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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Sep 30. 2024

순살 아파트의 진실 I

작가주: 이번 연재글은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I, II로 동시에 발간하였습니다. 순살 아파트와 관련된 자세한 사건 경위는 '순살 아파트의 진실 II'로 프리뷰/일부 사전 공개 형식으로 우선 발간하였습니다.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창작된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포함한 이 소설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창작물임을 밝힙니다.)


엄민용 부회장과 임원 C는 AB화학과 AB가스의 합병을 지지하도록 외부 자본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합병이 성사되면, 단기적으로 주가가 급등하고 외부 자본이 빠르게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부 자본 세력은 이와 동시에 신재생 에너지 사업도 그들의 통제 아래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엄민용 부회장은 신재생 사업은 아직 시절이 요원하고 현재 에너지 사업의 생명을 끝까지 연장하여 남은 석유 한방울까지 채취하는 전략이 우세하다고 믿는 전형적인 구시대 에너지 사업 세력이었다. 단지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신재생 사업을 미끼로 끼워 넣을 뿐 합병이 성사되면 치고 빠져, 이익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챙기고 이를 통해 그룹에서의 본인의 위상을 더 높일뿐만 아니라, AB화학 지분을 더 높여 더 큰일을 도모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하여 엄민용 부회장 측은 합병을 통해 단기적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 그 수익의 일부를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여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여기저기 불을 지피기에 바빴다. 외부 자본들이 그 불길에 사로잡히든, 연기에 취하든, 스스로의 욕망에 사로 잡혀 헤어나오지 못하던 그건 엄민용측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들의 이글이글 거리는 욕망의 바다에 불을 지피면 그 뿐, 그 바다가 불타오르면 그들이 타서 스스로 재가 될 때까지 미친듯이 뛰어다는 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김준호가 신재생 에너지를 가지고 외부 자본을 설득하고 있다지만, 우리는 좀 더 현실적인 수익 모델을 제시해야 해.” 엄민용은 임원 C와의 비밀 회의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외부 자본을 쥐고 있는 자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익을 원한다면, 우리가 더 나은 선택이 될 거야.”

임원 C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습니다. 그들이 김준호의 장기적 계획에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죠. 그들은 김준호의 계획이 이상적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익을 얻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에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그들이 당장 투자 이익을 볼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들은 외부 자본에 접근해 합병으로 인한 단기적 이익을 내세우며, 동시에 신재생 에너지 사업도 자신들의 통제 하에 추진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엄민용은 이 과정에서 합병 투표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비밀리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금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떠벌리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김준호는 외부 자본을 설득하는 데 있어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신재생 에너지 사업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의 연계를 강조하며, 이 사업이 단순히 AB그룹의 미래가 아니라, 국가적인 성장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합병에 투자할 수 있지만, 그건 단기적일 뿐이야.” 김준호는 외부 자본을 설득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합병에 우선 투자하면 빠른 이익은 얻겠지.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면, 정부와 함께 장기적인 수익을 누릴 수 있어. 이 사업은 AB화학이나 AB가스에만 국한된 게 아니야. 이것은 국가적인 프로젝트야.”

김준호는 특히 AB가스에 많은 지분을 가진 주주총회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투표할 수 있는 외부 자본에게 초점을 맞췄다. 그들이 합병을 막고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투자하도록 만드는 것이 김준호의 목표였다.

“AB가스에 대한 지분을 유지하되, 합병은 반대해야 해. 그게 당신들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거야. 합병이 성사되면 그 이익은 한정적이지만,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하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외부 자본은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엄민용과 임원 C는 빠르고 실질적인 수익을 약속하고 있었고, 김준호는 더 큰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다.




부장 A 사무실

부장 A는 그룹 내에서 경력을 쌓아오며 수많은 위기와 변화를 겪어온 노련한 인물이었다. 그의 성장은 단순히 운에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정보를 쥐고 있었고, 그룹 내 권력 싸움에서 언제나 중심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주시해왔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그에게도 이례적이었다. 김준호와 함께 추진 중인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는 그룹 내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졌고, 그의 커리어에서도 분수령이 될 만큼의 큰 사건이었다.

