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과 전혜린의 추억
뮌헨은 옥토버페스트, 축구, BMW 등 현대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이미지가 있지만, 나름 오래된 교회와 박물관도 제법 많은 중세의 고풍스러움도 가득 담고 있는 도시다.
거의 모든 유럽의 중세 도시가 그러하듯, 뮌헨도 오래된 광장이 도시의 중심인데, 하여 나름 친근한 이름의 마리엔 광장에서 관광이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뮌헨의 중심, 마리엔 광장의 한켵에 서서 광장 전체를 관망하고 있자면, 중세 시대가 내 눈 앞으로 달려오는 듯 했다. 구시청사와 신시청사를 모두 마리엔 광장에서 만날 수 있고, 뮌헨의 상징과도 같은 두 개의 둥근 첨탑이 인상적인 프라우엔 교회 (프라우엔키르케, Frauenkirche)도 광장을 지키고 있다.
특히 신시청사의 인형시계 춤은 오전11시에 열리는 제법 사이즈가 있는 인형들이 종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이벤트인데, 프라하에 방문하면 천문시계탑 앞에서 파란문으로 인형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듯, 많은 사람들이 이 이벤트에 맞추어 광장을 찾곤 한다.
그러나 뮌헨하면, BMW, 축구, 옥토버페스트, 중세 교회, 마리엔광장 등 뮌헨을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 어떤 키워드 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전혜린'이다.
일종의 전혜린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그녀의 이국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직설적인 수필 내용도 신선했지만, 불꽃처럼 영화같이 살다 간, 그녀의 삶 자체가 미스테리 그 자체여서 묘한 매력을 느꼈었다. 그녀가 남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유작인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는 전혜린체라고 불러도 될만한 그녀 특유의 직설적이면서 감성적인 문체로 그녀만의 narrative를 풀어나가는데, 오래전부터 보관하던 어린 시절 읽었던 그 책들을 다시 펼쳐보면 많은 곳에 밑줄이 죽죽 그어져 있다.
순간을 아끼자. 미칠 듯이 살자. 게으름, 이것이야말로 너의 적이다.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사고도 지출하지 않는 나무를 나는 증오한다. 경멸한다.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다.
나무는 하늘 높이, 높이 치솟고자 발돋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에 까지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것이 허락되지 않더라도...동경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닿을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의 추구,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그저 좀 교활한 동물일 뿐이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지껄이기 위해서 지껄이는 사람, 천박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 철두철미하게 판에 박은 사고 만을 가진 사람, 우쭐하고 유치하며 책임감이 없는 사람, 굴욕 앞에 치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간단히 말해서 정신의 품격이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지만 자랑스러워야 한다. 자기의 긍지를 지녀야 한다. 개성이 없는 사람은 정말 하나의 캐리커처이다. 그가 행하고 말하는 전부가 우스꽝스러운 냄새를 풍긴다. 그 자신만이 그걸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성격이 없는 사람, 규율이, 이상이, 사물에 대한 직관이 없는 사람을 나는 얼마나 증오하고 경멸하는지.
그녀의 수필집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에는 뮌헨의 슈바빙에서 지낸 유학 시절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회귀된다. 특별히 문학에 관심이 없었지만 (아니 문학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할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그녀의 슈바빙에 대한 묘사와 가스등 얘기는 제법 신선했고, 칼날과도 같은 서늘한 지성에 매료당했었다. 그녀에게 있어 슈바빙은 낭만과 자유의 이상향이었고, 그런 그녀의 묘사를 탐닉했던 나로서는 아직도 뮌헨하면 슈바빙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동시에 그녀를 데자뷰처럼 떠올린다.
전혜린은 뮌헨대학 최초의 동양인 유학생이었다고 하는데, 21살에 유학하여 4년 정도의 기간 동안 뮌헨의 낭만과 자유를 호흡하며, 귀국해서 31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녀의 수필 내용처럼 치열하게 살았다. 그녀가 주로 활동하던 공간은 그녀의 수필에도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뮌헨대학이 있는 슈바빙과 영국 정원인데, 뮌헨을 방문했을 때 숙제하듯이 묘한 설레임을 안고 찾아갔던 곳들이다.
혹자는 슈바빙을 뮌헨의 몽마르뜨라고도 부른다. 아마도 가난했던 문인들과 화가들이 이 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일터인데,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랬고, 칸딘스키, 토마스 만이 그랬다. 전혜린이 이들만큼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이들만큼이나 아니 더 감수성이 예민한 섬뜩한 표현력을 지닌 작가로 자리잡고 있다.
영국정원은 실로 초원과도 같은 광활함과 아름드리 나무들로 가득찬 숲의 이중성을 가진 드넓은 공간인데, 그런 광활함에도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 사색을 즐기며 긴 산책을 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아마 전혜린도 그런 긴 산책을 이곳에서 만끽하지 않았을까.
영국정원의 일부 공간에는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사람들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드넓은 초원에서 발견하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어색하기 보다는, 오히려 거대한 자연의 일부와도 같은 느낌이어서 큰 거부감은 없었다.
뮌헨 도시 중심의 번잡함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거대한 공원의 매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강렬한 인상의 전혜린의 수필처럼,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슈바빙과 영국정원. 초록이 정원을 다시 덮을 5월 어느 날 초연하게 그리고 정처없이 거대한 숲과도 같은 그 정원을 자유롭게 다시 미친듯이 거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