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낙서하듯 자유롭게, 노래 짓기 07화

라이킷 3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장보영 Oct 24. 2021

너 음악 전공해볼래?

놀이터에서 전쟁터로

나는 자꾸 딴 세상에 가곤 했다. 수업 중에도, 버스에서도 화음을 계산하면서 상상 속 피아노를 눌렀다. 창밖을 멍하니 보면서 GM7과 Gm7과 G7의 차이를 헤아려보거나 다장조(C key)의 3도 화음과 사장조(G key)의 6도 화음과 라장조(D key)의 2도 화음이 모두 ‘미솔시(Em)’라는 것에 신기해하면서 혼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전조도 일종의 놀이였다. 하나의 곡을 12 조성으로 모두 연주하는 것인데, 틀릴 때마다 다시 맞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어려운 재즈 화성은 어차피 들어도 몰랐고, 관심이 거기까지 기울지도 않았다. 대신 장음계 안에서의 웬만한 진행이라면 들리는 대로 대충 따라 칠 수 있게 됐다.

절대음감을 타고나지 않아도 상대 음감은 노력으로 다듬을 수 있다고 들었다. 나에게 ‘절대음감’이란 단어는 ‘절대 내겐 없는 천재적 음감’처럼 단호하게 느껴진다. ‘상대 음감’은 ‘나를 상대해 줄 친근한 음감’의 줄임말 같다(실제 의미는 아님). 상대 음감을 기르면서 어떤 곡을 들었을 때 멜로디와 코드 진행이 대충 그려졌고 악보가 없어도 칠 수 있었다. 노련하진 못해도 말이다. 때로는 더 어울리는 진행을 찾아 나름의 편곡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마음 내키는 대로 코드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멜로디를 붙여보는 방식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어릴 때 노래를 짓던 내가 행복한 애벌레 같았다면, 피아노와 화음을 익힌 이후의 나는 꽃밭을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느낌이다. 누릴 수 있는 음악의 차원이 달라졌달까.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피아노를 되는 대로 막 치면서 매일 시간을 보냈다.

유치하고 빤한 코드 진행만 나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인형 놀이나 소꿉놀이를 할 때 '주말연속극처럼 연기하라'라고 강요할 수 없듯이 음악 놀이에도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 여느 놀이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실컷 해볼 시간이 필요할 뿐.

그즈음 교회 부서에서 주제가를 공모했다. 부담 없이 곡을 써서 도전했는데 뜻밖에도 내 곡이 뽑혔다. 머릿속 흥얼이가 밖으로 나와 많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된 것이다. 내가 만든 곡을 수십 명이 부르는 광경을 그때 처음 보았다. 신기했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신기하면서도 자긍심과 약간의 거북함을 동시에 느끼며, 아무래도 면구스럽고 또 황송했다. 어린 나는 우쭐해지지 않기 위해 '이 곡은 이제 우리 모두의 노래야' 생각하며 마음을 붙들 줄도 알았다.

그러다 교회 반주자가 갑자기 빠졌던 어느 날, 급히 내가 피아노 앞으로 투입되면서 얼떨결에 일일 반주자가 됐다. 초견 능력이 없으니 찬송가 4성부 치는 법은 몰랐지만 그래도 아는 곡이라 적당히 코드 반주를 깔아 무리 없이 연주했다. 진행자가 악보 없이 무작정 찬송을 시작해도 그럭저럭 key에 맞춰 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났나?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는 겨울이었다. 우리 교회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가진 반주자 선생님이 잠깐 좀 보자며 불렀다.

“너 피아노 배워본 적 있어?”

“아니요.”

“그럼 어떻게 반주하는 거야?”

“그냥 재밌어서 혼자 연습했어요….”

“그래…?”

선생님은 나에게 음감이 있다며 과감하게 이렇게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