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앙티브 Antibes Oct 15. 2021

트램, 호수, 종교, 시계, 중세를 한번에 - 제네바

종교와 철학에 대한 사색은 덤

제네바를 처음 방문했던 것은 2010년. 그 때만 해도 프랑스 남부에서 일하던 시절이었고, 브뤼셀만큼이나 국제 기관이 즐비한 제네바에서 국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출장으로 잠시 방문했던 때라, 저녁 식사 때나 잠깐 호텔과 회의장 주변을 서성였던 것이 다여서, 꼬르나방역 (Cornavin) 주변의 어수선함과 UN 본부 주변의 한산함이라는 극과 극의 이미지로 첫인상을 가지게 된 도시였다. 브뤼셀이 EU 기관들이 많이 소재한 곳이라면 제네바는 실로 국제기관이 즐비한 곳이다. UN본부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고, 국제 기관을 잘 몰라도 ITU, WTO 등 한 번쯤 뉴스에서 들어본 기관들의 헤드쿼터가 위치한 곳이라, 세계 어느 도시보다 국제적인 도시, 제네바.


하여 이곳이 중세의 흔적을 아주 잘 간직하고 나름 평화와 혁명을 주도한 심지어 철학으로도, 그것도 전세계에서 꼽을 만한 곳이란 것은 비교적 최근,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까지 국제 회의를 제네바로 자주 다녀온 이후에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특별히 종교가 없더라도, 그리고 특정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칼뱅의 종교개혁은 교과서에서도 접할 수 있는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네바가 바로 칼뱅의 종교개혁의 근원지였다고 한다. 실제, 제네바 를 두서 없이 여기저기 걷다 보면 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칼뱅의 종교개혁과 관련된 도시라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삐에르 성당(Cathédrale Saint-Pierre Genève)은 제네바 올드 타운에서 지나치기 힘든 곳이다. 중세 흔적을 간직한 유럽의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 올드 타운의 터주 대감처럼 우뚝 솓아 있는 삐에르 성당.


 

삐에르 성당 앞 삐에르 광장도 중세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어 제법 운치있다.  
삐에르 성당 한 모통이 칼뱅의 동상


유럽 성당 구경은 지겹도록 한터라, 구지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할까 싶었지만, 성당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이 호기심을 자극하여 성당 안으로 결국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칼뱅의 의자를 발견하고서야, 칼뱅이 이 성당에서 목회를 한 적이 있었고, 제네바가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유서 깊은 도시라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그 주변을 두서 없이 산책하다보면, 역시 중세의 어느 시점으로 소환된 듯한 시간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꽃으로 장식된 분수대와, 그 주변의 여유로운 분위기의 레스토랑과 까페. 자갈과 벽돌로 수놓은 중세 거리들과 건물들. 이런 운치 있는 조합과 중세 모노톤의 건물들의 특색이기도 한 묘하게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감에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분홍색 꽃과 야외 까페 공간의 색감이 또 묘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조화를 이룬다.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 지고, 무장해제되는 느낌.



멀지 않은 곳에 Hôtel Les Armures가 위치해 있고, 이 호텔에서 운영하는 듯한 Restaurant Les Armures은 퀄리티 있는 샤귀터리, 퐁듀 등 제네바 특선 요리 (프랑스 문화권이어서 프랑스 요리와 아주 유사하다)를 맛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스위스 안에서만 다 소비되기 때문에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스위스 레드 와인과 함께 하면 금상첨화다. 제네바 올드 타운에서 스위스 전통 요리 들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Restaurant Les Armures를 강추한다.




