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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탱고>를 읽고

번역가 양반... 의역 좀 해주시지

by 메로나 Mar 05. 202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문학을 접하기도 전에, 탱고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먼저 만났다. 그의 마지막 신간(?)이라 할 수 있는 책, <탱고>를 통해서다. 1965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네 차례의 강연을 엮은 이 책은, 37년간 묻혀 있다가 보르헤스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만에 출간되었다.


전자책으로 읽음전자책으로 읽음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다가온 건, 그가 강연을 잘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강연 녹취를 거의 그대로 옮긴 듯 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종종 왔다 갔다 하는 주제와 훅훅 도약하는 전개, 고맥락적 발화로 좀 당혹스러웠다. 아마 아르헨티나 출신이거나 남미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 책을 쉽게 소화하기 어렵지 않을까? 의역과 적극적인 편집이 더해졌다면 더 읽기 쉬운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든다. 혹시 지금 이대로가 유족이 원한 결과였을까?


    -‘못된 집’과 아프리카  

흥미롭고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있었다. 보르헤스는 내가 만나본 탱고에 대해 말하는 이들 중 가장 권위 있는 인물이다. 1899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탱고의 전성기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니까. 그런 이가 탱고에 대해 흔히 알려진 통설을 뒤집는다.


그는 탱고가 ‘못된 집’(사창굴이나 유곽)에서 태어난 건 맞으나, 하층민의 춤만아니었다고 반박한다. 탱고의 주요 악기가 그 근거다. 만약 탱고가 철저히 대중적이고 변방의 춤이었다면 중심 악기가 기타가 되었을 텐데, 실제로는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반도네온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는 ‘못된 집’에 부잣집 도련님들도 드나들었기 때문이라고 보르헤스는 설명한다.


20대 때 보르헤스. 미남이시네요...20대 때 보르헤스. 미남이시네요...


그리고 바로 그들이 탱고를 파리로 가져갔다. 파리에서 탱고가 인정받고, 그 뒤 다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 지역의 중산층과 상류층이 탱고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아르헨티나인들이 명예 프랑스인이라 불릴 만큼 프랑스어를 알거나 아는 척했고, ‘라틴 아메리카’라는 단어조차 프랑스와의 관계를 강조하고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파리가 탱고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내 상상 이상으로 아르헨티나 사회에 큰 사건이었을 터였다.


‘탱고’라는 언어에 대해서도 널리 알려진 바와 다른 시각이 제시된다. 탱고가 ‘만지다’라는 뜻의 라틴어 탕헤레(Tangere)의 변형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에 보르헤스는 고개를 젓는다. ‘못된 집’의 단골들이 무슨 인문학자도 아니고 그렇게 학술적으로 이름을 붙였을 리 없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밀롱가처럼 탱고도 아프리카나 ‘아프리카 비슷한 곳’에서 왔을 거라고 추측한다. 이에 대해 비센테 로시의 <흑인들의 음악 세계>라는 책에서 등장하는 ‘토카 탕고’(toca tango)라는 구절을 제시하지만, 사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모호하다고 고백한다. 탱고가 아프리카 타악기에서 유래했는지, 몬테비데오 흑인들에 의해 탄생했는지 이 책만으로는 여전히 알 수 없다.(보르헤스가 강연을 잘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다.)


 - 탱고는 슬픈 사상이 아니다?  

