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미 SF다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창작된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포함한 이 소설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창작물임을 밝힙니다.)
임원 B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는 생각에 사무실 의자에 무겁게 몸을 기대었다. 자신이 가진 비리 자료와 비자금에 대한 정보가 손혜민을 협박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를 잠시나마 안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불안했다. 그의 카드는 너무 강력한 동시에 위험했다. 누군가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지만, 그가 그 순간까지 지켜온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임원 B는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조금전 엄모순의 날카로운 눈빛은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계획이 철저히 꿰뚫리고 있으며, 도망칠 구멍조차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토록 믿고 있던 마지막 카드, 엄모순과 손혜민의 비자금을 공개하겠다는 협박마저도 이미 엄모순에게는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김탁기가 건넨 서류, 그 안에는 임원 B가 법인카드로 저지른 불법적 사용 내역과 불법 증여 내역 등이 고스란히 그것도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감옥에 갈 처지였고, 만약 이 자료가 검찰로 넘어간다면 그의 자식들까지 죄인이 될 것이었다. 그의 불법 증여 내역도 철저하게 조사될 것이며, 가족들 모두가 함께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그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손혜민도 결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손혜민의 결단이 어떻든 간에, 자신은 회사를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여전히 퇴직금과 함께 조용히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상황은 점점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엄모순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거칠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글렌그란트 60년산 위스키 잔이 들려 있었고, 눈빛은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그는 임원 B의 협박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그가 말한 자료들이 실제로 언론에 노출된다면, 그는 손혜민과의 이혼 소송뿐만 아니라, 그룹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었다.
“비자금을 언론에 흘리겠다고?” 엄모순은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잔을 비웠다. “그 자식이 미쳤군.”
그 순간, 김탁기 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그는 항상 엄모순의 뒤를 따라다니며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 로봇이었다. 김탁기는 서류를 들고 조용히 회장에게 다가왔다.
“회장님, 임원 B에 대한 자료를 언론 공개용으로 법무팀 검토를 거쳐 완전히 모았습니다. 법인카드 사용 내역, 불법 자금 유출, 해외 출장을 가장한 도피 여행, 그리고 내연녀와 함께 그룹 전용기를 타고 해외로 나간 기록, 불법 증여 내역까지 모두 언론 공개용으로 깔끔히 정리됐습니다.”
엄모순은 조용히 서류를 받아 들었다. 자료는 두꺼웠고, 그 안에는 임원 B를 완전히 묵살할 만한 증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서류를 넘기며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저 자식을 끝장내자.” 엄모순은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당할 차례는 아니야. 이번에는 내가 칼을 쥐고 있어.”
김탁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말씀대로라면, 언제든지 공개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법인카드를 이용해 내연녀와의 호화 생활을 즐긴 기록과 불법 증여 내용이 언론에 나가면, B 부회장은 완전히 몰락할 것입니다."
엄모순은 눈을 반쯤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일단 B가 얼마나 더 발악하는지 두고 보자고. 순순히 물러날 놈은 아니겠지… 기생충은 기생충에 충실한 삶을 살 뿐이니, 곧 또 다른 숙주를 찾아 나설 테니까. 그러면 내가 손수 짓이겨 줄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이번엔 니 숨통을 갈기갈기 끊어주겠어. 기생충보다 더 비루한 것.”
엄모순은 숙주의 삶이 처음이 아니다. 무뇌한 회장이라도 그의 동물적 본능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이미 동물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을 꿰뚫고 있었다. 버러지는 버러지답게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짓누르듯 그를 사로잡았다.
감옥에서 그를 보필하며 헌신한 자들을 곁에 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절대로 사람을 믿지 않았다. 순간의 방심은 뱀처럼 기다리다 주인을 무는 독사의 입을 열게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몸소 체득한 자였다. 재벌의 세계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와 같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권력의 장막이지만, 속은 야수들이 이빨을 세우고 서로 물어뜯는 혈투의 장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 재벌가의 전쟁터는 그보다 더 잔인하다.