요즘 그의 주위를 떠도는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엄민용 부회장과 임원 C의 움직임이 날카로워지면서 부장 A는 그들이 단순한 자본 유치 경쟁을 넘어서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룹 내 파워게임은 언제나 있었지만, 이번에는 누군가의 몰락을 초래할 정도로 거대한 힘이 꿈틀대고 있었다.


새로운 사건의 발단은 사모펀드 업계에서 시작되었다. 김준호와 부장 A는 한 외부 사모펀드 대표를 만나 그룹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유치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미팅 후 김준호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회의장을 빠져나오던 부장 A는, 회의장 뒤편에 있던 사모펀드 관계자가 갑자기 그를 불러 세웠다.

그 직원은 긴장한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장님, 혹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업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엄민용 부회장과 임원 C가 별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들이 우리 사모펀드와도 접촉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장 A의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졌다. 엄민용과 임원 C가 단순한 자본 유치 경쟁에서 끝나지 않고 더 음험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소문은 이제 실체를 갖춘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임원C가 본인들과 한배를 탄 줄 알았더니, 엄민용에게도 기생하는 신종 이중첩자 기생충이라는 사실에 기겁을 하는 부장A. 이 정보를 김준호에게 전달했을 때, 그의 표정은 일순간 경직되었지만,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역시 그들이 움직이고 있군. 그들이 이렇게 빨리 치고 나올 줄은 몰랐지만, 예상 못한 건 아니야. 우리가 조금 더 속도를 내야겠군. 그리고 임원C 앞에서는 우리 계획의 디테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자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본인의 임원 생명을 연장하려는 자는 나중에 철저히 응징을 당하게 될거야"

김준호는 이미 이에 대한 대처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외부 자본 유치 계획을 가속화하면서도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비전과 경제적 타당성을 더욱 강력하게 강조하기 위한 추가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부장 A는 한 외부 사모펀드 관계자와 다시 한 번 마주치게 되었다. 이번에는 훨씬 더 긴급한 정보를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 직원은 긴장한 기색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부장님, 제가 알게 된 게 있는데, 엄민용 부회장과 임원 C가 저희 펀드 대표와 미팅을 가졌습니다. 정식 자리도 아니고 비공식적으로 접촉했죠. 그 자리에서 그들이 김준호 팀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특히 그 프로젝트가 정부와 지나치게 얽혀 있어 경제적 위험이 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부장 A는 이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엄민용과 임원 C가 내부 자본 싸움에 그치지 않고 외부에 허위 정보를 흘려 김준호의 신뢰를 흔들려고 한다는 사실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치밀하고 악랄한 계획이었다.

임원C가 내부 정보를 캐내 엄민용에게 전달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지만, 실제로 임원C가 자신들의 모든 계획을 알고 엄민용에게 전달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게다가 부장A는 일개 부장신분일 뿐이고 컨설턴트로 고용되어 있는 김준호도 어떤 공식채널을 이용해 임원C를 처단할 방법은 없었다.

부장 A는 즉시 김준호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전했다. 김준호는 얼굴이 굳었지만 그리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빠르군. 우리보다 먼저 외부 자본의 신뢰를 흔들려고 하는 모양이야. 이 정도면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그들은 내가 완전히 무너져야만 만족할 거야.”

김준호는 그 자리에서 대응 전략을 세웠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장점과 정부와의 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히 알리는 방안을 준비하면서, 더 나아가 외부 자본과 정부 측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본인들의 프로젝트에 임원D를 전면에 내세워 공식 커뮤니케이션 창구로 활용할 것을 논의하고 즉시 임원D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개입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바로 그 다음날 임원D의 일정에 비밀 회의 일정을 요청하고 자세한 브리핑과 지금 프로젝트 진척 상황을 보고하기로 했다.


