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숨구멍을 소개합니다
'무슨 일에든 프로가 되어야 한다'
'일만 시간을 들여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한다'
아무래도 이런 건 내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열심히 일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프로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앞서가면 쉬이 조급해지며 우울해진다. 더 잘하려고, 더 인정 받으려 애쓰는 내 모습을 문득 타인 보듯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성과가 기준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고 타인의 평가에 존재가 들썩이고 이게 과연 최선인지 스스로를 의심하다 보면 때로는 가면을 몇 겹씩 뒤집어 쓴 듯한 답답한 기분도 든다. 나는 그랬다.
그런 기분에 오래 고이면 ‘못해도 괜찮은’ 세상으로 슬쩍 자리를 옮긴다. 적은 역량을 인정해도 자유롭고, 느린 성장에도 즐거울 수 있는 곳. 갖은 걱정에 잔뜩 찌푸렸던 미간이 슬그머니 풀어지는 곳.
아마추어의 세계다.
좋아서 하는 일. 누군가는 취미라고, 혹은 꿈이라 한다. 자기 개발의 일종이라고도 한다. 융복합형 창의적 인재가 되려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도피처이자 '숨 쉴 구멍'으로서 의미가 있다. 지금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말갛게 즐거워 하는 것도 그 세계에서는 자연스럽다.
한 사람이 사회화 되기 전, 자발적으로 반복해온 놀이를 보면 그 사람의 적성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강점에 어울리는 활동을 선택한다고. 처음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난 뭘 하며 놀았지?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혼자 노래를 만들면서 놀았다.
악기 하나 배운 적 없지만 내 곁에는 늘 음악이 있었다. 음악이 놀이였다. 그렇다면 음악인이 될 운명이었나 하면, 그것도 모르겠다. 뭘 좀 해보겠다고 힘을 주면 망하기 일쑤였으니까.
대단히 빼어나지 못해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도 악기를 뚱땅거리며 그저 그런 노래를 만드는 시간이 좋다.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을 기울여 졸졸 흘려보내고 싶거나 정말 심심할 때 하는 놀이이므로 곡에 대한 호평은 고맙지만 악평을 듣는다고 기분이 상하진 않는다. 애초에 잘하려는 욕심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그냥 음악을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대학 시절, 그리고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까지도 이 작은 숨구멍을 항상 지켜왔다. (숨 쉴 구멍은 큼직해야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면 콧구멍도 작다는 걸 기억해보자.)
직업인으로서 글을 쓰면 부담감에 사로잡혀 마무리하기가 늘 어려웠지만, 신기하게도 노래는 완성할 욕심이 없어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평가하는 내면 속 삼인조 대법관이 의식될 때, 그래서 평가 없는 세계로 달려가고 싶을 때 피아노 앞에 앉는다. 마음 가는 대로 분위기를 깔고 연주를 하면 대법관들도 함께 머리를 흔들며 흐름에 동참할 것 같다.
장인이 세공하듯 공들여 곡을 만드는 음악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 세계가 얼마나 치열한지 모르지 않는다. 나는 그분들과는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유치하지만 반사적으로, 단순하지만 즐겁게 노래를 만든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음파의 공명 속에서 활공하며 위로를 받는다.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없는 것 같지도 않은’ 애매한 내가 마음에 든다. 내가 쓴 곡들은 조금씩 비슷하게 들리긴 하지만 그게 바로 내 음악의 색깔이라고 뻔뻔하게 말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