재벌은 그때그때 검투사를 내보내면 그만. 군중들은 먹잇감을 주워 먹기 위해 피비린내를 맡고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처럼 몰려든다. 필요하면 전사 하나를 더 만들어 내면 그만이다. 돈이라는 미끼만 던져주면 언제든지 충성심을 팔아넘기는 하수인들은 널려있다. 돈 냄새만 맡아도 꼬리를 흔드는 충성스러운 개들처럼 말이다. 전사가 쓰러지면 또 다른 개를 풀어놓으면 그만이니까. 대기업 임원을 꿈꾸는 자들은 이런 잔인한 현실을 알지 못한다. 대기업 임원 자리를 거져 얻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기처럼 번드르르 하지도 않다. 콜로세움에 던져인 노예 검투사들 처럼 서로를 물어 뜯어야 하는 또 다른 노예 계층일 뿐이다. 더 비싼 옷을 입고 더 비싼 차를 몰고, 더 비싼 음식을 먹고, 더 비싼 술을 마실 뿐 노예이기는 매 한가지일 뿐. 엄모순의 눈에 들기위해 밤잠을 설쳐대는 그리고 더 큰 돈을 보너스로 던져주기만을 간절히 염원하는 더 적나라한 노예일 뿐이다. 엄모순의 입가에 얕은 미소가 스쳤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잔혹한 게임의 규칙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기업 임원의 세계는 마치 로마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격투기와도 같다. 이곳에서는 매일같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며, 승자는 영광을, 패자는 잔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콜로세움의 아침
새벽의 어둠이 걷히고, 검투사들은 주요 부위만을 가린 채 벌거벗은 몸으로 전장에 나설 준비를 한다.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갑옷만을 걸치고, 날카로운 검을 손에 쥔 채 서로를 향해 긴장된 눈빛을 주고받는다. 대기업 임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매일 아침, 최소한의 방어막만을 두른 채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나선다. 회의실에서 펼쳐지는 전략 회의는 마치 전쟁터와도 같고, 그곳에서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며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 이곳에서는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격투의 시작
콜로세움의 문이 열리고, 관중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콜로세움의 문이 열리면, 검투사들은 망설임 없이 서로를 향해 돌진하며, 목숨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그들의 몸은 상처와 피로 얼룩지지만, 승리를 위해서는 물러설 수 없다. 임원들의 세계에서도 매일같이 전투가 벌어진다. 경쟁사와의 치열한 싸움, 내부에서의 권력 다툼, 그리고 끊임없는 실적 압박은 그들을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그속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부딪히며 상처를 입는다. 실적 압박과 목표 달성을 위한 무자비한 경쟁 속에서 그들의 정신은 지치고 피폐해진다.
전투 후의 정비
격투가 끝나면, 검투사들은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목욕을 하고 몸을 정비한다. 이 순간은 그들이 서로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확인하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동물적인 전략을 꾀하는 시간이다. 대기업 임원들도 전투가 끝난 후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회의실을 벗어나 혼자 남은 사무실에서, 그들은 자신의 실적과 실패를 곱씹으며 다음 전략을 구상한다. 이때 그들은 비로소 가면을 벗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생존과 승리
검투사에게 승리는 곧 생존이다. 패배한 자는 목숨을 잃고, 승리한 자는 명예와 부를 얻는다. 임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자리에서 밀려나고 만다. 반면, 성공적인 프로젝트와 실적은 그들에게 승진과 보너스를 안겨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더 큰 책임과 압박이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는 생존 게임
검투사의 세계에서는 한 번의 승리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는 다시 전장에 나서야 한다. 임원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쉬어갈 틈이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 상황과 기술 발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대기업 임원의 삶은 이렇게 로마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매일매일 치열하고도 냉혹하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평화로운 일상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아닐까?
대기업의 임원들은 매일 아침 전장으로 나가는 검투사처럼 자신을 무장한다. 값비싼 정장을 걸치고, 완벽하게 정돈된 외모로 회의실에 들어서지만, 그들의 내면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삶은 로마 콜로세움의 격투사와 다를 바 없다.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하지만, 결국 그들 역시 거대한 시스템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임원들은 마치 자신들이 다른 신분의 사람인 양 행세하며, 평사원들에게 실적을 강요하고 가차 없이 채찍질한다. "더 열심히 해! 더 많은 성과를 내!"라는 외침은 회의실을 가득 채운다. 때로는 그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원들을 철저히 이용하고 협박하고 또 소리지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들 스스로에게 건 최면일 뿐이다. 그들 역시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회사라는 거대한 콜로세움의 노예임을 부정할 수 없다.
