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âteau de Chillon 해부 관람
역시 2주간의 제네바 출장 중 맞이한 주말. 금요일 늦게 회의가 끝나기도 했고, 출장지 동료들과 한 잔 하느라 늦게 잠을 청해서 인지 하루의 출발이 늦었던 토요일. 스위스 와인은 스위스 내에서 거의 소비되는 터라 스위스 밖에서는 거의 구경을 못한다고 한다(수출하지 않는다고 함). 하여 스위스 와인을 스위스 있을 때 제대로 마셔 보자 하여 벌어진 스위스 와인 페스티발이 늦은 시간 마무리 되었었다. Charcuterie와 함께 즐겼던 스위스 레드 와인. 결론은 '너 제법 괜찮다.'
늦은 아침을 호텔에서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스위스 관광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는 시용성에 다녀오기로 했다.
출발점은 역시 그 이름도 특이하신 꼬르나방역 (Gare Cornavin).
몽트뢰 가는 길엔 와이너리도 제법 눈에 띄고, 푸르디 푸른 경치에 마음도 평안해 진다. 역시 유럽은 기차여행이 진리다.
약 1시간 안걸려서 몽트뢰에 도착. 몽트뢰는 늘 미세먼지 한 점 없는 깨끗함과 철마다 피는 다양한 꽃들로 눈이 정화되는 곳이다.
몽트뢰 역에서는 버스로 약 15분, 레만호를 따라 걸어서 45분 정도의 거리에 시용성이 위치한다. 버스를 탔을 뿐인데 마치 해변 관광을 하는 듯 하다.
혹자는 레만호에 떠 있다고 표현하는 시용성 (Château de Chillon). 바위섬 위에 세워져, 멀리서 보면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처럼 보일 만도 하다.
7월말, 무더웠던 날씨. 뙤약볕을 정수리에 쪼이며, 찾아나섰던 시용성.
안내에 따르면, 시용성은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를 넘어오는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징수하기 위해 세워진 성벽에서 시작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프랑스 Savoy 가문에서 지배하던 시대에 (12~16세기) 갖춰진 것이라고 한다. 실로 중세 고성인 셈이다.
시용성 입구에서 해자와 성채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안내서에 따르며, 육지를 접하고 있는 성채는 적을 방어하는 용도로, 호수에 접해 있는 성채는 주거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내려 해자와 성채를 잇는 다리를 통해 들어간터라 호수쪽에서 성을 바라보는 뷰는 만끽하지 못했는데, 로잔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고 시용성이 도착하는 방법도 있다고 하니, 이 때는 크루즈 선에서 성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시용성 안은 제법 넓다.
안 뜰이 5개나 되고, 크게 병사들의 숙소, 성주의 숙소와 창고, 감옥, 시용성 백작과 수행원들의 방, 예배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일이 관람을 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하여 제네바에서 출발해서 몽트뢰를 거쳐서 시용성 구경을 한다면, 넉넉히 하루는 잡아야 제대로 된 관람이 가능하다.
시용성에서 사용하던 도구들로 둘러 쌓인 첫 번째 안뜰을 지나면 시용성 모형을 접할 수 있는데 바위섬 모양을 따라 호수를 자연 해자로 이용하여 공간을 알차게 구성한 듯 했다. 이어 지하실, 창고 등을 지나게 되는데 시용성을 받치고 있는 토대인 바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 요리 보고, 조리 보고. 모형도 사이즈가 제법 되어, 360도로 빙둘러 관람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대신 뜯어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이 성은 지하 감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 있는데, 이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던 많은 죄수 중에는 제네바의 종교 지도자였던 François Bonivard (프랑스와 보니바르) 라는 인물도 있었다고 한다 (1530년 대 6년 간 쇠사슬에 묶여 있다가 석방되었었다고). 영국 시인 바이런이 이 일화를 주제로 서사시를 쓰기도 했고, 하여 감옥으로 사용되던 공간의 기둥 한 곳에 바이런의 이름이 조각되어 있다 (실제 바이런이 새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함. 시인이 구지 벽 기둥에 자기 이름을 새겼을까?)
납골당이 보이는 지하 계단 (위의 사진 맨 왼쪽)을 지나쳐, 다른 계단을 올라가면 (위의 사진 맨 오른쪽) 두 번째 안뜰이 나온다.
두 번째 안뜰을 지나면 성주의 식당과 연회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중간 중간 중세 고성의 창들이 신선한 바람을 불러 들인다.
접견실과 방으로 사용되는 공간들. 고가구가 제법 운치있다. 뤼이뷔통 가방 무늬는 이 방의 벽 무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좀 뜬금없지만 모자이크 형식의 장식이 함께 한 창들도 눈에 띈다.
영주의 방, 구석방, Savoy 가문의 귀부인을 위한 처소를 연달아 지난다. 일자로 놓여있지 않고 비스듬히 삐딱하게 놓여있는 관람 의자들. 나는 왜 이런게 더 눈에 띌까.
다른 중세 성 관람에서는 직접 본 기억이 없는 중세 시대 화장실도 만날 수 있다. 상당히 깊어 보인다. 돌이라도 던져볼까.
공방으로 쓰였던 공간이라고 한다. 커다란 난로가 한 귀퉁이에 인상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창 밖으로 얼핏보면 해변처럼 보이는 호숫가에서 멱을 감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저 무리에 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제 드디어 예배당.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공간 따위와 비교가 되지 않는 우아함이 묻어 나온다. 세월의 흔적으로 희미해지긴 했지만, 딱 봐도 예배당이다.
세 번째 안뜰. 여기선 파란 하늘에 날리는 스위스 국기가 유독 더 눈에 띈다. 심플해서 마음에 드는 스위스 국기.
이제 다시 접견실과 연회장.
근위대의 탑이 보인다.
네 번째 안뜰. 방어와 옛 통로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어, 성을 방어하기 위해 쓰였던 무기들, 갑옷 들을 전시하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시용성은 실로 중세 성 관광을 위한 종합 선물 세트다.
특히 성 내부의 누각 (성루)에서는 시옹성 전망 뿐 아니라, 레만호, 몽트뢰 경치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다. 엽서 사진이 절로 나온다. VR이 따로 필요없다.
날도 덥고, 집중해서 걷고, 공부하면서 관광을 했더니, 머리에 쥐가 나는 듯 하다.
일주일 매일 하루 14간 가까이 회의를 한터라, 육체적 움직임은 거의 없었는데, 일주일 동안 할 운동을 하루에 몰아서 한 셈이다. 그래도 중세 성 관광 인텐시브 코스를 끝낸 보람이 있다. 내 머리를 스스로 쓰담쓰담.
몽트뢰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발견한 버스 정류장 앞의 대형 광고?
'두려워 하지 말라'
그렇다. 두려워 하기 보단, 부딪히고 그러면서 배워 나가는 편이 낫다. 중간 중간 실패하더라도 그것 또한 배움의 일부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결국 나중에 시도해보지 않았던 것 자체를 후회하는 것 보단, 부딪혀 경험해 보는 것이 억만배는 나은 법. 죽기 전에 후회하면 아무 소용 없을 것을. 어쩌면 두려움도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착각이다.
바이블의 '두려워 하지 말라'라는 말씀은 더 심오한 뜻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