아울러 김준호는 정부와의 협력 관계를 더 강화하고자 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 내 주요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얻어내고 있었고, 이를 통해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강조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 정부 관계자로부터 경고가 날아들었다.

“김준호 님,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최근 엄민용 부회장과 그 측근들이 정부 내에서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정치적 압박을 통해 자본 시장에서 김준호 님의 프로젝트를 흔들려는 것 같군요.”

김준호는 이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 번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단순히 자본 유치 싸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엄민용과 임원 C는 경쟁관계에 있는 정부의 다른 부처와 또 다른 정치적 세력을 이용해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들의 전략은 이미 자신을 자본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수준까지 발전한 것이었다.

김준호는 부장 A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며 말했다.

“그들이 정치적 카드를 사용한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우리의 신뢰를 확보해야 해. 외부 자본이 흔들리기 전에 더 강력한 자료를 내놓고, 정부와의 협력관계를 더욱 확실히 알리는 것이 필요해.”


부장 A는 김준호의 지시 아래 빠르게 팀을 꾸려 대응에 나섰다. 그들은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실적과 향후 비전을 구체적으로 정리한 보고서를 준비해 외부 자본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신속히 배포했다.

김준호는 외부 자본을 설득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전략을 펼쳤다. 그는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뿐만 아니라, 프로젝트가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얼마나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료를 준비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언론을 적극 활용해 대중에게 프로젝트의 중요성과 비전을 홍보하기 위해 기자회견 준비도 진행했다. 임원D와의 미팅과 보고도 더 잦아졌고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임원D를 전면에 내세워 회사의 공식 입장임을 강조할 수 있도록 임원D의 머리에 그들의 전략의 뿌리인 논리와 모든 질문에 대응 가능하도록 Q&A 리스트를 쏙쏙 집어 넣는 속성 과외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리허설도 가졌다.


기자회견 전날 밤, 김준호와 임원D는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그들의 책상 위에는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자료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그는 이번 기자회견이 단순한 발표가 아니라 AB그룹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제 마무리해야 할 때군...” 김준호는 서류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중얼거렸다.

부장A와 김수연 홍보팀장이 문을 두드리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김 이사님, 준비된 보도자료는 전부 확인하셨나요?”

김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장A와 수연에게 서류 한 묶음을 건넸다.

“여기 있는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해줘. 특히 이번 자료는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실적과 향후 계획을 명확하게 담고 있어. 기자회견 전에 이 내용을 미리 퍼뜨려서 우리 쪽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해.”

수연은 서류를 받아 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자회견 전에 미리 언론에 자료를 배포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에요. 혹시 기자회견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전략인가요?”

김준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담담하게 말했다.

“맞아. 기자들이 이미 사전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질문의 초점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맞춰질 수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프로젝트의 경제적 타당성과 장기적 비전을 미리 각인시켜 놓는 거야. 언론이 우리의 핵심 메시지를 먼저 받아들이도록 해야 해.”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료들은 주요 언론사에 바로 배포하겠습니다. 언제까지 회신을 기다리면 될까요?”

“내일 아침까지야. 기자회견 전에 언론들이 내용을 충분히 분석할 시간을 줘야 해. 그럼 기자회견장에서 더 명확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테니까.” 김준호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날 밤, 김수연은 김준호가 준비한 자료를 언론사들에게 신속히 배포했다. 자료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주요 언론사들의 메일함에 도착했고, 그 안에는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현재 성과와 장기적인 경제적 타당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다음 날 아침, 주요 경제 일간지들은 김준호의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AB그룹,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로 차세대 에너지 시장 선도?”, “임원D, 정부와 협력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 확보” 등의 제목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언론은 김준호가 제시한 실적 자료를 분석하며, 프로젝트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가능성에 집중했다.

김준호는 신문을 훑어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군. 이제 기자회견장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질문이 나올 거야.”




