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다. 기억하지 못할 법한 나이에 일어난 작은 일도 곧잘 기억하곤 한다. 내게 남아 있는 이런 영유아기의 기억을 살펴보면, 별거인 경우도 있고, 별것이 아닌 일도 많다.
만 세 살이 거의 되었을 때 엄마, 아빠와 남아공의 땅끝에서 큰 돌 위에 올라가 펭귄들에게 먹이를 준 일(이제는 할 수 없는 관광이 되었다)이 끊기는 필름과도 같이 생각나고, 이집트에서 수많은 계단 중앙에 우뚝 선 코끼리 동상 앞에서 초록색 귀를 가진 내 애착 인형에게 사랑을 줬던 일들이 내 영유아기의 특별한 기억들이다.
그런데 반대로 내 고향인 아프리카 가나의 우리 집 앞 잔디에서 한참을 귀뚜라미 잡으며 놀던 날들, 밥을 안 먹겠다며 거부하는 내게 김에 밥을 싸서 한 입만 먹으라고 소리치며 나를 쫓아다니던 우리 엄마, 1994년도에 처음 가나에 가서 모든 회사 직원 및 가족들이 한 빌딩에서 살 때 생활하던 모습들도 기억난다. 굉장히 일상적인, 사람 사는 모습들이었다.
이런 특별한 날과 일상이 뒤섞여 나라는 사람을 이룬다. 그러나 일상과 특별한 날 중, 누구나 마음속에 특별한 기억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막상 생각해 보면 잔잔한 일상이 없었다면 특별한 날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특별히 좋은 기억이 그만큼 더 좋은 건 사실이다. 더 생생하고 애틋하게 느껴지기 마련이기에 더 마음에 두게 된다. 그런데 특별한 기억은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다. 이 특별함을 만들어주는 건 나의 잔잔하고 고요한 일상이라는 걸 잊고 싶지 않다. 일상을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건 그것이 매일 일어나는 일일지언정,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점이 아닐까? ‘특별한 날’이 단상의 1위 자리에 서서 금메달과 모든 환호를 받을 때,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은 ‘일상’이 있었기에 ‘특별한 날’이 주목을 받은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희소가치가 없지만 소중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컨대 공기와 같은 것 말이다. 공기는 희소가치가 없어서 특별하지는 않다. 내가 특별히 노력해야 얻어지는 환경이 아니고, 누구도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분쟁도, 이에 대한 나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어느 날부터 공기가 서서히 없어진다면? 그 후의 일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역시 무언가가 풍요롭다고 해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의 일상이 포함된다.
특별히 기쁜 날이 있고, 행복한 날, 우울한 날, 화나는 날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특별한 날들보다는 고요한 일상을 지내는 경우가 내게는 더 많다. 이런 날들이 연달아 이뤄지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이 이어진다는 건 그만큼 더 소중한 일인 것 같다. 언젠가 또 찾아올 특별한 날을 알아차리고, 기억 속에 이를 소중히 담아 일상으로 다시금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