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주:
새해 첫 눈이 왔습니다.
눈길을 하염없이 걷는 동안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 올랐습니다.
마치 할머니 손을 잡고
같이 걷는 것 처럼
따뜻한 눈 길이었습니다.
오늘따라
할머니가 몹시 보고 싶습니다.
감사의 말씀:
(지난 글을 마지막으로
'밀크우롱티' 브런치북을 마감했었습니다만,
에필로그 하나 더
할머니를 추억하는 시 하나
더 쓰라고
오늘 눈이 조용히 오셨습니다.
이 시 하나만 덩그러니 두기도 그렇고 해서,
이미 마감한 책을 다시 마감하는 것이 송구하오나,
감사의 말씀을 이 글로 옮겨 다시 적습니다.)
한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던 가을에,
한해를 지나온 마음의 조각들로 은은하게 잔을 채우며,
한 해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흐르는 시간의 물결을 바라보면서,
저의 한해를 추억과 함께 관조하고자 했던 시집을 이 글을 마지막으로 마감하고자 합니다.
은은한 미소로, 잔잔한 여운으로, 말없이 흐르는 시간과 함께 한해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분들께
조금이나마 공감의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앙티브 Antibes 올림
P.S.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첫 발자국이 닿았다,
뽀득,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부신 겨울 햇살 속
가늘게 떨리던 당신의 숨결처럼,
하얀 들판은 고요 속에 울고 있었다.
뽀득뽀득,
내 발끝마다 당신의 시간이 부서졌다.
그 옛날,
땀 맺힌 이마로 마당을 쓸던 당신의 손길이
차가운 눈 속에 숨어
나를 부르는 듯했다.
숨이 찼다,
발자국 위로 피어나는 입김,
그 안에 어린 내가 웃고 있었다.
당신의 무릎에 기댔던 나날들,
마른 손바닥에 스며든 뜨거운 약속들이
하얗게 날리는 눈송이로 흩어진다.
나무는 잠들고, 길은 멈춘다.
얼음 같은 침묵 속에서도,
당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눈송이마다 적힌 무언의 기도처럼,
나를 감싸 안으며
영원으로 가는 다리를 놓고 있었다.
이 겨울의 끝에
당신이 있을까.
아니면 그리움의 잔해들이
내 삶을 덮고 있을까.
눈은 지우고, 또 새긴다.
뽀득뽀득,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눈길 위의 영혼,
당신이 남긴 사랑의 소리가
나의 내일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