기자 회견장

임원D는 단정한 정장을 입고,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손에 쥔 채로 연단 앞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고, 기자들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마이크 앞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는, AB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프로젝트인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 여러분께 설명드리기 위함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AB그룹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중요한 사업입니다.”

임원D는 뒤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준비해 온 자료를 띄우며 설명을 이어갔다. 스크린에는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 경제적 타당성, 그리고 그동안의 실적들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현재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는 정부와 긴밀한 협력 하에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미 초기 단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가 향후 10년간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원D는 스크린에 표시된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첫 해부터 정부와의 협력으로 초기 인프라 구축에 성공했고, 에너지 효율성 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인프라 확장을 통해 더 많은 일자리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입니다.”

기자들이 집중하여 듣는 가운데, 임원D는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 프로젝트는 단기적인 수익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국가적 규모의 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하며,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신재생 에너지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뿐만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들 역시 이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자본이 유치된 상태입니다.”

임원D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기자들의 반응을 살핀 뒤,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들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프로젝트는 안정적이며, 경제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한 결과입니다. 또한,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미 중장기 계획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계획에 따라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는 마무리로, 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AB그룹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우리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통해 다음 세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기자들은 술렁이며 임원D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수익 구조와 정부의 지원 규모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임원D는 차분하게 준비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나씩 답변해 나갔다.

김준호와 부장A는 이미 분위기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기자들은 사전에 배포된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질문을 준비해놓고 있었고, 그 중 다수는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과 정부와의 협력 관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임원D는 차분한 태도로 준비된 답변을 이어갔다. “우리가 준비한 프로젝트는 단기적인 이익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미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AB그룹이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기자들은 그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이어갔다. 임원D는 미리 준비된 자료와 언론 보도 덕분에 회의에서 주도권을 쥐고 차분히 회견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의 대응은 신속하고 치밀했다. 언론은 김준호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크게 다루었고, 그동안 엄민용과 임원 C가 퍼뜨리려 했던 부정적인 정보는 금세 가라앉았다. 외부 자본은 다시 김준호의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며 투자를 유지했다.


반면, 엄민용과 임원 C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대응한 김준호의 반격에 당황했다. 그들의 계획은 허무하게 무너지는 듯 했다. 언론이 김준호의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외부 자본 역시 김준호의 프로젝트를 신뢰하며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

“김준호가 이렇게 빨리 대응할 줄이야… 그자의 자료 준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임원 C는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민용은 이를 갈며 말했다. “우리가 너무 안일했어.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더 강력한 방법을 찾아야겠지. 정치적 카드로 그를 완전히 몰아붙이겠어.”

기자 회견이 끝난 후, 엄민용과 임원 C는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들은 곧바로 정부 고위층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히려 정부측에서는 엄민용 부회장측을 압박해 왔다. 김준호가 폭로한 자료는 너무나도 명확했고, 언론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이건은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이걸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임원 C는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민용은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김준호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어. 이제 우리는 그가 주도하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완전히 밀려날 수도 있겠어.”





기자 회견이 끝난 후, 부장 A는 혼자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김준호의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엄민용과 임원 C는 몰락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장 A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김준호와의 연대는 성공적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싸움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준호는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 AB그룹은 여전히 복잡한 음모 속에 있었다.

이 때 부장A의 전화로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부장A: 누구십니까

변동준: AB화학 A부장님이십니까?

부장A: 그런데요.

부장A: 저는 AB건설 현장 인부의 아들입니다. 긴요한 일도 잠시 뵙고 싶은데요.

변동준: 무슨 일이신지..

변동준: 순살 AB베르 아파트라고 들어보셨나요..

부장A: 예 몇 달전에 아주 대서특필된 사건인건 압니다만…




한편, 부장A가 AB베르 아파트 건설 현장 인부의 아들로 부터 전화를 받고 있는 동안,  김준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또 다른 전화를 받고 있다.

엄민용 부회장의 비서였다.

