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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Sep 09. 2024

충성개에서 배신자로: 임원B 변신극의 서막

기생충 아니거든!!

(본 글에 포함된 내용은 창작된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따라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등을 포함한 이 소설의 모든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창작물입니다.)


서울의 야경은 언제나처럼 화려했다. 고층 빌딩의 네온사인들은 늦은 밤까지 도시를 밝히고 있었지만, 그 찬란한 불빛 이면에는 음모와 배신의 어둠이 깊어가고 있었다. AB그룹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룹의 회장, 엄모순이 있었다.

엄모순은 서울 시내에 위치한 고급 사무실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회사 재무 보고서와 법적 대응 문서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그의 손에는 반쯤 비워진 발베니 1937이 담긴 위스키 잔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 잔을 천천히 돌리며 불안에 잠겼다. AB그룹은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 그 자체였고, 그의 피와 땀, 그리고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것이 위태로웠다.


책상 위에는 손혜민과의 이혼 소송 관련 문서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손혜민은 그를 향해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녀는 엄모순이 그동안 숨겨왔던 비자금과 부정한 거래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로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갈 만큼 강력한 무기였다. 그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놈들이 나를 이렇게 쉽게 무너뜨리려 하다니..." 엄모순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혼 소송은 단순히 재산을 나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명예, 그의 권력, 그리고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제국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손혜민은 그에게서 이 모든 것을 빼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오민형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그의 내연녀였고, 그가 지난 몇 년간 감춰왔던 가장 큰 비밀 중 하나였다. 그녀의 표정은 단호했으며, 눈빛에는 불안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엄모순은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제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해요." 오민형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손혜민이 우릴 끝장내려 하고 있어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엄모순은 그녀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혜민이 그들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혼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승리가 가져올 결과는 그를 몰락시키기에 충분할 것이었다.

"나도 알아." 엄모순은 무겁게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가진 카드가 있어. 손혜민이 마지막까지 밀고 나가면, 나도 ….."


오민형은 그의 옆으로 다가와 부드럽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어 두 칸 풀어진 와이셔츠 안으로 그녀의 손길이 스쳐간다. 그녀의 손길은 짜릿하고 따뜻했지만, 그 속에는 숨겨진 차가운 욕망이 있었다. 엄모순은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엄모순은 그녀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우리가 이기려면 더 이상 주저할 시간이 없어요." 엄모순이 마시던 발베니 1937을 한모금 마시며 오민형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손혜민이 우릴 몰아붙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모든 걸 잃게 될 거예요."

엄모순은 그녀의 말을 듣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옳았다. 그가 더 이상 기다린다면, 손혜민은 그를 완전히 끝장낼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반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남아 있었다.


"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엄모순은 천천히 말했다.

"이 싸움이 끝나면 넌 내 아내가 될 거야. 손혜민을 밀어내고, 우리는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어."

엄모순은 와이셔츠를 풀어헤치며 오민형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오민형의 눈에는 욕망이 불타올랐다. 그녀는 엄모순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 속에는 더 큰 욕망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엄모순의 아내로 남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이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해 더 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엄모순이 눈치채지 못한 것은, 그 방 안에서 오가는 대화의 이면에 또 다른 음모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임원 B였다.





임원 B는 AB그룹에서 수십 년을 몸담아왔다. 그는 처음에는 단순한 재무 담당자로 시작했지만, 차근차근 그룹 내에서 입지를 넓혀갔다. 그의 경력은 그를 재무팀에서부터 그룹의 전략기획실까지 이끌어 주었고, 결국 그는 AB화학 사장을 거쳐 부회장으로 승진하여 그룹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룹에서도 엄모순과 손혜민 사이를 줄타기 하며 둘 사이의 메신저 역할도 해 왔으며, 그룹의 비자금과 둘의 비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룹의 회색 핵심이었다.


