠가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 아이는 열 번도 넘는 조별 모임 중 딱 두 번 얼굴을 내비쳤다.
정확하게는 얼굴을 내비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온라인 줌 미팅을 할 때에는 카메라는 늘 꺼져있었고, 지금 빨래를 해야 한다, 집에 손님이 누가 갑자기 왔다 등 온갖 핑계를 대며 한마디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날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보통은 프레젠테이션 중 각자의 파트가 있어 우리 모두 자신의 파트를 준비해 왔음에도 그 아이는 그날 아침 단체 채팅에 느닷없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오지 않아 다른 사람이 그 아이의 파트까지 도맡아 했어야 했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 아이는 출석률도 저조했다. 수업 시간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단체 채팅 방에서 논의할 거리를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한 마디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맡은 부분을 해결하지도 않았음에도 했다고 뻔뻔하게 항상 거짓말을 하고 결과물을 공유한 적이 없었다.
왜 문서를 공유하지 않냐는 질문에 '갑자기 컴퓨터가 고장 나서'와 같은 되지도 않는 거짓말로 상황을 넘기기 일쑤였다.
어느 날, 같은 조의 한 다른 조원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 좀 봐.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 아이가 그 조원에게 보낸 개인 메시지였다.
"내가 이번 개별 과제가 너무 어려워서 그러는데, 네가 쓴 에세이 좀 나 좀 보여줄래? 참고해서 쓸게."
...
결국 우리는 그 아이는 조에서 없는 샘치고 과제를 마무리해야 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과정을 international 과정이라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정말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 등 내가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은 언제 이렇게 많이 만나봤나 싶을 정도로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행동하려면 도대체 왜 학교를 다니는 것일까.
학비, 생활비 같은 돈은 그렇다 치고, 젊은 시절을 투자하고 있는 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지도 않을까.
나는 스웨덴에 살기 시작하면서 사소한 행동과 말들을 더 조심하고 신중하게 되었다.
다른 외국인들이 나의 행동을 보며 '한국' 그리고 '한국 사람'을 평가할 것만 같아 항상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건 대학 생활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내가 다니고 있는 과정에는 한국 사람이 오로지 나 혼자이기 때문에 뭔가 '대표성'이 있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행동하게 된다.
내가 영어를 못하면 '한국 사람들은 다 저렇게 영어를 하나보다', 혹은 내가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면 '한국 사람들은 저렇게 소극적인가 보다'라고 생각할까 봐 더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이것이 나만의 개인적인 특성인 건지,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이기적으로, 뻔뻔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고, 당황스러웠고, 신기했다.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은 꼭 있다.
한국에도, 스웨덴에도. 세상 어디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똑같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좋은 점 하나는
예전에는 굉장히 화가 나던 상황들이
이제는 '그러려니'가 된다는 점.
그리고 그런 화와 기분 나쁜 감정들은
결국 나한테 돌아와 나의 정신 건강에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도 마음속으로 되뇌며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