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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Jun 06. 2024

산중턱 와이너리 고해성사 - 몬테로소에서 베르나차로

생각보다 따뜻한 2월의 친퀘테레 날씨. 


애시당초 친퀘테레 여행은 사부작 사부작 마실 나가듯 가벼운 발걸음 발걸음 포개서 아기자기 해안마을 산책이 컨셉이었지만, 어느새 마을과 마을 사이 트레킹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로 번져있었다.

일기예보도 한몫한다. 구름한점 없는 쨍한 날씨의 연속이라고.


제대로 된 트레킹은 해본적도 없고, '트레킹?' 그건 먹는것인가 과자이름인가 했던 우리. 

트레킹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상황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낮기온 15도 라고 하지만 체감은 18도 가까운 날씨. 


몬테로소 알 마레 해변 뚜벅뚜벅 산책을 끝낼 무렵,  반대편 해변의 끝에서 베르나차로 연결되는 트레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트레일의 시작은 잘 가꾸어진 길이었다. 트레일을 따라 걷자 마자, 몬테로소 알 마레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뷰를 만날 수 있었다. 



이내 깊이가 제법 있는 터널을 걸어서 통과해야 했다. 몬가 신세계로 들어가는 느낌. 



 터널을 지나니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트레일. 가까이서는 볼 수 없었던 몬테로소 알 마레 마을의 전체 풍경이 다시 한 눈에 들어왔다. 멀찌감치 바라보는 몬테로소 알 마레. 트레일을 따라 트레킹을 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인 것 같아, 트레킹을 하기로 의사결정한 것에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 긴 트레킹은 해 본적 없었고, 이탈리아 해변 마을이라 큰 용기를 낸 것이었는데, 스스로를 쓰담쓰담했다.



  몬테로소 알 마레에서 베르나차로 연결되는 트레일. 이렇게 친퀘테레에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처럼 트레일이 있다고. 해서 해안 절경이 예술이라는 정보가 머리에 이미 박혀있어서 그런지 트레일 중간 중간 '짜안'하고 눈 앞에 쏟아질 절경에만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런 절경도 절경이지만, 눈 앞에 날아오는 새로운 풍경은, 산중턱 와이너리와 올리브 나무들이었다. 산중턱 와이너리 사이사이 오솔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트레일은 처음 잘 정돈된 길과는 사뭇다른 다소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이런 새로운 풍경은 트레일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신선한 충격이어서, 쏟아지는 땀과 아픈 다리라는 부산품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었지만, 모른척 할 수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언덕에는 올리브 나무와 와이너리라고 하기엔 소소한 포도밭들이 계단처럼 가꾸어져 있어, 이런 산중턱에서도 사람들은 생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작은 경외감이 몰려왔다. 실제로 트레일 중간중간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농부들이 생업을 위해 노력하는 공간이니 respect해 달라' 느낌의 문구가 적힌 팻말 들이 걸려 있었고, 해서 조용히 조용히 트레일을 걸어 갔다. 



 모랄까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모습에 그리고 그런 순응이 또 이곳의 와인 (특히 화이트 와인)과 올리브유를 유명 산지로 탄생시켰구나 하는 작은 감동이 몰려 왔다.


 문득 그 동안 나는 내가 걸어온 길들에 반항과 저항만 한 건 아니었나 하는 돌아봄의 시간이 몰려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환경에 대한 불평불만에 쪄들어 저항하고 힘들어 했었던 젊은 시절의 모습들이 주마등 처럼 눈앞의 풍경 속에 하나씩 지나간다. 나름 이유가 있었겠고, 나름 힘든 과정들이 필수불가결했을 수 있고, 젊은 시절 에너지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상승 효과가 있었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그런 저항의 에너지가 사그러 들고, 그 에너지가 또 다른 새로운 에너지로 전환될 시점에 몬가를 해낼 수 있었음을 다시 생각했다. 결국 순응의 자세로 돌아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러면서 흥분의 도가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드디어 보게 되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환경과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있었고 존재의 이유가 있었음에도, 내 눈이 내 흥분이 내 부정적인 에너지가 내 눈을 가려 못 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해서 그런 흥분과 폭발의 과정을 거쳐야만 다시 잔잔한 마음의 호수를 만나 그 호수를 건널 때만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 작은 고해성사를 치르는 동안 산중턱 와이너리 풍경은 어느새 해안 절경과 연결되고 있었다. 마음이 탁 트이는 눈 앞의 풍경과 드넓고 끝없는 해변 무한한 공간에 그동안 마음에 쌓아왔던 해묵은 분노의 먼지들을 털어냈다. 아니 의식을 치뤘다고 해야할까. 봄철 대청소하듯이 마음의 웅어리를 풀어내고 나니, 괜히 잔잔히 고이기 시작하는 눈물. 산중턱을 오르락 내리락 했던 나름 고된 트레킹이 힘들어서였을까. 잠시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저멀리 빛나는 해와 그 찬란한 빛이 반사되어 또 새롭게 빛나는 바다를 하염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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