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는 돌아가신 분을 우연히 한 번 본 적이 있다. 내 친구의 친정엄마다. 친구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친정엄마를 사우나에 모시고 와, 그곳에서 조우했다. 그분은 나의 친정엄마보다 4살 정도 아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이미 친구는 자신의 엄마의 치매 기를 걱정하고 있었다.
친구는 두 해 반 전, 서울에 혼자 살고 있던 친정엄마와 살림을 합쳤다. 한강 변에 있던 그녀의 친정엄마의 집이 재건축된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치매가 시작된 엄마를 모시고 싶은 마음이 크다'라고 했다. 물론 친구의 ‘훌륭한’ 남편이 기꺼이 동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치매 기가 있는 친정엄마와 딸의 동거생활'이 궁금하여 이사 간 친구에게 자주 안부 전화를 했다. 친구는 매일 아침, 예쁜 잔에 모닝커피를 시작으로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노모의 입맛에 맞는 반찬을 준비하여 정성껏 아침상을 차려드린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래 모계(母系) 사회가 정답이었어’를 맘속으로 외치며 친구를 몹시 부러워했다.
친구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친정엄마의 치매 기는 살림을 합친 지 두 해를 넘기면서 그녀를 지치게 하는 눈치였다. 사위와 딸을 의심하며 ‘억지소리’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손을 대기만 해도 아프다며 짜증과 역정이 그녀가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급기야 그녀의 엄마는 배변 실수까지 해 그녀를 곤혹스럽게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친구가 그녀의 친정엄마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던 즈음부터, 나는 가능한 한 매일 그녀와 통화했다. 출근길에 여의치 않으면 퇴근길에 전화했다. 왠지 모르지만, 비슷한 연령대 노모를 곁에 둔 딸로서 동병상련의 감정 때문인지 그렇게라도 친구를 위로하고 싶었다. 전화 내용은 별거 없었다. 그냥 친구가 전하는 친구 엄마와 그녀 간의 답답한 상황을 들어주는 거뿐이었다.
4월 중순께 직장 일에 쫓겨 며칠 만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전화벨이 몇 차례 울리고 느지막이 전화를 받은 친구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친구는 자신의 엄마가 신장암 말기라는 천정 벽력의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엄마가 아프다고 말씀하는 것이 치매 증상의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암 때문에 정말 아프셨던 거였어요. 나 어쩌면 좋아요...”
친구는 흐느꼈다. 환자 당사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병인 암과 환자 가족들에게 가장 힘든 병인 치매, 이 두 가지 고약한 병을 동시에 앓고 있었던 친구 엄마. 친구의 흐느낌에는 오만가지 감정이 복받치는 것이 느껴졌다.
팔십이 넘은 노인의 몸속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진행된 그 암은 자식들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두 달 반 만에 친구 엄마를 하늘나라로 데려갔다.
나의 친정엄마는 종종 그 친구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엄마는 사위와 함께 사는 그 친구 엄마의 상황을 궁금해했다. 아마도 엄마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하니, 계속 맘에 쓰였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초기에는 친구에게 전해 들은 대로 '호강하는' 그분의 근황을 전했다. 하지만 친구가 힘들어하는 순간부터는 그냥 얼버무리며 답했다. 치매 증상이 악화되어 친구가 몹시 힘들어한다는 말이 엄마를 혹시라도 불편하게 할 것 같아서다.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을 갈 때도, 갔다 온 뒤에도 굳이 친구 엄마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친구 엄마의 장례식장을 다녀온 지 일주일 즈음 지난 어느 날, 엄마는 또 뜬금없이 친구 엄마가 잘 계시냐고 물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계속 둘러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어... 암 때문에 두 달 반 정도 고생하시다가 며칠 전에 돌아가셨어...”
그동안 치매 때문에 사위와 딸이 많이 고생했다는 말과 이상한 암 때문에 많이 아파하셨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발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안 아프고 죽어야 할 텐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걱정 가득한 눈으로 한 숨을 내쉬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나의 명치께가 아릿했다.
나는 나의 엄마가 아주 곱게 돌아가실 거라고 믿고 있다. 돌아가실 때 써야 할 힘까지 탈탈 털어 자식을 위해 쓰고 돌아가실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상 돌아가실 때는 힘없이 잠자듯 스르륵 조용히 이생과 이별하실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는 너무나 슬프지만, 엄마의 소원처럼 말이다.(2021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