그의 임무는 단순한 경영과 재무 관리를 넘어서, 엄모순과 그의 내연녀 오민형의 비밀을 보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모순이 오민형과 내연 관계를 맺으면서, B는 자연스럽게 그 관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는 엄모순의 지시에 따라 오민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게 되었다. 빌라 구입 자금, 생활비, 고급차 운영비용, 비서 월급,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 등, 모든 것이 그의 손을 거쳤다. 엄모순이 오민형에게 제공한 금전적 지원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었고, 그것을 투명하게 보이도록 관리하는 것은 B의 몫이었다.


B는 이 일을 철저히 비밀로 유지해야 했다. 엄모순의 지시대로, 그는 모든 자금을 세탁하고,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자금원을 찾아냈다. 그것을 위해 동남아, 미국 등지에 다양한 수상한 투자로 포장된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하고 부동산을 사고 파는 등 그룹의 집사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는 그였다. 그는 오민형의 지출이 엄모순의 다른 재정 활동과 연결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B는 엄모순과 오민형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B는 점차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엄모순은 그를 충성스러운 하인처럼 취급했고, 그에 대한 보상은 점점 줄어들었다. B는 자신이 이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원하는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엄모순의 명령을 따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는 언젠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B의 불만은 폭발했다.


사실 불만은 2년 전부터 스나브로 임원B의 머리에 암덩어리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1년전 경기도에 위치한 고급 골프장.

임원 B는 골프장에서의 태양 아래, 땀을 훔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게 골프는 그룹의 복잡한 일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에, 그런 여유를 최대한 즐기고자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 하나가 그의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엄모순.


그가 나타난 것이다. 그 비열한 미소를 띤 채로, 오민형을 동반한 엄모순이 한 쪽 티박스에서 골프채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B는 이마에 맺힌 땀이 더욱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반사적으로 그곳에서 멀어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엄모순은 그를 발견했고, 손가락을 살짝 흔들며 다가왔다.

"오랜만이군. 이렇게 골프장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B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가 엄모순과 대면하는 순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특히나 지금, 그룹의 자금 문제와 엄모순의 비자금 세탁에 대해 조심스레 발을 빼려던 B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오, 네... 그렇습니다. 이곳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B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음,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오늘은 그냥 편히 쉬자고." 엄모순은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곧 자신의 동행인들에게 돌아갔다.

B는 한숨을 쉬며 그 자리를 떠났지만, 그 일이 불길한 징조였다는 걸 직감했다.




며칠 뒤, B의 사무실 문이 노크도 없이 무례하게 열리며 엄모순이 들어섰다. B는 비밀 서류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엄모순의 눈빛은 이미 사무실 안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임원 B, 잠깐 얘기 좀 하지."

엄모순은 문도 닫지 않은 채로 곧바로 말을 던졌다.

B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좋지 않은 일이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내가 골프장에서 네가 뭐하는지 지켜봤어. 근데 문득 궁금하더군. 그날 네가 쓴 카드는 뭐였지? 법인 카드였나? 아니면 개인 카드였나?"

엄모순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그 속엔 강력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마치 아무리 작은 것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한.

B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그는 엄모순의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떨구며 입을 열었다.

"업무용 접대였기 때문에 법인 카드였습니다. 물론, 그룹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

"법인 카드라? 하하!"

엄모순은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법인카드로는 도대체 어디서 얼마나 긁고 다닌 건가? 아니, 다른 것도 있는 건가? 네가 지금껏 나 몰래 뭘 써댔는지 아주 자세히 듣고 싶군."

B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얼마나 그룹의 어두운 돈을 움직였고, 그 모든 것을 엄모순의 지시에 따라 처리했는지를 잊은 건지, 아니면 이런 식으로 그를 압박해 입을 막으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감히 그 앞에서 반박할 용기가 없었다.

"회장님이 지시한 일만 처리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B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엄모순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에는 차가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좋아. 그럼 이번 달의 비용도 잘 처리해줘야겠지. 만약 실수라도 한다면, 그때는 네가 사라질 곳을 찾게 될 거야. 알겠나?"