회의가 끝나고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임원들은 잠시 가면을 벗는다. 고요한 공간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다. 승진과 보너스를 쫓아 달려왔지만,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경쟁과 실적에 대한 처절한 압박뿐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결국 임원들도 검투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승리를 위해 다른 이들을 짓밟고 올라서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대기업이라는 콜로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며,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임원들은 과연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시스템의 노예로 남아 있을 것인가?
재벌가의 세계도 검투사와는 다를 뿐 로마 콜로세움의 경기장의 한켠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전쟁과도 같다. 직접 검투사로만 나서지 않을 뿐, 그들의 운명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권력 다툼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그들은 자신들의 검투사를 내보내며 승리를 쟁취하려 한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패배한다면, 그들도 결국 벌거벗겨져 심판을 받게 되는 현실을 피할 수 없다.
콜로세움의 주인들
재벌가의 수장들은 콜로세움의 주인처럼 보인다. 그들은 직접 전장에 나서지 않고, 대신 자신들의 전략가와 후계자들을 내보낸다. 이 후계자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 지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치열하며, 승계 작업이 실패할 때마다 더 큰 위기가 닥친다. 이들은 마치 검투사가 목숨을 걸고 전장에 서듯,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 전략가와 후계자들을 잘못 고르는 날엔 그룹의 미래도 자신의 미래도 없다. 누구도 믿지 못하며, 해서 외줄타는 무당도, 용한 스님도, 믿음의 목사도 그들에게는 이용 대상이다. 그러나 거꾸로 철저히 이용당하기도 한다.
벌거벗은 진실
승계 작업이 실패하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분을 잃고 권력을 잃는 순간, 그 즉시 심판대에 오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껍데기 뿐인 관계는 무너지고, 그들의 진짜 맨얼굴이 드러난다. 화려한 외관 뒤에 숨겨진 불안과 두려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끝없는 심판
재벌가의 권력 다툼은 끝나지 않는다. 한 번의 패배가 끝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다시 검투사를 내보내고, 또 다른 승계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와 배신이 오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오직 승리뿐이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한 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단두대에 올라 처형당하는 처절한 심판을 받는 현실뿐이다.
재벌가의 세계는 이렇게 냉혹하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싸움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언제까지나 콜로세움의 주인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그들도 벌거벗겨져 심판받게 될 것인가? 이는 그들 스스로가 답해야 할 숙제인 것이다.
한편, 손혜민은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임원 B의 협박 전화를 받고도 한동안 무시했지만, 결국 그가 가진 자료를 이용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임원 B가 엄모순에게서 완전히 버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고, 이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임원 B는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손혜민이 그의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수척해 보였지만, 그 눈빛에는 위험한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
“B, 당신이 나한테 협박을 하겠다고?” 손혜민은 문을 닫고 그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가진 자료가 나를 무너뜨릴 거라고 믿는 모양이네. 하지만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잊은 건가?”
임원 B는 침착하려 했지만, 손혜민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한 발짝 물러섰다. 그녀는 대통령의 딸이라는 명성으로, 철옹성 같은 이미지를 구축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엄모순보다 더 냉혹하고 치밀한 전략가가 있었다. 손혜민은 모든 것을 이용할 줄 아는 여자였다.
손혜민은 차분히 미소를 지으며 임원 B를 마주했다. “B 부회장, 당신이 위험에 처한 건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당신을 완전히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손을 잡으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임원 B는 손혜민을 의심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지금 나를 도와주겠다는 겁니까? 엄 회장님이 저를 어떻게든 잡아 먹으려고 하고 있….."
손혜민은 가볍게 웃으며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엄모순이 당신을 버리면, 당신에게 남은 건 나밖에 없잖아요. 당신 내연녀의 신분 보장? 그건 나한테 맡겨요. 당신이 가진 증거들은 지금 당장 터뜨리면 안 돼요. 대신 나중에 우리가 필요할 때 그 카드를 사용하도록 하죠. 우리가 힘을 합치면, 엄모순은 곧 무너질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안전한 퇴로를 보장받을 수 있죠."