엄민용 부회장이 미팅을 요청했고 다음 날 아침 엄민용 부회장실로 오라는 명령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AB화학 본사 빌딩

김준호는 43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불안을 느꼈다. 이미 몇 차례 마주했던 엄민용의 차가운 얼굴이 떠오르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신재생 에너지 사업권을 두고 벌인 몇 달간의 갈등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번 회의에서 엄민용이 어떤 카드를 내밀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으로 엄민용 부회장에게 경고를 날리고 여론은 엄민용 부회장에게 돌아선 듯 했으나, 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인 듯한 묘한 패배감에 더 긴장한 김준호.

‘이번에는 끝장을 보겠지,’ 그는 스스로 다짐하며 손에 쥔 서류철을 더욱 꽉 쥐었다. 손끝에 맺힌 땀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는 그 감각을 애써 무시했다. 이번 사업권은 그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였다. 승리해야 했다. 실패란 곧 그의 미래를 뒤흔들 파멸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회의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자동문이 조용히 열리며 김준호는 단호한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회의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했고, 도시의 전경이 창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광경마저도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도시의 조용함과는 반대로 그의 내면은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테이블 끝에 앉아있는 엄민용의 모습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엄민용은 여전히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유유히 피어오르며 천장 쪽으로 퍼져 나갔다. 그 연기 속에서 엄민용은 평소처럼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준호 씨, 앉지."

엄민용은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느긋했다. (’준호 씨’라니. 아무리 공식 감투가 없는 컨설턴트 신분이지만, ‘씨’라니. 교묘한 심리전의 시작인가) 김준호는 잠깐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차분하게 보이려 했지만, 그의 내부는 이미 불안으로 뒤덮여 있었다.

"부회장님, 오늘 이 회의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권과 관련해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생각하고 저 역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김준호는 대화를 시작하며 서류철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눈앞의 엄민용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 속에는 미세하게 떨리는 기운이 있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이 사업권에 매달려 있었다. 그만큼 이 회의가 그에게 있어 마지막 싸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저릿해졌다.

엄민용은 피식 웃으며 김준호를 바라봤다.

"알아, 알아. 네가 얼마나 이 사업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는지 말이야.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지."

그는 천천히 담배를 테이블 위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 미소 속에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너도 알지 않나? 이 사업권은 내 손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김준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엄민용의 태도는 그가 이미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이 자리는 협상이나 토론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자리 같았다. 김준호는 순간적으로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것을 애써 억누르며 반박했다.

"부회장님, 이 사업은 단순히 사업권 문제를 넘어서 AB그룹의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저 역시 이 사업을 오래 준비해왔고, 제 방식대로 진행하면 그룹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준호는 자신의 준비와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많은 밤을 새우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는지, 그 과정에서 얻은 성과와 발전 가능성을 역설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엄민용을 설득해야 했다. 이 사업권을 자신이 가져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그에게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엄민용은 그런 김준호의 말을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책상 옆에 있던 서류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 네 노력은 정말 대단하군. 하지만 준호 씨,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엄민용은 서류철을 천천히 열었다. 김준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주시했다. 엄민용이 펼친 서류철 안에는 다수의 문서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서류의 내용을 보자마자 김준호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엄모순.


붉은 도장과 함께 찍힌 엄모순 회장의 이름이 서류 끝자락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김준호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어…엄모순이... 이 사업에 연루되어 있었다고?”





AB그룹 선산, 창립주 엄진섭 선대회장의 묘

하늘은 잿빛으로 뒤덮였고, 무거운 공기가 선산을 감싸고 있었다. AB그룹 창립주 엄진섭 선대회장의 30주기 추모식이 끝나고, 가족들은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려가는 발걸음은 무거웠고,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증오가 서려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조용한 가족 모임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모든 것은 곧 폭발할 것만 같았다.