엄모순은 마지막 경고를 남기고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B는 가슴 속 깊이 쌓여 있던 분노와 절망이 폭발하려는 것을 억눌렀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더 이상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이제, B는 그가 얼마나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이런 압박과 갈등의 시작은 사실 엄모순의 비자금 관리에 더해 오민형의 개인 자금까지 관리하면서 부터였다. 임원 B가 엄모순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은 오민형과 관련된 문제였다. 엄모순이 내연녀 오민형에게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고, 그 금액은 점점 더 커져 그룹에 큰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B는 그룹의 재무적 안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 자금이 점차 위험해질 수 있고 자신의 위치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가 엄모순에게 그 문제를 제기하면서 둘 사이에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17개월 전. 엄모순이 B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이 날의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B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며 엄모순의 시선을 피했다. 엄모순은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앉아 웃으며 B를 쳐다봤다.

"임원 B, 이번에 오민형 쪽 자금 말이야. 조금 더 늘려야겠어. 그녀가 새로 찾은 프로젝트가 있는데, 지원이 필요하다더군."

B는 그의 말에 속이 끓어올랐다. 그는 이미 한계를 넘은 자금 지원을 감당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돈이 오민형에게 흘러들어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룹 전체 재정에 큰 부담이 가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눈을 감을 수 없었다.

B는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회장님, 오민형여사님 쪽 지원은 이제 더 이상 무리입니다. 그룹 재정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금 조달에도 점점 어려움이 생기고 있고, 더 이상의 지출은 그룹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엄모순은 잠시 말을 멈추고, B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짙은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니가 언제부터 나한테 조언을 하게 된 줄 모르겠군.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니 일이잖아!!"

B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하지만 오민형여사님에게 들어가는 자금은 너무 과합니다. 이미 그룹 외부로 불법 자금 유출이 의심될 수 있는 상황이고, 만약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우리 모두 큰 위험에 처할 겁니다."

엄모순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B에게 다가왔다.

"너 지금 나한테 반기를 드는 건가? 오민형에게 들어가는 돈이 그룹을 위해서라면, 그게 바로 그룹을 위한 돈이야. 네가 그걸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거지?"


B는 그 순간 결심했다. 더 이상 엄모순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자신의 직업과 그룹을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꼬리가 잡힐 일이고 자신의 신분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더 단호해졌다.

"회장님, 저는 그룹을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오민형 여사님 개인을 위한 자금 세탁이 아닌, 그룹의 재정적 안정을 위한 일이 저의 역할입니다. 더 이상 이 불법 자금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 결정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엄모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목소리는 낮아졌지만, 그 속엔 분노가 끓고 있었다.

"네가 감히… 나에게 도전하겠다는 거냐?"

B는 떨리는 손을 꼭 쥐었다. 그는 엄모순의 말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상태로 물러서는 것은 엄모순에게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뿐, 어짜피 자기가 기르는 개돼지 만도 못한 임직원들의 안위 따위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그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임원B.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불명예는 자기만 뒤집어 쓸 치욕에 불과했다.


엄모순이 폭풍처럼 사라지고 창문 밖으로 빌딩 숲을 내려다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치욕적인 순간을 잘 참았지만 상상만이라도 즐겁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회장님. 저도 제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해왔지만, 이건 이제 선을 넘은 겁니다. 저는 제 양심을 지켜야겠어요."

엄모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B를 내려다보았다.

"양심이라... 네가 그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군. 네가 내 손을 떠나면 네가 지금껏 감춰왔던 것들, 다 무너질 텐데.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나?"

B는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이 지금 엄청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제가 감당해야 할 일이면 감당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민형여사님에게 들어가는 자금 문제는 제 손에서 끝났습니다."

엄모순은 잠시 말을 멈추고 B를 응시했다. 그 표정에는 혼란과 분노가 엇갈리고 있었다.

"좋아.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하지만 그 선택에 따른 결과는 네가 감당해야 할 거야."

엄모순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B는 그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모순과의 관계는 그날로 끝이 났고, B는 홀로 그 거대한 파도에 맞서야 할 준비를 해야 했다.


잠깐의 상상은 즐겁지만, 엄모순의 반응도 함께 상상하자니 과연 자신이 감당할 무게인지 문득 자신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직시해야할 현실이 될 날이 올 터인데....."