손혜민은 부드럽게 속삭였다. “내연녀도, 자녀들도 내가 모두 보호해 줄 수 있어요. 당신이 가진 자료는 우리에게 나중에 큰 힘이 될 거예요. 지금은 나를 믿고 이 상황을 벗어나세요.”
임원 B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손혜민이 자신을 완전히 조종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리고 마치 세상을 지가 조종할 수 있다고 철저히 믿는, 손혜민이 온 우주의 중심으로 착각하는 ‘손혜민교’의 교주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고, 손혜민 가스라이팅도 수백번 당해 봤지만,)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엄모순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상황에서, 손혜민이 제시하는 조건이 그에게는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지….
"당신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임원 B는 결국 손혜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손혜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요, 그럼 우리 서로 돕기로 해요. 내연녀의 신분은 제가 보장할 테니, 자료는 차근차근 넘겨주시면 됩니다."
손혜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 말을 마지막으로 명확하게 잘 들으세요. 당신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든, 내가 당신보다 항상 한 발 앞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이번에 나를 다시 건드리면, 그때는 당신은 정말 끝장이에요”
손혜민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임원 B는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끝장날까? 아니면 그녀가 먼저 무너질까?
임원 B는 손혜민의 말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엄모순에게 철저히 패배했지만, 손혜민이 제공하는 탈출구는 그에게 마지막 희망처럼 느껴졌다. 그가 가진 자료들, 엄모순과 손혜민의 비자금 관련 문서들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였다. 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는 한 번 더 살아날 수 있었다.
그날 밤, 임원 B는 손혜민과의 대화를 되새기며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텅 빈 사무실에서 그는 서류들을 한 장씩 꺼내 보았다. 그 안에는 엄모순과 손혜민의 차명 계좌, 비자금 운용 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룹의 자금을 개인적 용도로 얼마나 많이 빼돌렸는지, 해외로 자금을 빼돌려 은닉한 과정, 그리고 각종 투자로 가장한 돈 세탁까지. 이 모든 자료는 그의 손에 있었다.
임원 B는 문서들을 정리하며 자신이 이 게임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엄모순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두 세력 사이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엄모순과 손혜민 모두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특성과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숨겨진 감정까지도 읽어낼 수 있었다.
임원 B는 치밀한 전략가였다. 그는 오랜 세월 엄모순과 손혜민 사이에서 신중하게 줄타기를 해왔고, 이제 그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손혜민과의 동맹은 강력해 보였지만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그녀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임원 B는 손혜민이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다가 필요 없으면 언제든 단물빠진 껌처럼 어린아이가 질린 장난감을 내던지듯이 철처히 내버릴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손혜민에게 제공할 비자금 자료들을 분리하며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전략을 구상했다. 손혜민에게 넘길 자료에는 엄모순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엄모순에게 넘길 자료에서는 손혜민의 이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로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서로를 향하는 자금의 흐름을 분리하고 철저히 자신들의 정보만 쳐다보게 함으로써 자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반대편을 공격할 수 있는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짜로 공을 들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비자금의 최종 출처와 흐름은 그 어떤 문서에도 남지 않도록, 치밀하게 계좌를 분산하고 가짜 계좌를 만들어 덮어씌운 부분이었다. 오랫동안 이런 과정을 준비해 왔었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내용을 철저히 검증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모든 서류는 완벽히 위조된 것이었고, 추적이 불가능하게 처리되었다.
