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p. 안석주의 만문만화 중, "나는 문화주택만 지여주는 이면 일흔살도 괜찬아요"
73p. 테일러 형제가 운영한 테일러 상회, "태양 아래 모든 것을 수입했다"
78p. 딜쿠샤의 안팎을 돌봐주는 이들. 뭐든 척척 잘하던 김보이. 정원을 가꾸는 항두와 남두..
97p. 사교나 과시의 공간인 거실은 침실이나 부엌보다 훨씬 느리게, 중산층 이상의 집에서 발전. '대청', '마루', '마루방', '가족실'과 같은 과도기적 명칭을 거쳐 정착한 명칭 '거실'
231p. 우리나라 집에 살게 된 외국인들이 한옥을 고쳐 쓴 방식. 병풍은 방과 방의 칸막이로 요긴히 활용
235p. ‘빛이 관리되던 시대’ 전등의 재현
저자는 한국에 드문 '하우스 뮤지엄'을 구현하는 실내복원 전문가다.
국내에 같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적다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과 감각이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다.
사진 몇 장과 기록 몇 줄로 공간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이 책이 아니면 생각해볼 기회가 좀처럼 없다.
남이 쉽게 해보지 못할 자기 경험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필력까지 좋은 작가는 딜쿠샤 복원 과정을 르포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게 풀어나간다.
집주인 테일러 부부의 내력과 딜쿠샤를 지은 사연, 저자가 딜쿠샤 복원에 참여하게 된 이야기로 문을 연다.
뒤이어 딜쿠샤에서 일한 조선 사람들, 거울이며 장식, 소품 등 복원 과정에서 모은 하나하나의 조각들을 공간에 모아 붙이며 이야기가 깊어진다.
이질적인 문화가 만나는 시간과 공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침대도 벽난로도 없는 조선에 살게 된 서양인 부부는 어떻게 가정을 꾸려 나갔는가?
신령한 은행나무 옆에 집을 지으면 귀신 들린다는 마을 사람들의 눈초리 속에,
기쁜 마음의 집을 짓고 그곳에서 어울려 살고자 했던 테일러 가족의 이야기가 딜쿠샤란 공간에 담겨 있다.
책을 읽고 일주일 뒤, 한가로운 평일 낮에 방문한 딜쿠샤는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하나하나의 가구나 소품에 눈이 간다기보다 전체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따사로움에 행복하게 잠긴 시간이었다.
긴 세월을 건너 돌아온 공간을 소중히 지키는 관계자들이 여전히 사람 사는 집 같은 딜쿠샤를 완성해주고 있었다.
공간과 시간에 딱 맞는 재현품을 구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와 사물에 대해 깊숙이 알고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심미안도 생기고, 없는 조각을 꿰어 맞출 단서도 얻는다.
저자는 딜쿠샤를 복원하는 기나긴 여정 동안 근대 시기 사물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많아진 나머지(?),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를 쓰게 됐다고 한다.
역시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이 책의 여정에 <딜쿠샤>가 있었다니 놀랐다.
좋은 책을 쓰게 되는 생각의 궤도를 쫓아가는 것 역시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