임원B는 벼랑끝에 내몰린듯 하다. 엄모순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하기도 싫은 임원B.

마침 (저승사자 같은) 김탁기 비서가 문을 두두리고 임원B에게 인사를 건넨다.

순간 식은땀이 온몸으로 흐른다.


사실 임원B가 이런 결정을 하게된 것은 단순히 그룹의 재정을 염려한 순수한 동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룹의 재정을 관리하고 비자금을 관리하는 탓에 엄모순으로부터 특혜를 받고 있었고 부회장까지 올라 당당히 그룹의 전용기를 마치 개인 비행기마냥 타고 다니며 프랑스 남부 깐느와 쌩트로페로의 휴가는 물론이고, 출장을 빙자한 다양한 출장에 골프라운드에 비자금 관리랍씨고 법인카드를 한도 없이 사용해 온 그였다. 캘리포니아 페블 비치, 프랑스 에비앙 골프 클럽에도 수차례 다녀오고 사치스러운 접대도 일상화되어 있었다. 퍼스트 클라스 탑승은 물론이고, 그룹 2인자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라스트콜이 임박해서 같이 탑승한 임원들의 인사를 두루두루 받으며 모세의 기적처럼 비행기 내부에서 임원들의 허리굽힌 인사길을 통과하는 것은 제2의 취미였다. 순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만천하가 본인의 발 아래 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은 정말 짜릿했다.

마약처럼 중독된 부회장 놀이.

그러나 그도 이제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2년전.

B는 차분하려 노력했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오민형에게 들어가는 자금 문제는 더 이상 비밀로 유지될 수 없었고, 여러 사람이 그 수상한 자금 흐름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B는 엄모순에게 이 사실을 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었다.

엄모순이 그 특유의 비열한 미소를 띤 채 사무실에 들어서자 B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단순한 자금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들의 모든 계획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었다.

"임원 B, 뭐 중요한 얘기라도 있나? 나 바쁘다."

엄모순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았다. 그러나 B는 느긋해질 수 없었다.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회장님,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최근 기자들이 오민형여사님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내부에서 수상한 낌새를 맡은 사람들이 오민형여사님의 동태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새로운 동반자(이 말을 입밖에 내며 눈치를 살핀다)라는 사실은 공공연히 알려져 있긴 하지만...."

엄모순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고, 손에 쥔 서류가 들썩였다.

"기자들이라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거지?"

B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미 몇몇 기자들이 여사님의 생활비와 고급차, 그리고 자제분들의 학비 같은 부분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자금이 어디서 오는지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도, 일부 임원들이 오민형여사님이 사용하는 자금이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저희 자금 흐름이 외부에 노출될 위험이 큽니다."

엄모순의 얼굴에 서서히 분노가 차올랐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칼이라도 휘두를 기세로 B에게 다가갔다.

"내가 너한테 맡긴 일이 뭐였지? 오민형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자금을 완벽히 감추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 기자들이 알아챘다고?"

순간 엄모순은 임원B의 풍성한 허리옆을 길게 쑤셔댔다.

B는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한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회장님. 하지만 이젠 저희 손을 떠났습니다. 자금 흐름을 포착한 기자들이 언제 보도를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부 임원들 중에도 수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몇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는 건 무리입니다."

엄모순은 눈을 가늘게 뜨고 B를 노려보았다. "

그래서 이제 어쩌라는 거지? 네가 하자는 대로 자금 지원을 끊으면 오민형은 어떻게 되나?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런 말을 하러 온 이유가 뭔지 알고 싶군."


B는 숨을 고르고,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엄모순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자신과 그룹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회장님, 더 이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그룹에 심각한 리스크를 초래합니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간다면 그룹 전체가 붕괴할 수 있습니다. 저도 더 이상 이 자금 흐름을 관리할 수 없습니다. 기자들은 언제든 파헤칠 준비가 되어 있고,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임원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엄모순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그의 목소리는 낮아졌지만 그 안엔 위험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

네가 지금 내 말에 반기를 드는 거야, B? 내가 널 어떻게 여기까지 올려줬는데, (감히 벌레보다 못한 너 따위가) 이젠 배신하겠다는 건가?"

