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 대학원생의 해외 펠로우십
드디어 합격 연락이 왔다.
처음 프로그램을 소개 받은 것이 벌써 5개월 전.
펠로우십이라는 제도는 대학원 다닌 이후로 처음 들어봤다.
아직도 정확한 뜻을 모르겠지만, 박사 졸업 예정이거나 막 졸업한 사람이 연구를 수행하도록 재정 지원을 하는, 일종의 장학금 제도인 것 같다.
이공계 대학원생에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말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인문학, 그 중에서도 한국학, 그 중에서도 한국어사 전공자다.
외국 나가서 공부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해보고 살았다.
다른 전공이야 기회를 받아서든 만들어서든 외국에서 석박사도 따고 포닥도 하고 한다는데,
나는 한국어를 전공한 덕에 한국에서만 공부해도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영어는 원래부터 못했고 지금도 못한다.
'못한다'는 것이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그냥 딱 한국에서 영어 학원 다니고 수능 치고 딱 그만큼이다.
영어 논문이 눈에 안 들어와서 파파고 돌리고, 영어로 말해야 하면 어버버하는 딱 그만큼.
그마저도 전공을 국어로 정하는 바람에 대학부터 영어 할 일이 아예 없었다.
그런 내가 미국 유학이라니.
물론 1년짜리 단기 유학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학은 유학인데.
미국 땅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내가 미국 유학을 가도 되는 걸까?
그렇지만 어쨌든 기회를 얻었다.
내가 공부하는 분야는 늘 한국 땅 안에서 한국 사람들끼리만 논해 왔던 학문이지만,
이 분야에도 외부적인 시선이 필요하고, 그래야 한국학이 더 클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경험을 내가 할 생각은 못 해봤는데, 뜻밖에 좋은 학교에서 돈까지 지원받는 큰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으로 삼아, 준비 과정부터 10개월의 체류 동안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을 틈틈이 기록해 두려 한다.
대학원생의 이야기가 주로 이공계 대학원생에 의해 만들어져 왔고, 인문학 전공자가 무언가 하고자 할 때 정보를 얻기가 너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내가 부딪치며 느끼고 적어두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나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남을 위해서기도 한 일기장 밖의 일기를 틈틈이 써 보려 한다.
요컨대, 한국어사를 전공하는 박사 수료생이 미국에서 10개월의 인류학 펠로우십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글은, 된장찌개만 사랑하며 자란 토종 한국파가 밟아본 적도 없는 미국 땅에서 공부한 시간을 소중히 남기기 위해 틈틈이 기록할 사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