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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Oct 10. 2020

#04 베를린에서의 기억을 담은 스노우볼

골동품점에 들어온 네 번째 물건

물건 주인의 말

여행지를 담은 스노우볼을 기념품으로 사 온다는 것은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곳에서 만난 풍경, 사람, 감정들을 유리구슬 안에 함께 담아다가 그리워하기 위함이겠죠. 그래서 같은 모양의 스노우 볼이라도 각자의 머릿속에 다르게 보이나 봐요. 이 스노우볼에 당신만의 기억을 담아보세요.





가게 주인의 말

몇 날 며칠을 함께해도 금방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몇 분을 스쳐도 평생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나에겐 홀로 떠난 독일 여행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가 그러하다. 그분을 만난 장소는 베를린 현대 미술관이었다.
앤디 워홀의 대형 실크스크린 그림 앞에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중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얼마 만에 들어본 모국어인지. 친숙한 목소리 쪽으로 눈을 돌리니 60-70대로 보이는 흰머리의 동양인 할아버지가 검은 미술관 가이드 양복을 입고 서 계셨다. 그분은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죄송할 정도로 맑은 눈빛과 정정한 목소리를 가지신 분이셨다. 
“한국인이세요?”
“네.”
혼자 여행을 하던지라 원하는 곳에서 바로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어 아쉬웠는데 마침 잘 됐다는 생각에 
여기서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세요 하며 평소 좋아하던 키스 해링의 작품 앞에서 핸드폰 카메라를 건네드렸다. 폰 사진이라고는 찍어본 적이 없으신지, 굉장히 어색한 손길로 핸드폰을 잡으시더니 초점과 수평이 다 나가버린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아주셨다. 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사진 속에서는 100m 달리기를 하다 찍힌 사진 같았다. 다시 찍어달라기에는 이미 기대가 사라진지라 그냥 순간을 담아주심에 감사했다. 알아듣지 못할 언어만이 난무하던 타지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모국의 정을 느낀 건지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다.


“저도 한 장 찍어드릴게요. 여기 서보세요!”
“아… 정말요?”
“네!”

할아버지는 카메라 앞에서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진을 찍은 뒤 말씀하셨다.
“제가 일하는 모습을 찍은 게 처음이에요. 혹시 그 사진, 이메일 알려줄 테니 보내줄 수 있을까요?”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할아버지의 이메일이 적힌 명함을 받았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방향의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 위에서 퇴근하시는 할아버지와 또 우연히 마주쳤다. 그리고 같은 지하철을 타고 3 정거장 정도를 함께 가면서 할아버지께서 독일에 정착하게 되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신은 기러기 아빠이며 부인과 자녀는 한국에 있다는 것, 청년 시절 독일의 광부로 들어오게 된 이후로 계속 혼자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타지에서 홀로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몇 분이나 봤다고 나는 할아버지의 과거를 훑는 상상을 하는 걸까. 


"다시 독일에 오게 되면 같이 밥이나 한번 먹어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는 지하철에서 내리셨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할아버지께 받은 명함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주머니에 대충 넣어두었더니 어딘가 흘렸나 보다. 슬픈 실수였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할아버지와 약속했던 일이 계속 생각났다. 결국, 어설픈 영작 실력으로 베를린 현대미술관 대표 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썼다. 중요한 것이니 키스 해링 작품 앞의 동양인 가이드분께 전달해달라는 글과 함께 할아버지가 찍힌 사진을 첨부했다.  
 

다행히도 며칠 후, 할아버지께 아래와 같은 답장이 왔다.



이곳 박물관을 통해서 보내주신 소식을 반갑게 받아보았습니다.
이 편지(메일 인쇄본인 듯하다.)를 어제 오후 두 시쯤에 직장 동료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를 근무복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다희 님께서 보내주신 글월에 대한 회답을 오늘에야 보내드립니다.
저를 잊지 않고 소식을 보내주신 데 대해 고맙고 반가왔습니다.
베를린에 오셔서 저의 집에서 저녁이라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다음에는 누추하지만 꼭 우리 집에 오셔서 맥주도 마시고 밥도 같이 먹읍시다.
즐거운 성탄절을 즐겁게 보내시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편지글에는 할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 느껴지는 어투와 단어들이 담겨있었다. 그 이후에도 또 하나의 메일이 왔지만 당시 메일함 관리를 하지 않았던 나는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메일을 확인했고 아래와 같이 회신했다.



저를 잊지 않고 다시 메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글 메일을 자주 확인하지 않아 이제야 답장하게 된 점 죄송해요. 벌써 베를린에 다녀간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작년, 한국에 돌아와 디자인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 꼭 한 번 다시 가고 싶은데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져 아쉽습니다. 이번 가을 이후나, 내년쯤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가서 연락드릴게요. 이번 연도도 힘내시고 기쁜 일 많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40여 살 정도 많은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는 건 처음이라, 나도 괜히 더 정중하게 답장을 적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3년이 지난 지금, 안타깝게도 베를린에 다시 가는 일은 없었다. 돈 모아서 다시 여행을 가려고 했던 계획은 코로나 때문에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실까. 다시 찾아 뵐 때까지 할아버지의 맑은 눈은 잊어버리진 말아야지.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따듯해지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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