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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로나 Feb 21. 2024

자립의 기둥들

나는 엄마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없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낳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으며 10대 초·중반까지 그와 같은 집에 살았다. 비록 그 여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매우 짧았지만 말이다. 그는 자녀들이 잠든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불규칙한 외출 시간이나 종종 들려오는 통화 내용을 생각했을 때 딱히 돈을 벌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취미 생활과 친구와의 교류로 바빴던 것 같다.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그는 부친과 불화했다. 부친과의 불화로 집구석에 들어오기 싫었겠지…라고 이해하기에는 이미 별거 중이었네? 결과적으로 나는 양친 둘 다 좀처럼 집에 없는 가정에서 성장하게 됐는데, 이때부터 자립은 내 화두였다. 



- 보호자라는 기둥

부친은 나의 결핍에 대해 당당하다. ‘엄마 역할’을 다할 거라 기대하며 경제활동에 몰두했고 그렇게 번 돈을 충분히 송금했는데 “그 여자”가 그걸 자신만을 위한 주머니에 넣었을 뿐, 자신은 ‘할 도리’ 다 했다는 입장이다. 이혼할 때 자녀들을 버리지 않고 거두고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은 다 한 자신이 얼마나 책임감 있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양친이 10대 때 이혼하며 나는 부친과 함께 살게 되었다.(1인 가구가 되기에는 이른 때이지 않은가?). 이혼 과정에서 친모가 나를 위자료를 더 많이 받기 위한 흥정의 도구로 삼았음을 알게 된 게 결정적인 계기라고 기억한다. 그 뒤 친모와 연을 끊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소식 들을 길이 없는데,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심지어 부고 소식이 들려도 별 감정 없을 것 같다. 너무 차가운가? 친모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모성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한다.


모친에 대해서는 기억도, 감정도 텅 비어 있지만 부친을 생각할 때는 다르다. 종종 복잡하고 뜨거운 감정이 솟아오른다. 거기에는 미움도 있다. 이상하다. 어째서 나를 모성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게 한 모친보다 “할 도리 다했다”는 부친이 더 미울까? 부친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구체적인 기억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혼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부친은 재혼했다. 내게 새로운 ‘엄마’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부친의 아내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에게 호감과 고마움을 가졌다. 그는 부친에게 ‘할 도리’ 다했다. 부친이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부친을 간병하며 곁에서 회복을 도왔던 이가 바로 그였다. 부친의 두 번째 부인과 부친의 서로를 향한 애정이 선명히 보였을 때, 나는 그 둘을 꽤 좋아했다. 그래서 부친의 두 번째 이혼이 더욱 아쉬웠다.


두 번째 이혼 뒤 2년이 지나지 않아 부친은 삼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과 세 번째 부인을 대하는 부친의 태도는 달랐다. 세 번째 부인에 대한 애정은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였다. 그럼에도 결혼한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이 선명히 읽혀 실망스러웠다.


내가 실망을 표하자 그는 자신이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세 번째 부인과 잘 사는 편이 자식에게도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부친 나름대로 ‘자립’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 


나는 부친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하다. 예전에 친구들에게 부친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말했을 때, 친구들은 자신들의 집안 사정을 예로 들며 부친을 추어올렸다. 돈 달라, 선물 사 달라, 병원 같이 가달라 번거롭게 하거나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는 부모를 가진 것이 얼마나 복 받은 일이냐고 말했다. 그런데, 고마우면서도 밉다. 그가 자식에게 할 도리를 다했다고 당당할 때마다 보호자에게 돌봄 받지 못해 꼬질꼬질했던, 부모와 함께 하라고 들려 보낸 숙제를 혼자 힘으로 조악하게 해간 뒤 선생에게 핀잔 당해 울며 교실 밖을 뛰쳐나갔던 유년기의 내가 떠오른다. 진로에 대해 터놓고 고민할 어른 없이 제한된 정보로 아쉬운 결정을 해야 했던 수능 직후의 나와, 과정에 대한 관심 없이 결과에 대해서만 평가했던 부친, 해외 체류 뒤 몸무게가 늘었다고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농담거리로 삼았던 그의 모습 등 기억의 파편이 떠오르면 미움도 함께 치솟는다.


분명 최악의 양육자는 아니었다. 내게 소리 지르거나 언어폭력을 퍼부은 적은 있지만, ‘줘팬’ 적은 없다. 그런데도 여태껏 응어리를 품고 있는 내가 속 좁다는 생각도 든다. 부친에게 기대를 품었고, 그것이 거듭 좌절됐기에 이러한 상태인 걸까? 어쩌면 나는 아직도 부친이 내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일말의 미안함을 표현해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백으로만 남은 모친에게는 기대도 미움도 없는데, 제 나름대로 책임지려 한 부친에게는 기대하고 실망하고 미움마저 느끼다니…. 부친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당당함을 표출하는지도 모르겠다. 부친은 내게 물었다. 