B는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순간이 올 것임을 알고 있었다.

"배신이 아닙니다, 회장님. 이건 (특히 저와) 그룹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기자들이 오민형여사님의 자금 출처를 찾아내면, 우리 모두 끝장입니다."

엄모순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빛엔 혼란과 분노가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내 비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네가 그렇게 나서서 그룹을 지키겠다는 거라면…. 하지만 네가 알았으면 좋겠군, 이 선택에 따른 결과는 모두 네 몫이란 걸. 일단 기자들의 소속을 모두 알아내서 광고비로 막고 어떤 수(다양한 형태의 접대)를 써서라도 처리해!!!!"

엄모순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기자들이 뭐라든,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오민형에게 가는 자금은 끊기지 않아.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니까."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리는 순간, B는 자신이 더 이상 엄모순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 거대한 폭풍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였다.





B가 엄모순에게서 더욱 더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손혜민과의 이혼 소송이 본격화되면서였다. 엄모순은 손혜민과의 싸움에서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B는 엄모순에게 경고를 보냈다. "이렇게 자금을 계속 은닉하다가는 모든 것이 들통날 겁니다. 위험해요."


그러나 엄모순은 B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B를 점차 배제했다. 엄모순은 B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오랜 시간 자신을 위해 일해 온 B를 내치기로 결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에 내쳤다가는 그가 관리하던 자금의 출처와 정보가 까발려질 수도 있는 터. 임원B가 미쳐날뛰며 무슨 짓을 할 지 모를 일이다. 하여 엄모순은 한 발짝 한발 짝 임원B를 옥죌 정보들을 김탁기 비서에게 모으도록 했다. 법인카드를 어디에 써댔는지,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은 얼마나 되는지 등 구린 내나는 카드 사용 내역들을 모두 모아 서서히 뜨거운 물에 담굴 생각이었다. 덕분에 임원B도 내연녀가 있으며 심지어 아주 용감하게도 그룹 전용기에 태우고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실도 알게 됐다.

'주제에...' 엄모순은 썩소가 담긴 혼잣말을 되내인다.


그룹 전용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정황, 불필요한 해외 출장, 해외 출장 중 거액의 지출 내역, 여자 관계 등 그의 구린내 나는 흔적을 샅샅이 뒤져 조용히 내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골프장에서 개인 카드를 사용했는지 법인 카드를 사용했는지 추궁한 것도 지능적인 심리적 압박적의 일부였다. 그렇게 임원B의 머리에 불안함과 죄책감을 심고, 오로지 그의 주인은 자신임을, 임원B는 태생이 다른 미천한 종에 불과함을 각인시키기 위한 아우성 없는 가스라이팅 전략의 일부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는 법. 사람을 내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각종 구린 정보들을 모으는 것이 김탁기 비서의 특기였다.



엄모순은 배은망덕한 성가진 임원B를 어떻게 내칠지 순간순간 고민한다.

'지 태생도 분수도 모르는 버러지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놈, 나한테 기생하는
기생충인 주제에.....'

엄모순은 입밖에 내지는 않지만 이렇게 속삭이며 오늘도 지인들을 모아놓고 고급 파티를 즐긴다. 이런 사교모임에서 요염한 엄민형을 만난터, 소되새김질 하듯 연신 그 때의 짜릿함을 되내인다. 파티가 끝나면 오민형과의 새로운 되새김질을 연신 상상하며...이혼소송도 비자금 관련 협박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사회의 지탄도 사회적 책임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 소리칠듯이.


조용히 돔페리뇽이 테이블에 깔리며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한편 우리 주인공 A부장은 김진호 전 이사와 자주 만나며 누구를 이용해서 그룹의 위기를 극복하고 엄모순을 내칠 수 있을지 전략을 쥐어짜고 있었다. 여러 인물들을 마인드맵으로 그리면서 장단점을 분석하고 실행 가능한 전략인지를 면밀히 검토하던 중 임원B가 엄모순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듣기에 이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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