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의 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도밤 Jan 02. 2024

장지연(2023),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본 한글


55p. 비파 밑바닥에 쓰여 강남으로 흘러간 <한송정>은 아마도 향가였을 것.

64p. 고려 사람들이 한문을 읽고 접하는 방식은 조선과 달라서, 한문을 읽을 때 훈독을 많이 했던 점.

67p. 향찰로 쓰인 사례에는 꼭 무언가 말이 붙었다는. "이것도 나름 쓸데가 있으니 안할 이유는..."

71p. 균여의 <화엄경>, 제3권에 붙은 석독구결은 아마도 균여의 해설일 것.

92p. 유교 경전이 한글 창제 직후 바로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권위 있는 구결이 바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

101p. 석독이 사라진 것은 (점차 한문 실력이 늘어서) 한문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듯. 음독구결은 한문을 읽으며 머릿속에서자동으로 한문이 해독되는 사람에게 유용한 독법이므로. 신미가 건의하길 15세기에 기본 경전을 제대로 알고 외는 자는 천 명이나 만 명 중 한두명일 것이라는 것.

103p. 한시를 짓거나 필사할 때 한글독음만 적는 경우도 많았음.

174p. “우리의 과제는 과거 우리가 가졌던 조건을 통해 세계사적으로 유용한 보편적 질문을 던지는 것에 있다.”



언어를 알기 위해 언어가 쓰인 시대의 곳곳을 보러 다니는 요즘이다.

나의 반대편에 서서, '언어'에 주목하는 '역사'학자의 시선이라니 귀하다.


글발이 좋으시다. 곳곳의 유머와 쉬운 비유가 대중서와 전문서의 중간에서 균형을 만들어준다.

종교 의례 속 주문과 노래의 주술성을 해리포터의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로 비유한 건 정말 색달랐다.


저자가 고려에서 조선에 걸치는 연구주제로 학위를 하셔서인지, 고려시대의 우리말에 대해 분량이 많이 할애되어 있다. 연구가 적은 편인 고려시대의 우리말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가 소개하는 '차자 표기 시대'는 국어사 연구자의 설명 방식과는 또 다르다.

구결이나 이두나 향찰 같은 표기법의 세세한 특징이나 독법, 발달 과정 등에는 그다지 매이지 않는다.

그냥 '차자 시스템'으로 퉁치고(?), 그러한 체계가 고안되고 운용된 상황을 시대 전체의 맥락 안에서 살핀다.

역사학자의 관심은 차자표기법의 발달 과정이나 그것으로 알 수 있는 국어의 사적 변화가 아니라,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쓰려 했던 문자 생활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놓이기 때문일 듯하다.


사실 여러 주제의 글이 엮인 이 책으로부터, 저자인 역사학자가 왜 '한국사 속의 한글'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충분히 알 수는 없었다. (표지를 다라니경으로 선택한 이유도 여전히 미스테리다.)

역사학자의 입장에 서 보지 못한 내 한계일 것이다.

다만 국어사를 한다는 내가 (공부를 한들) '한글로 본 한국사' 같은 주제를 얼마나 풀어낼 수 있겠나 생각해 보면,

다른 분야의 자료와 연구를 깊이 있게 섭렵하고 이 주제를 공력 있게 다루어낸 저자가 대단할 뿐이다.




요즘 책을 많이 읽는다.

여러 분야에서 이렇게 재밌는 대중서가 많이 나와 있다는 점에 놀란다.

내 눈에 재미있는 대중서를 쓰는 필자 중에는 한문학자나 역사학자가 많다.

역사야 워낙 가진 자산이 크고 깊으니 대중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약간의 사명에 가까울 듯도 싶다.


인상적인 것은 한문학자의 글쓰기인데,

한문학자나 역사학자가 쓰는 글은 '시대 전체의 맥락' 위에서 쓰이고 있음을 본다.

한글 문헌은 필요할 때 들어 얘기할 수 있는 여러 사료 중 하나일 뿐이다.

종종 한글 문헌이 나오면 내 자식을 본듯 반갑다.

한글 문헌이 어떨 때 글감으로 선택되는지 본다.

같은 문헌에 얽히는 다른 시선으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얻는다.


당시의 기록은 대부분이 한문이었으니 한문학자가 시대를 읽는 넓이와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국어사 연구자는 손에 가진 것이 대체로 한글 문헌뿐이다.

한글 문헌을 통해 보는 조선은 여성과 평민까지 넓은 범위의 대중을 아우르겠지만 한편으로 제한적이다.

한문으로 이루어졌던 보편의 지식 세계를 미처 다 파악하기가 어렵다. 파악하는 연구자도 많겠지만, 나의 경우 종종 한계를 느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한자 활자는 수십만 점 소장되어 있는데, 한글 금속활자는 750여 점만 있다고 한다.

국어사 연구자로서 나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수의 한문 문헌이 그 시대의 분명한 주류였다는 사실을 늘 상기해야 한다.

그 주류의 역사 속에서 한글이 나름의 분명한 의미와 역할을 가졌던 것임을 인지해야 시대를 왜곡 없이 보게 될 것이다.



국어사 전공자는 대중에 얼마나 가까이 가고 있을까?

시선과 통찰, 글을 엮는 노하우, 시대를 보는 눈을 엿듣고 엿보며 스미도록 하고 싶다.

뭐든 꾸준히 무언가 쓰는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에, 읽는 책이라도 틈틈이 글로 남기며 습관을 만들기로.

제대로 된 글을 완성할 내공은 없어서, 뭐라고 쓰는지도 모를 글을 우선 일기장 밖에 내어놓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