"나 때문에 독립심 있게 자란 거 아니냐? 나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의기양양함에 질려 한 동안 먼저 연락 안 했다. 그의 말마따나 ‘독립적으로’ 자라서 연락도 잘 안 하고 혼자 알아서 잘 살고 있다고 이해해주길 바라며. 문제는 나의 부친도 독립심 있는 남자라는 것. 그렇게 서로 연락 안하고 지낸 게 n년... 아무래도 나, 진정 불효자인 것 같다.(이런 생각에 이런 모임도 운영하게 됐는데, 관심 있으신 분은 다음 기수에 함께 하기를...)



- 정서적 기둥

부친의 말대로, 나는 일찍부터 독립적인 편이었다. 청소년기부터 스스로의 일을 직접 선택하고 그 선택을 책임지는 일을 반복하며 살았다. 이것은 자립을 구성하는 개념에서 중요한 자율성(autonomy)과 닿아 있기에, 스스로 자립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인식하며 자랑스러워했다. 부모가 만든 감옥의 안락함을 누리는 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숨 막히는 사례를 보며 내 상황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자립하지 못한 상태였음을 이제는 안다. 보호자로부터 관심과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한 성장 과정은 큰 구멍을 남겼고,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진정한 내 편은 없다는 감각과 지지자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으로 연애에 몰두했다. 그때는 그게 삶에서 너무 중요한 부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남미새 10년이었다.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제발 빨리 죽어주었으면 좋겠는’ 남자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다.


연애로 인한 에너지 낭비와 감정 소모가 지긋지긋해진 뒤에야 비로소 그 시간과 에너지를 규칙적인 운동과 취미 생활에 쓰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취미 부자’의 일대기가 펼쳐지는데… (이하 생략) 여러 취미를 전전하다 지금은 춤에 정착했다.


- 기둥은 다다익선

탱고는 내 신체를 더 건강하게 만들며 정서적인 충족감을 줬다. 탱고를 추기 시작한 뒤 애인이 있을 때도 느꼈던 외롭다는 감정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게 됐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단체 채팅방에 수십,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여 있고, 아주 사소한 구실에도 ‘벙개’나 뒤풀이가 열렸다. 생일이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도 외롭지 않았다. 열려 있는 밀롱가는 여럿이고 내키는 곳을 선택하여 방문하면 되므로.


한편으로 의심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가슴의 구멍이 너무 사라져도 문제 아닐까? 아니, 사람이 좀 결핍이 있어야 글도 쓰고 파이팅 넘치게 살지…. 또한 원가족과 떨어져 너무 만족스럽게 지내다 보니 부친 생각이 잘 안 났다. 이러면 불효 탈출이 요원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 토크를 하다 친구가 놀랐다.

 

“지금 일상을 채우는 것들 다 탱고랑 관련 있네? 신기하지 않아? 탱고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 완전 다른 일상을 살았을 거 아냐.” 


그 말을 듣고 경각심이 들었다.


자립은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기댈 수 있는 곳을 여러 군데로 늘려 각각의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라는 해석을 최근 접했다. 자신을 지탱하는 기둥 하나에 의존 말고 여러 개의 기둥을 만들라는 뜻일 테다. 일, 취미, 인간관계 등 각각의 기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내게 탱고라는 기둥이 너무 커진 것 아닐까? 탱고를 좀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살사를 시작했다….


진정 자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도 갖게 된다는 견해와도 마주했다.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자립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영향을 주고받으며 때때로 부모의 기둥이 되어주는 것이 이상적인 자립 상태인 걸까 고민하게 됐다. 뭐, 꼭 이상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번 설 연휴에는 오랜 숙원이었던 부친과 '안부 인사하기' 미션을 드디어 클리어했다! 올해 어버이날에는 한 번 찾아뵙기도 해야지….. 



자립에 대한 혼란 틈에도 여전히 굳건한 믿음이 있다. 몇 개의 기둥이 결여된 채 태어났을지라도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 개인의 의지와 커뮤니티의 도움이 있다면, 새로운 기둥은 세워진다는 것. 그리고 만약 당신이 새로 세울 기둥을 찾고 있다면, 마음 구멍의 크기가 작지 않다면 권할 것은 춤이다.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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