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침내 산다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차가운 별빛이 얼음 꽃처럼 깔린 밤,
달빛은 마른 잎새 위에 얇게 내려앉고
겨울의 첫 숨결이 천천히 밀려온다
빈 들판에 남은 서리처럼,
누군가의 기다림은 아직 남아
떨림조차 얼어붙은 시간 속에
가만히 내리는 어둠을 견디고 있다
차가운 바람 속에 묻힌 그리움의 잔해들,
마지막 황금빛 잎들이 흩날리며
한줄기 서글픈 웃음처럼 사라진다
밤은 깊어질수록 차갑게 웅크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올빼미의 울음,
기억 속에 잠든 그 모든 따뜻함도
이제는 얼어붙은 눈처럼 소리 없이 쌓인다
마지막 잎이 소리 없이 손을 놓던 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얻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 나무는
피와 살을 걷어낸 뒤
선(線)만 남은 몸으로
하늘의 깊이를 받아 적는다
눈이 조용히 내려앉을 때
가지의 존재는 더욱 선명해진다
더 이상 감출 것 없이
부러짐 대신 고요가 쌓인다
이 앙상함은 죽음이 아니라
깊게 내려가는 뿌리의 기도임을
마침내 알겠다
바람이 할 말을 다 하고 지나간 후,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는 가지.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고
가장 강한 침묵이다
올빼미의 울음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것은 밤을 견딘 자의 속삭임,
오직 텅 빈 가지만이 들을 수 있는.
모든 잎을 잃고도 흔들리지 않는
이 고요함 속에서,
나는 마침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