보르헤스는 탱고 가사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가우초, 콤파드레, 콤파드리토, 파르테로, 타이타 기타 등등… 그가 그렇게 다양한 인물상을 말한 이유는, 탱고가 이들의 삶과 아르헨티나의 정신, 그리고 정체성을 담은 문화라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보르헤스는 특히 콤파드리토를 공들여 설명하는데, 그들에게서 낭만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들은 마치 마크 트웨인이 <유랑>에서 묘사한 건달들과 같았다고 한다. 횡사가 아닌 방식으로 죽는 것을 수치로 여겼던 무법자들. 대부분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며, 평온하고 온화한 시민들은 좀처럼 괴롭히지 않고, 자기들 부류가 아닌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자신의 명성을 해친다고 믿는 이들. 여자들을 등치며 살거나 행실이 불량한 사람이라기보다, 사람을 죽인 ‘불행에 빠진’ 사람들. 보르헤스는 그들의 ‘용기’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며 탱고가 “용기, 행복, 용감함 속에 자신을 찾으려는 행위, 낯선 사람들에 대한 도전”을 담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보르헤스는 탱고를 “춤추는 슬픈 사상”이라고 표현한 작가 엔리케 산토스 디세폴로의 정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는 탱고가 사상이라기보다 감정이며, 그중에서도 ‘슬픔’은 초기 탱고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또한 카를로스 가르델에게는 거의 원망의 감정을 비친다. 그로 인해 “처량하고 가엾은 탱고”로 변했다는 것이다. 가르델은 탱고를 통해 사랑과 이별, 상처를 극적으로 표현하며 거의 흐느꼈는데, 보르헤스는 이런 감성적이고 연극적인 요소들이 원래의 ‘콤파드리토 정신’과 무관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니 보르헤스… 약간 ‘나 때는’을 시전하는 것 같기도….


카를로스 가르델카를로스 가르델


    - 낭만의 시대... 그리고 탱고  

보르헤스는 “감자를 곁들인 고등어 요리/ 기름에 튀긴 소시지/ 내 옆에 있는 이 여자는/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해.” 같은 가사를 매우 좋아하며 흥얼거렸다고 한다. 이런 그의 취향에 비추어 볼 때, 보르헤스는 직관적인 즐거움과 유쾌함이 가득한 탱고를 지향한 듯 보인다. 이것은 (너무 마초적인 부분은 빼고) 내가 탱고를 좋아하는 부분과도 닿아있다. 나는 특히 서로 장난을 주고받듯 즐겁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춤추는 탱고를 좋아하므로.


<탱고>를 통해 보르헤스가 밝힌 예술관 역시 비슷한 결로 느껴진다. 그는 영속적인 예술을 만드는 방법은 너무 심각하게 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너무 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으면서, 약간 즐겁고 심심풀이로 여기는 것. 현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잠재의식이, 혹은 뮤즈나 성령이 작용하도록 놔두는 것.”이라고.


보르헤스보르헤스


강연의 막바지에 보르헤스가 그의 친구들, 용감하고 자유로운 영혼들이 사라졌음을 애도하며, 탱고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묘한 감동을 느꼈다.


과거가 단순히 시간이 아니라 공간 속의 장소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고서 말합니다.

  어디에 있을까? 나는 되뇐다. 먼지 이는
  뒷골목에 혹은 외딴 마을에
  단도와 용기로 살았던 사람들이
  세웠던 암흑가의 세계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 다음 나는 이름 없는 그 모든 사람을, 조국의 여러 장소에서 죽은 그 모든 사람을 생각합니다.


(...) 우리는 오래된 옛 탱고를 들으면서 기뻐하면서도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다음 나는 탱고가 우리 모두에게 상상의 과거를 주며, 탱고를 들으면서 우리가 모두 마술에 걸린 것처럼 ‘변두리의 길모퉁이에서 싸우다가 죽었다’고 느낀다고 말합니다.


(...) 탱고는, 아니 무엇보다도 밀롱가는 행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이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나는 아르헨티나의 정신 속에는 무언가가 있다고, 때때로 무명이기도 한 그 서민들이, 그 변두리의 작곡가들이 구해 낸 무언가가 있으며, 그 무언가는 곧 돌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탱고를 연구하는 것은 헛되고 소용없는 행위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영혼의 다양한 변화와 변천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것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지?' '지금 이게 무슨 흐름이지? 옆길로 샌 거 아닌가?' 의아한 부분도 있었고 낯선 단어의 홍수 속에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읽고 나니 뭔가 탱고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를, 탱고를, 그리고 보르헤스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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