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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Oct 17. 2021

빛의 축제 Geneva Lux, 그리고 샤모니의 겨울

Geneva Lux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예전에는 기후 변화 하면  다른 정치적 어젠다이거나, 에너지 업계의  다른 프로파겐더 쯤이려니 폄훼했었는데, 작년엔 서유럽이 폭염에 시달린다는 소식에 남프랑스에서 인생의 일부를 보냈던 터라, 남일 같지 않았던 기억이  잊혀지기도 전에 연이어 나파밸리가 불타고, 올해는 뉴욕과 서유럽이 홍수로 잠기는  심상치 않은 재해가 섬뜩한 해의 연속이다. 멀리  것도 없이, 우리나라도 장마같지 않은 장마로 여름이  지나가다 싶다가 늦장마에 시달렸고, 10월에 한파가 몰아닥치 , 일년내내 제철이 맞나 싶은 날씨가 변화무쌍하니, 기후 변화라는 것이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일이구나 싶어진다.


갑자기 기후 변화 타령이지만, 나뭇잎이 온통 길거리를 회오리치는 바람을 따라 춤을 추고, 계절의 급격한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오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제네바 관련 글을 쓴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제네바의 빛의 축제, Geneva Lux도 문득 떠올랐다. 갑자기 몰아친 추위? 덕분이리라.




2018년 12월.

출장 중 장시간 회의를 늦게 마치고, 제네바 최애 레스토랑인 Restaurant Les Armures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 마친 후, 호텔로 그냥 돌아가자니 괜히 아쉽고, 장시간 회의 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좀 날려버릴 겸 긴 산책에 나섰는데, 자연스럽게 Hôtel Les Armures에서 Place de Neuve (뇌브 광장)로 발걸음이 이어졌다.


Restaurant Les Armures에서의 식사는 언제나 즐겁다. 와인리스트의 반은 놀랍게도 스위스 와인. 추천 와인 모두 의외로 다 괜찮았다.


Parc des Bastions의 큰 철창문에도 크리스마스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유럽 전역이 크리스마스 조명으로 가득차 있을 시즌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나중에 이것이 Geneva Lux라는 나름 빛의 축제 기간이었다.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제네바 전역이 유독 더 휘황찬란하다는 느낌이 틀리지 않았던 것.   


Parc des Bastions을 들어서면 겨울왕국으로 입장하는 듯 했다.


Parc des Bastions도 크리스마스 조명과 함께 Vin Chaud (뱅 쇼)와 다양한 겨울 간식거리 등을 파는 가게 등 여러 작은 오픈 가게들이 작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불케 했고, 구경 나온 사람들로 인산 인해였다. 작은 스케이트장도 있어서, 애들은 신나게 겨울 바람을 가르고, 애들이 스케이트에 심취해 있는 동안, 어른들은 Vin Chaud와 끊임없는 대화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Parc des Bastions의 크리스마스 풍경. 제네바를 겨울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방문해 보시기를.


K.D. Lang의 Hallelujah가 울려퍼지던 Parc des Bastions을 떠나 다시 적적한 호텔로 향하는 트램에 몸을 싣는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고, 내일 또 시작될 열띤 토론에 머리가 아파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램 라인을 따라 불을 밝히고 있는 크리스마스 조명이 조금은 마음을 누그러 뜨리는 듯 했다.


트램을 내려, 호텔로 향하는 길은 더 화려하다. 화려한 조명과 내일 있을 회의를 걱정하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극한 대비를 이루던 밤이었지만, 조명 아래 놓여진 나는 휘둥그레 그 조명의 화려함에 잠시 취해있었다.

제네바의 크리스마스 조명은 다른 도시들 보다 더 화려하다




이튿날, 회의는 생각보다 심심하게 끝이 났고, 또 생각보다 일찍 끝난 관계로 제네바 겨울 산책이 좀 더 연장되었다. 제네바 전역이 크리스마스 장식과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가게들, 사람들로 들썩되는 듯 하다.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크리스마스 소품에 연신 눈길을 보낸다. 삐에르 성당 앞에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자리 잡았다.



삐에르 성당 주변으로 제네바 올드 타운의 중심을 다시 관통하여 Parc des Bastions의 입구까지 긴 겨울 산책을 여유롭게 즐긴다. 다소 을씨년스러운 올드타운의 풍경은 마음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혔지만, 이내 Parc des Bastions의 입구에서 다시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Geneva Lux 광고판 발견. 빛의 축제가 열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 친절한 광고판.


Parc des Bastions를 빛이 있는 동안 마주치니 다시 새롭다. 겨울 공원에서 맛보는 츄러스는 또 하나의 진리.


스위스 명품 초콜렛 브랜드 중 하나인 Läderach에서 가족과 함께할 초콜렛도 풍족히 구매하고 나니 마음도 흡족하다.




주말을 낀 출장이어서, 주말 동안에 멀 할까 고민하다가 샤모니의 겨울이 문득 보고 싶어졌다. 스키족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 하여 새하얀 눈이 온세상 가득히 수북히 쌓여 있던 그곳. 진정한 겨울의 본모습을 만나는 즐거움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따로 없다. 끝없이 펼쳐져 있던 겨울 광야와 군데군데 초록빛을 한점한점 찍던 겨울 나무들의 조화는 모든 근심 걱정을 한 번에 날려버린다. 단 한 점의 먼지도 가미되지 않은 쨍한 겨울 공기는 또 덤이다. 폐의 구석구석 끝까지 정화되는 듯 하다.




샤모니 이곳저곳을 또 정처 없이 거닏는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실로 겨울 왕국이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이 슬프기까지 하다.  





저녁 시간이 될 즈음, 샤모니 다운타운에서 죠세핀이라는 레스토랑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왠지 모를 끌림에 선뜻 아무 거부감 없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고, 신선한 제철 굴 몇 접시와, 굴과 함께 당연히 즐겨야 할 샤도네이 한 병으로 우선 입가심을 마쳤다. 이어서 뜨겁게 데운 치즈와 감자 요리가 곁들여진 샤퀴테리를 메인으로 모셔왔다. 몽블랑 브랜드의 맥주도 여기서만 즐길 수 있는 로컬 푸드라 여겨 큰 저항감 없이 곁들였다. 눈속의 긴 산책에 지치고 허기졌었는지, 정말 꿀맛이었다. 커피의 정수, 프렌치 에스프레소로 마무리. 천국이 따로 없다. 행복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스키 천국 답게, 겨울 조명도 스키 테마다. 어느 유럽 도시에서도 보지 못했던 참신하고도 귀여운 겨울 조명에 흠뻑 미소를 끊임없이 보낸다. 이미 행복한 저녁 식사를 샤도네이 한 병과, 몇 병의 몽블랑 맥주로 적신 몸이라 걱정 근심은 잊은지 오래다. 이런 겨울 풍경을 온 몸에 담아 내고 싶었다.



또 다른 버전의 크리스마스 조명의 진수, Geneva Lux와 샤모니의 겨울 풍경이 넘치도록 행복했던 2018년의 겨울. 다시 그런 기쁨의 극치를 맛볼 겨울 여행이 가까워지기를 조용히 손꼽아 기다려 본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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