엄현지 (엄모순 회장과 손혜민 사이에 출생한 둘째딸) 는 앞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엄친아 (엄모순과 내연녀 오민형 사이에 출생한 딸)와 오민형이 눈의 가시처럼 거슬려 속에서 불길이 일어나고 있던 터였다. 오민형과 엄모순은 엄민용 등 오너가 일행과 인사를 나누면서 서서히 자리를 뜨고 있었고 엄친아는 뒤늦게 출발하는 오민형과 스맛폰으로 알콩달콩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엄친아의 오민형과의 스맛폰 통화 소리에 갑자기 폭발한 엄현지.

"첩의 딸이 감히 이런 자리에 끼어들어?
네 주제에 우리 가족 행사에 참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녀의 목소리는 독이 서린 듯 날카로웠다.


엄친아는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치를 떨었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상처로 가득했다. 차가운 바람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엄친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지금 아빠랑 사는 사람은 우리 엄마야. 이혼녀 딸 주제에 감히 뭘 말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엔 억눌린 분노가 담겨 있었다. 절대로 호락호락할 엄친아가 아니었다.


이혼녀의 딸이라는 말에 엄현지의 눈은 광기로 번쩍였다.

"네 엄마? 첩 주제에 뭐가 대단하다고? 네 엄마 같은 사람은 원래 숨죽여서 사는 게 맞아. 우리 엄마는 AB그룹 회장 손혜민, 정식 부인이라고. 네가 무슨 낯짝으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궁금하네." 그녀는 한 손을 땅에 내려 찬돌을 주워들며 비웃었다.


“그럼 네 엄마는 왜 이 자리에 없어?”

 엄친아는 차마 참지 못하고 응수했다. 그녀는 속에서 불타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네 엄마가 그렇게 대단한데, 왜 지금 아빠 옆에 없는데?”


그 말에 엄현지의 눈동자가 살기 띄게 변했다.

"첩의 딸이 우리 같은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긴 하냐고?" 


그녀는 돌을 들어올리며 던지려 했으나, 그 순간 엄우준 (엄모순과 손혜민 사이에 출생한 세째 아들이자 유일한 아들) 이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만해, 엄현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러나 엄현지는 미친 듯이 손을 흔들며 거칠게 대꾸했다.

"이걸로 끝나지 않아!" 그녀는 손을 빼내어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시 쏘아붙였다.

"네 할머니도 첩이었잖아? 첩질도 유전이 되나 보지? 네 엄마도, 네 할머니도 똑같은 더러운 짓을 하면서 남의 가정을 파탄내고 있다고!"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는 엄친아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엄친아는 그 말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녀의 손이 떨렸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게 다야? 내가 첩의 딸이라고? 네 엄마가 아빠한테 버림받은 이유는 네가 모르는 게 있겠지."

엄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하지만 그 순간, 엄현지는 잔인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너네 같은 기생충과들은 항상 똑같아. 첩의 딸 주제에 뭐라도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그러면서 그녀는 엄친아의 긴 생머리를 와락 움켜쥐었다.

"어디서 감히 입을 놀려?"

엄친아는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엄친아의 머리카락은 땅에 끌렸고, 얼굴이 차가운 돌바닥에 부딪혔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왔고, 목에서는 울부짖음이 터졌다.

"놓으라고! 당장 놓으라고!"


엄현지는 한술 더 떠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를 흘렸다.

"이 정도로 비참한 건 시작에 불과해. 네가 더 겪어야 할 일이 태산인 줄 알아. 첩의 딸 주제에 어디서 나대고 다녀? 너네들 신분을 생각해서 지하에서 조용히 구더기나 쳐먹으며 살아! 알았어?" 그녀는 더욱 머리카락을 세게 당겼고, 엄친아는 이를 악물며 몸부림쳤다.


이때, 멀리서 오민형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뭐하는 짓이야!" 그녀는 딸의 울음소리에 미친 듯이 달려와 엄현지를 밀어내고 딸을 부둥켜안았다. 오민형의 눈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그녀는 딸을 감싸며 말했다.


