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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Jul 15. 2021

'미운 오리'가 아닌 '자유로운 오리'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17 년 전 여행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포토앱에서 시간여행을 재촉한다.


독일 뮌헨의 님펜부르그 궁전(Schloss Nymphenburg)의 오리 사진이었다.

오리 사진을 담은 날의 다른 사진들도 소환해 보니, 님펜부르그 궁전의 웅장한 사진도 몇 장 눈에 띄지만, 오리 사진도 제법 눈에 띈다. 궁전의 아름다운 풍경을 더 담았어야 할 법도 한데,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오리에 집중했던 그 때 당시 나의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오리가 그 당시 나의 심리와 사고의 흐름의 투영은 아닐까'

'독일까지 날아가서 구지 오리를 피사체로 삼은 것은, 여행의 의미와도 연결된 것이 아닐까'

...

...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님펜부르그 궁전에서, 2004]





나에게, 님펜부르그 궁전의 오리는 '외로움', '혼자' 라는 이미지가 아닌 '해방감', '자유'의 이미지다.

무리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유유자적하는 건, '무리들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인 셈이다.


'너는 이걸 잘 못해'

'너는 이게 부족해'

'너는 이것을 했어야 했어'

'너는 지금부터라도 이걸 해야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결혼 해야 하지 않을까?'

'아기를 가져야지?'

'미운 오리 새끼'

...

...

끊임 없는 사람들의 시선과 말들.

무심코 툭 던져진 말들이, 먼지처럼 그 동안 조용히 마음 한 자리에 수북히 쌓여왔던 건 아닌지.


그 시선들을, 말들을 가끔 꺼내어 곱씹다보면, 어느새 남의 시선과 말들이 나의 시선과 말들이 된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앵무새처럼 그 말들을 나에게 다시 속삭인다.


님펜부르크 궁전 전경





그러나, 어느새 잘 떨어지지 않는 포장지처럼 마음에 달라붙어 있는 그런 시선들과, 그 시선들을 재방송하는 또 다른 나로부터 자유로와지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한다는 것을 언제부턴가 알게되었다.


남의 시선과 말들은 나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공감어린 제스처가 아닌, 일반화와 사회적 관념에서 비롯된 딱딱해진 틀을 강요하는 방송에 불과하며, 하여 나 스스로 그 감옥과 같은 틀에 걸어 들어가 갇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부지불식 중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 문을 열기 전에 조용히 뒤돌와 나와야 한다는 것.


남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과 시선보다, 내 마음속에서 그 시선들과 말들을 곱씹으며 반복하는, 내 스스로 만들어내는 노이즈가 더 무섭다는 것을.


내가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없는, 단순한 사회적 틀을 강요하는 남의 시선과 말들은 나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으며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시선들과 말들은 신기하게도 힘을 얻게 되고, 독버섯처럼 삽시간에 마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하여, 때론 '일부러 작정하고' 무리로부터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들로부터의 고립되기 위함이 아닌, 내 자신이 스스로 재생산해 내는 노이즈로부터 자유로와 지기 위한, 마음 청소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그 시선들을 다시 차곡차곡 쌓는 침전의 시간이 아닌, 때를 벗겨 내듯이, 먼지 같은 시선들을 털어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생각의 단련을 통해, 마음속에 잔잔히 부지불식간에 회오리처럼 일어나는 노이즈를 잠잠하게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다. 몸을 씻어내듯이, 마음도 주기적으로 씻어내야 한다.




여행은 결국 '현재의 노이즈로부터의 자유'가 아닐까?


구지 먼거리를 날아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 나를 떨구어 놓고 스스로 방황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진정한 나에 대한 발견'의 儀式(의식: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또는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이 아닐까.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새로운 의식주는 '남의 시선들과 말들이 침전된 때'로 부터 벗어나, 그 안의 뽀얀 속살같은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access point (주. 와이파이에서 인터넷으로 연결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문(門)과도 같은 access point를 통해 '진정한 나'라는 무궁무진한 인터넷으로 비로소 연결되는 건 아닐지. 세상 저편의 아름다운 풍경과 또 다른 방법의 의식주는 내 마음의 때를 벗겨내기 위한 바디샴푸이기도 하다.


결국 여행은 '나와의 대면'의 시간이며, 그 동안 잠시 잊었던 '나를 만나는 시간'인 셈이다.

여행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듯이, 주기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진정한 나에 대한 발견의 儀式'을 치를 필요가 있다.




끊임없는 사람들의 말들과 시선이 혼재하는 현재의 시간과 장소에서는 그런 의식(儀式)은 참 어렵다.

현자가 아닌 이상, 너무나도 쉽게 남들의 시선과 말들이 어느새 내 시선과 말이 되어 버린다.

부지불식중에 그들의 시선과 말들이 나와 하나가 되어 버린다.

'너는 미운 오리 새끼'




어디로든 잠시 여행을 떠나자.

앞마당도 좋고, 동네 공원 벤치도 좋고, 여건이 된다면 멀리도 좋고.

세상의 노이즈로부터, 내 자신의 노이즈로부터 자유로와진 진정한 나를 대면하기 위해.


[제네바 레만호수에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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