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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내리며

by 앙티브 Antibes


커피 잔에서 피어나는 김이

천천히 길을 잃을 때,


뜻밖의 메시지 한 줄이

어두운 주머니를 찢고 들어와
손가락 사이로 잔잔한 빛을 흘려 보낸다.


전화를 받는 손끝에 머무는 목소리는,

등대.

멀리서도 길을 비춰주는,

부서진 시간들을 모아주는 소리,

부서진 날들을 모두 모아 조용히 길을 낸다.


묵은 찻잔에 금이 가듯,

낡은 서랍 속 잉크 한 방울이 번지듯,
아주 작은 틈으로 스며드는 것이 있다.


잊었던 이름 하나가
혈관을 타고 오르는 아찔한 순간,
혹은, 무심코 건넨 다정함이
밤새 잠 못 들게 뒤척이게 하는 밤.


행복은 예리한 유리 조각 같아서,
무심코 쥔 손에 금빛 흉터를 남기고야 만다.
그 상처의 쓰라림마저 감미로워
우리는 기꺼이 심장을 내어주고,


찰나의 베임에 중독된 채,
가장 작은 것들에 가장 날카롭게 베이며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여, 삶이란
결국, 사소한 것들이 새겨놓은
눈부신 상처들의 아우성일 뿐.


행복은 거대한 성이 아니라 한 움큼의 모래,

작은 찰나들이 모여 하루를 빚고 또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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