임원 B는 데이터 전문가와 해외 법률팀을 동원해 비자금이 흘러가는 마지막 단계까지 완벽히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 비자금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아내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거짓말과 미로 같은 금융 구조를 뚫어야 했다.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적어도 임원B의 계산으론 그랬다. 손혜민도, 엄모순도 자신들이 준 정보를 가지고는 절대 서로의 비자금을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퇴로를 만들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였다. 손혜민과 엄모순이 싸움을 벌이든, 손을 잡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일 뿐이었다. 임원 B는 이미 어느 쪽도 믿지 않았고, 그들의 배신에 대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제3국의 은행에 비자금 일부를 빼돌렸고, 그곳에서 자신이 죽더라도 자동으로 폭로될 문서들이 존재했다. 그의 치밀함은 어느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여차하면 김준호와의 비밀 채널도 이 모든 것을 폭파시킬 핵폭탄 같은 뇌관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작은 안도감이 스물스물 안개처럼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도한 완벽함 (완벽하다고 믿는 것은 임원B 자신 뿐이었지만)은 그 자체로도 약점이었다. 그는 퇴로를 너무도 완벽하게 만들었기에, 그 퇴로를 잡히기 라도 한다면 모든 증거가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고 들키는 날엔 나중에 자신의 발목이 그대로 잡힐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없는 법. 엄모순이나 손혜민 중 하나가 그의 치밀한 계획을 눈치채고, 자신의 치밀함을 한단계 한단계 역으로 추적할 수만 있다면 그 퇴로를 역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는 한때 자신이 쳐놓은 안전망이 곧 자신을 옭아매는 덫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임원 B는 문서를 정리하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벌여놓은 계획은 이미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 있었고, 누구도 그 끝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가 설계한 이 치밀함이 결국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새로운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손혜민 역시 임원 B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가진 자료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임원 B가 자신의 계획에 완전히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모순이 눈치를 챌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고, 손혜민은 서서히 초조함에 휩싸였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임원 B를 더욱 확실하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날 밤, 손혜민은 다시 한 번 임원 B에게 전화를 걸었다. "B 부회장, 제가 더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계획을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해요."
임원 B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그녀의 요구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자료는 제 유일한 보험입니다.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자료는 엄 회장님에게 넘길 겁니다. 그리고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손혜민은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나를 의심하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있어요. 이 배가 가라앉지 않게 하려면 서로 믿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손혜민의 내면에서는 다른 생각이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임원 B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순간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그를 철저히 배신하고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장 F는 회사 로비에 앉아 한숨을 내뱉었다. 추석 연휴 동안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어두웠다. 잠시 후, 그가 지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형, 추석 때 우리 집안 때문에 죽는 줄 알았어. 부모님한테 진짜 짜증나서 미쳐버리겠더라.”
부장 A는 그의 곁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장 F는 더 깊은 숨을 들이마신 후, 말을 이어갔다.
"부모님이 아직도 그 시절에서 못 벗어나. '니가 잘된 건 조상덕분이고 또 제사 덕분'이라며 자꾸 그 소리를 하는데, 난 미치겠더라고. 내가 죽어라 아르바이트 뛰고, 고시원 살면서 대학 다닐 때는 뭐 하셨냐고! 그때는 생활비 한 푼도 안 주면서 이제 와서 제사 덕이라고?"
그는 갑자기 소리치듯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내 마음이 어땠을 것 같아? 휘발유도 없는 자동차처럼 하루하루를 끌고 가는 삶이었어. 근데 그걸 아무도 몰라줘. 제사상에 음식이나 올리고, 그걸로 다 된 줄 아는 거야!"
부장 F는 더 깊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쿵 하고 내리쳤다. “어릴 때 자전거 하나 제대로 못 타봤고, 시장에서 바나나 하나 먹고 싶다고 떼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때는 돈 없다고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주더니! 그런데 이젠 내가 부모한테 해줄 게 많아야 한다고?”
그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어갔다.
"참 어이가 없어. 그때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제사상에 좋은 음식 올리더라. 할머니 살아계실 때는 그 흔한 삼계탕 한 그릇도 안 해주더니, 돌아가시고 나서야 무슨 고급 음식을 차린다는 거야?"
부장 A는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깊은 연민과 분노가 차올랐다. 자신의 부모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장님 말대로라면 우리 부모 세대는 고정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네. 자식이 힘들게 성공해도 그 공을 자기들한테 돌리려는 꼰대 정신이 남아있는 거지."
부장 F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결혼하고 애를 키우면서 그나마 부모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려 했지. 하지만 요즘 내 아이한테 뭘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을 느낄 때마다, 나한테 부모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나서 진짜 미칠 것 같더라. 내가 자전거 하나 사달라고 했을 때, 왜 그랬을까? 난 나중에 내 자식한테는 절대 그렇게 안해야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며칠 전에 또 사건이 터졌어. 어머니가 횟집에서 회 좀 사오라고 하더라고. 말이 횟집이지, 가보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더러운 곳이었어. 그런데 왜 그 집에서 회를 사오라고 했냐면, 그 사람이 장사가 안 돼서 불쌍하다고 그 집에서 사먹으라는 거였지. 나를 동정의 수단으로 쓰는 거야."