엄현지는 그저 차가운 웃음만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이게 첩년의 딸이 받을 대우야. 네가 아무리 몸을 팔아도 우리랑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 그녀의 말은 독처럼 퍼졌고, 오민형은 이를 악물었다.

오민형은 딸의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날 밤이 오기 전까지도 그 분노는 식지 않았다.





그날 밤 손혜민의 빌라

밤이 깊어갔다. 엄모순은 고급 빌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샤워 가운을 허투루 걸친 채 거실로 걸어 나왔다. 한강이 보이는 통창 앞에 서 있던 오민형은 그를 노려보며 등 뒤에서 다가오는 그에게 차갑게 말했다.

“오늘 친아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나 있어? 네 딸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어야지.”

오민형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마치 칼날처럼 그를 베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오늘의 일로 지쳐 있었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엄모순은 소파에 나른하게 앉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풀어헤쳐진 로브 사이로 속살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난 모르는 일이야. 난 오늘 하루가 너무 바빴다."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의 무관심은 오민형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오민형은 그의 무심한 태도에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바빴다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해?

“니 잘난 둘째딸이 친아를 돌에 짓이기고 피를 토하게 했다고!! 첩년의 딸이라고 비양양대는 것도 모자라 우리 엄마까지 소환시켜서…”

순간 오민형은 오열하듯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깨가 들썩였지만, 이렇게 무너질 일이 아니었다. 순간 정신을 똑바로 다시 부여잡고 엄모순을 세차게 노려보았다.

엄모순도 비서실을 통해 전해 들은 얘기가 있었지만, 오민형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건 예상한 터였고, 그녀에게 이렇게 끌려가면 죽도 밥도 안될 것이라는 것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미 판단하고 있었다. 해서 오늘따라 더욱 더 느슨하게 거들먹거리며, 샤워 로브도 걸치는 둥 마는 둥 남성성을 강조하고 있는 터였다.

순간 그는 그동안 숨겨진 패를 오민형 앞에 내던졌다.


“손혜민과 있었던 일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엄모순의 말에 손혜민은 순간적으로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흐느끼던 눈에 맻힌 눈물도 순간 얼어붙을 듯 온몸을 감싸는 공포가 반나체인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엄모순은 그가 손혜민을 만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날카롭게 두 눈을 부릅뜨고 오민형을 폭풍처럼 노려보았다.

오민형은 눈살을 찌푸리며 반격했다.

“손혜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하지만 엄모순은 코웃음을 치며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손혜민과 만난 건 다 알고 있어. 그 여자랑 아직도 뒤에서 나를 망치는 꿍꿍이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그는 그녀의 얼굴 앞까지 다가가며 그녀를 쏘아붙였다. 로브는 이미 다 헤쳐져 있었고 그의 웅장한 얼굴과 배가 오민형의 얼굴을 짓누를듯이 오민형을 압박하고 있었다.


엄모순은 갑자기 몸을 일으켜 그녀를 통창으로 밀어붙였다. 그의 거대한 몸집은 마치 돼지 한 마리가 사람을 삼키는 형국이었다. 그는 그녀를 창가로 밀어내며, 금방이라도 그녀를 통창 유리를 산산조각내며 창 밖으로 내던질 기세였다. 오민형은 공포에 휩싸여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 떨어질 것 같은 상상 속에서 그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그녀는 살 길을 도모했다. ‘손혜민에게 정보를 제공해 그녀가 항소심에서 이길 수 있게 한 것을 폭로할까?’ 그러나 오민형은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건 무덤까지 가져가야 해.’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그 말을 애써 도로 삼켰다.




그날 밤, 한강 위로 빛나는 도시의 불빛이 통창을 통해 그들의 무너져가는 관계를 애써 비추고 있었다. 엄모순은 통창 앞에 서서 그날 따라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끝없이 바라봤고, 오민형은 그를 뒤에서 노려보며 점점 더 어두운 감정에 빠져들었다.




(다음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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