삐에르 성당에서 Hôtel Les Armures를 끼고 돌면 Place de Neuve (뇌브 광장)에 쉽게 다다른다. 여기서

Parc des Bastions의 큰 철창문과 개혁자들의 벽(Mur des Réformateurs)을 만날 수 있다. 개혁자들의 벽은 칼뱅 등 종교개혁을 추진했던 4인의 동상이 양각으로 조각된 거대한 벽으로, 나름 규모가 있어서, 그 앞에 서면 괜히 겸허해 지는 느낌이다. 그 뒷편이 칼뱅이 설립한 제네바 대학으로, 이 동상들은 칼뱅 탄생 400주년, 제네바 대학 35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제네바 올드타운도 여느 중세 도시들처럼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는데, 그 성벽에 양각을 한 것으로 보였다.



Parc des Bastions은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곳으로, 연중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는 이벤트 장소로 톡톡히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여유롭게 공원에서 게임을 즐기거나 가족들과 또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제네바는 사실 레만 호수로 둘러싸여 있어 호수 도시로도 유명한 곳이다. 멀리 몽블랑이 보이는 레만 호수가 산책도 제법 운치 있는데, 그 크기가 거의 서울의 면적과도 맞먹을 정도라고 하니 처음엔 바다처럼 보였던 것이 착시가 아니였던 것. 호수 주변으로 마치 해변에 들어선 건물들 처럼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고급 호텔과 부띠끄들이 들어서 있어 시원한 뷰를 자랑한다.


여름 시즌에는 레만 호 일부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된다. Bains des Pâquis가 그곳. 레만호를 따라 긴 산책을 하다보면 운동이 절로 된다.


제네바 하면 모터쇼 등 다양한 국제 이벤트가 열리는 도시여서 켄벤션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산업적으로 보면 전세계에게 가장 시계 산업이 발달한 도시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종교적인 박해로 이주해온 숙련된 시계공들이 정착하면서 시계 제조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빠텍 필립 고급 시계 부띠끄의 본사가 레만 호변 거리를 따라 들어서 있다.


빠텍 필립 본사 주변에는 까르띠에 등 명품 부티끄 들이 모여 있어, 명품 쇼핑도 한 번에 가능하다.


제네바는 도시 전체를 관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다양한 트램 노선이 있어, 산책하다 피곤이 슬슬 몰려오면 트램에 몸을 싣고 정처없이 제네바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종점에서 종점을 이동한다고 해도 크게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또 거의 모든 트램이 제네바 중앙역인 꼬르나방 광장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제네바 공항에서도 꼬르나방 역으로 10분 정도면 도착하는데, 이 기차에서 내려, 제네바 곳곳을 연결하는 트램을 타면 제네바 곳곳을 누빌 수 있다.


제네바 중앙역, 꼬르나방 역 주변과 실내, 제네바 다른 곳에 비해 밤 늦게까지 오픈하는 수퍼가 있어 편리하다.


트램을 타고 제네바 곳곳을 누비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면, 밝음과 어두움이 싸우는 사이 펼쳐지는 빛의 예술들 긴 트램 거리를 따라 목격할 수 있다. 겨울이면 그 트램 노선을 따라, 크리스마스 장식이 들어서기 때문에 새로운 구경거리가 추가되는데, 기분을 업시키는데 아주 효과가 있다.

제네바 에서는 트램을 갈아 타며 이곳저곳을 누비는 독특한 재미가 있다


종교개혁과 루소라는 걸출한 철학가를 배출한 도시. 레만호와 고급 시계로 브랜딩 된 중세 도시. 트램과 산보를 적절히 조합하여 천천히 산책하며 관광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최적인 도시. 프랑스 문화권으로 샤뀌테리, 치즈 등의 전통 음식 뿐 아니라, 수많은 국제 기구의 헤드쿼터가 위치하여 세계 각국의 음식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 제네바를 통해 여행할 수 있는 인근 프랑스 도시와 스위스 도시들도 너무 많기 때문에, 나름 스위스, 프랑스 여행의 거점지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교통의 도시.


제네바를 특징짓고 수식할 수 있는 단어들은 너무나도 많다.

하여 언젠가 제네바에 꼭 한 번 다녀오길 감히 추천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