부장 F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졌다. 그는 그날 일을 떠올리며 주먹을 쥐었다. "차로 왕복 두 시간 걸려서 사온 회를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먹으라고 하는데, 내가 그 자리에서 고함을 질렀어. '엄마, 나를 자식으로 대우하는 거야, 아님 그냥 심부름꾼이야?' 그 말 하고 나니까 내가 너무 서글퍼지더라."
‘그리곤 내가 우리 아들한테 잘해주면 내 아들한테만 잘한다고….’ 부장F는 억울한 눈물이 글렁글렁한다. 가난이 한에 맺쳐, 경제 관념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 아무것도 없이 정말 아무 지식없이 시작한 서울생활이지만, 그래도 부장F는 이를 악물로 아끼고 아껴 작지만 서울에 아파트 하나 장만도 하고 누가 들으면 다 알만한 대기업 부장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부모 얘기라면 학을 떼는 서러움이 늘 맺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부모라고 명절 때는 꼬박 꼬박 내려가지만 올라올 때는 아니나 다를까 늘 허탈함과 쳇바퀴 도는 자신의 부모의 삶과 중세 시대를 방불케하는 그들의 감옥 창살과 같은 생각의 테두리에 미쳐 팔짝 뛴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부장 A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는 어쩌면 대놓고 얘기를 하지 않을 뿐 소재와 스토리만 다를 뿐 흔한 얘기일 수도 있을 텐데... 부모와의 갈등이 결국 우리 세대의 상처가 되는구나.'
그리고 그때,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부장 A는 무심코 스맛폰을 집어들었고, 뉴스 속보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속보] AB그룹 회장 엄모순의 아들 엄우준, AB화학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
부장 A는 웃음을 터뜨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놈들 또 자기들끼리 다 해먹네. 잘난 부모 만나 별다른 노력도 없이 그냥 한방에 부장이라니. 난 20년 넘게 뼈빠지게 일한 보상이 그냥 말한마디로 주어지다니. 아들아 미안해…"
부장 F도 고개를 흔들며 피식 웃었다. "재벌 아들은 한순간에 승진하고, 우리는 부모 부양하면서 사는 꼴이라니. 진짜 우리 세대는 지옥에 사는 것 같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더 잘 살고, 우리는 더 가난해지기만 해."
부장 A는 뉴스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그들끼리의 게임이야. 우리는 그 판에 끼지도 못하고, 그들 세계에 들어갈 수도 없어."
부장 F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부장 A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억눌린 분노로 가득했다. "우리 부모 세대도 마찬가지야. 자기들은 제대로 된 집 하나 장만 못 해주고, 오히려 자식들한테 '너 잘 된 건 내 덕'이라고 우겨대잖아. 제사상에 올린 음식이 뭔 대단하다고, 그걸로 인생이 풀릴 거라 생각하냐고!"
부장 A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부모님 세대는 지금도 과거에 사는 거지. 하지만 우리는 달라. 우리는 그들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은 치고 있쟎아. 근데 부모님 세대도 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부모님들만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나이가 드니 조금씩 보이는게 있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던 부분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도 있긴 한거 같아서…."
"근데 벗어날 수 있긴 한 거야?" 부장 F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재벌들은 그들끼리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우린 그 밑에서 남의 꿈이나 쫓는 신세라고."
그 순간, 또다시 뉴스 속보가 울렸다.
"AB그룹 회장 엄모순, 아들 엄우준을 유럽지사 부장으로 초고속 발탁! 재벌 2세의 꿈을 이룬다."
부장 A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덮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아. 우리는 열심히 살아봐야 결국 그들 발밑에서 허덕이는 신세야."
부장 F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SF 영화 같지 않냐? 우린 평생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저 재벌 놈들은 별처럼 날아다녀. 어쩌면 저들은 이미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는지도 몰라."
부장 A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재벌은 재벌대로,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우리는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 맨날 허덕이면서 살아가는 거야. 우리 세대는 부모 세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또 재벌 세대의 집착에서도 벗어나지 못해. 어쩌면 각자의 삶을 남들에게 이해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그들의 삶에 송두리째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해라는 것 자체가…각자의 삶은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SF영화가 아닐지….'
부장 F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형,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그들은 다 잘 먹고 잘 사는데, 우리는 부모 부양에 허덕이면서도 아무것도 못 얻어. 더 나은 삶을 살려고 해도 결국은 그들 세상에 끌려다니는 거잖아."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앉아 말없이 커피를 홀짝이며,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현실은 그들 앞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고, 그들의 인생은 여전히 그들을 옥죄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장 A는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편, AB그룹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음모의 중심에 서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엄모순 회장의 사촌동생, 엄민용 부회장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사촌형의 오만함과 방만한 그룹 경영 행태에 치를 떨어 왔으며,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내연녀와의 지저분한 관계, 그리고 온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이혼 소송까지, AB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는 저급한 행태에 혀를 내둘렀다. 사촌형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그 꼴이 그를 질리게 만들었고, 이참에 그 살이 오를대로 오른 돼지새끼를 몰아내고 자신이 AB그룹의 회장 자리를 꽤차고야 말겠다는 야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엄민용은 그룹 내에 뿌리박힌 권력 다툼과 일련의 모든 사태를 기회로 레버리지해서 AB화학과 AB가스의 합병을 무기로 세력을 규합했다. AB화학 부회장으로 AB화학의 이익도 극대화 하고, 그를 위해 그중에서도 핵심 인물인 임원C와 손을 잡고 합병 과정을 완성시키며, 자신이 거머쥘 막대한 이익을 계산하며 군침을 삼켰다. 임원C는 AB그룹 내에서 전형적인 양다리 전략으로 김준호와 부장A까지 조종하며 조직 내의 균열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임원C는 엄민용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충실한 하수인 역할에 충실했다. 일반인 출신의 임원은 오너가 앞에서는 그냥 고급 몸종에 불과하니 재벌가 연극무대에서 충실히 연말에 수상할 남우주연상을 꿈꾸며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이익만 극대화하면 될 일이고 자신의 몫만 잘 챙겨 나오면 그 뿐이었다. 그는 엄민용 부회장이 AB그룹의 차기 회장감이라 확신했고, 그가 회장 자리에 오를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은밀히 작당모의를 이어갔다. 엄민용 부회장이 회장에 오르면 자기도 한 자리 차지할 것을 꿈꾸며 밤낮으로 지략을 도모하고 여기저기 불을 지피며 동분서주 일분일초가 아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지금은 소처럼 일하며 엄민용의 계획에 충성을 다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곧 자신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를 날이 올 것이라 (마약에 쪄든 중독자처럼 욕망의 굴레에 갇혀) 철저히 믿고 있었다. 욕망에 눈이 먼 이들의 음모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엄모순은 고급 아파트의 침실에서 누워 오민형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 옆에서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은근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당신, 나와 함께라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오민형은 속삭였다.
그녀의 손길은 차가웠지만, 그의 욕망을 자극했다.
엄모순은 이미 수많은 밤을 오민형과 함께 보냈다. 그와 그녀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착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매달려 있었다. 엄모순은 오민형을 잃을 수 없었고, 오민형 역시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파괴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당신만 나와 함께 있으면 돼. 손혜민 따위는 필요 없어."
그 순간, 엄모순은 그녀의 말에 흔들렸다. 오민형의 말에는 언제나 묘한 유혹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를 조종하듯 다루었고, 그는 마치 그 조종에 넘어가듯 그녀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래, 너만 있으면 돼." 그는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이 관계는 더 이상 단순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의 결핍과 불안을 채우기 위한 집착이었다. 오민형은 엄모순의 권력을 원했고, 엄모순은 오민형의 젊음과 열정을 원했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점점 더 얽혀갔고, 그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갇힌 듯했다.
오민형은 침대에서 일어나 엄모순의 몸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녀의 눈빛은 그를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모순은 그런 그녀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의 육체에 집착하며, 그 욕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파괴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였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야."
오민형은 속삭이며 그에게 몸을 맡겼다. 그러나 그녀의 속마음은 이미 엄모순을 떠나 있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를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찾고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욕망 속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육체는 하나가 되었지만, 마음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이미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