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얼라잎 Oct 17. 2024

08. 벌써 네 시

나의 현실 자각 타임에 떠오르는 과거 타인의 현실 자각 타임에 관한 상념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즈음의 일이다.

내가 기억이 나는 유아기 시점부터 그 당시까지 우리 가족은 계속 한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그 즈음 부모님은 서울 모 처에 짓는 아파트의 청약에 당첨되었다. 그 때까지 살던 우리집이 전셋집이었는지 우리집인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청약에 당첨되었으니 아무래도 무주택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튼 엄마가 청약에 당첨되어 기뻐했던 기억이 어렴풋 난다. 아빠도 함께 기뻐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유는 당시 새벽에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고 주말까지 출근하곤 했던 바쁘던 아빠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부랴부랴 계약금을 마련 하고 이사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 집 입주가 얼마 안남은 시점, 서울 소재 회사 본사에 근무하던 아빠가 지방 소도시의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난생 처음으로 청약에 당첨되어 괜찮은 동네의 새 집에 둥지를 틀 생각으로 부풀어있던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그 때는 어린 마음에 단순하게 ‘아, 엄마가 새집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속상한 가보다’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에 돌아보면, 그 때의 엄마의 심정은 단순히 새 집에 들어가지 못한 서운함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훨씬 복잡한 것이었을 테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나의 엄마는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두 아이들을 좀 더 좋은 동네에서 공부 시킬 수 있겠다며 기대에 부풀어 있던 중 별안간 아이들을 시골로 전학시켜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고는 아마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또 빠듯한 살림에 계약금과 중도금을 내기 위해 거실이 없는 집으로 급하게 이사까지 감행해가며 그렇게도 어렵게 장만한 그 집에 발도 들이지 못한 채 세입자에게 새 집을 내줘야하는 상황이 몹시도 개탄스러웠을 것 같다. 자가나 전세 가릴 것 없이 사람들에게 새 집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그 후로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그렇게 애달팠던 엄마는 망연자실할 겨를도 없이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자마자 또다시 분주해졌을 것이다. 집에 들일 세입자를 구해야 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발령지에 아이들 학교를 알아보고 그 곳에서 살 집을 구해야했을테니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당시 엄마는 마음이 힘든 것은 물론 무척이나 바쁘고 육체적으로도 고단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느끼기에도 무언가 어수선하고 분주하고, 엄마는 애처로웠던 그 당시의 어느 날이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잠시 집에 두고 ‘볼 일을 보러’ 밖에 나가셨다. 필시 부동산이나 은행업무 같은 것이었으리라. 나와 동생은 좁아터진 집의 거실 겸 안방에서 심심함을 견디지 못하고 방 안의 온갖 물건들을 뒤져 가지고 놀다 지쳐 둘 다 낮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 까, 잠결에 어떤 기척을 느껴 살며시 눈을 떴는데 엄마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환하고 행복에 겨운 천사같은 미소. 어리던 나는 잠결에도 ‘엄마가 이 상황에 왜 갑자기 나를 보고 웃고 있을까’라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나는 엄마가 잠든 나를 가까이서 내려다보며 후광(방 천장 형광등) 속에 환히 웃고있던 그 영화같은 장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친구들 중에 유난히 과거에 함께 겪었던 일을 잘 기억해서 친구 무리를 놀라게 하고, 디테일한 것까지 끄집어 내 그 무리를 배꼽 빠지도록 웃게 만드는 친구가 하나씩 있다. 반면 나는 그 ‘기억력 대마왕’ 친구들이 소환하는 추억들 중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한 친구이다. 친구들이 “야, 대체 얘한테 뭘 기억나냐고 물어!” 하며 진저리를 칠만큼 나는 지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매우 중요하고 큰 사건이 있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는데, 하물며 그 사건의 디테일을 기억하랴. 이런 나인데도 그 날 잠든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과 디테일은 너무도 선명하다. 겨울이라 엄마는 모직 코트를 입고 있었고, 겨울이면 추위로 항상 빨갛던 엄마의 코는 그 날 아랫목에서도 매우 차가웠다. 엄마는 집에 돌아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잠든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날의 엄마는 피곤스러운 볼 일을 보고 부리나케 돌아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나를 그런 행복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 또, 벌써 4시야!”

오늘도 어김없이 4시에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마중하러 집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내뱉는 말이다.

나는 학창 시절 10분간의 달콤한 쉬는 시간 중에 울리는 수업 시작 종소리를 들었을 때의 심정과 비슷한 것으로, 곧 교실에 들어오실 다음 교시 선생님을 기다리는 태도와 비슷한 것으로(단정짓긴 어렵지만 기다림과는 거리가 먼)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를 기다린다.


아이가 타고 다니는 노란 유치원 버스의 정면에는 팬더 눈이 크게 그려져 있어 우리는 그것을 팬더 버스라고 부른다.

저 멀리서 팬더 눈이 내게로 돌진해온다.

나는 들고있던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아이가 팬더의 뱃속에서 꿈틀대며 걸어 나온다.

무자비하게 열어 제껴진 팬더 배의 그로테스크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표정으로 아이가 팬더의 뱃속에서 튀어나오며 “엄마!!!” 하고 포효한다.

배가 찢긴 팬더가 포효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임에도 포효의 주체가 그저 행복한 표정의 내 딸이라는게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이것이 실제 상황이다.


아이가 “엄마!” 하고 짐승에 울음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등장하는 이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나는 그 순간 마블(Marvel)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능력처럼 포탈을 통해 일순간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아이가 팬더 뱃속에서 나타나는 순간 갑자기 새로운 세상으로 순식간에 이동해 있는데, 그 신비한 느낌은 좀처럼 설명하기가 어렵다. 뭔가 엄청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도 같고, 오랜 시간 깜깜하고 고요한 물속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급히 물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한 번 또 있는데, 내가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이가 자는 침대로 기어들어가 바르게 누워 눈을 감고 잠들기 전 더듬더듬 저 멀리 떨어져 자는 아이의 손을 찾아 잡았을 때이다. 쉴새없이 분주했던 하루, 그만큼 고단해진 몸으로, 잘 시간이 되어 졸린건지 너무 피곤해 정신을 잃기 직전인건지 아니면 둘 다인건지 구분이 안되던 그 순간에 작고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매번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그래, 내가 얘때문에 지금 이 시간까지 바빴지. 얘랑 같이 행복하려고.
내가 그러려고 오늘도 이렇게 힘들었지 참.


이렇듯 내가 오늘 하루 분주하고 고단했던 이유를 비로소 깨닫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에 들곤 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할 때면 종종 떠오르는 과거의 한 장면이 있으니, 바로 앞서 늘어놓았던 나의 어릴적 우리 가족의 안타까운 청약 당첨 사건과 그것을 수습하던 엄마의 처연함과 분주함이다.




분명 마음이 무척이나 괴로웠을 엄마는, 하나, 그 괴로운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바빴던 엄마는, 아직은 초등학생인 아이 둘을 집에 두고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외출했던 그 엄마는 무엇에 쫓기듯 분주했을 것이다. 그렇게 무슨 정신으로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모를만큼 종종거리며 여기저기 다녔을 엄마는 서둘러 집에 돌아와 아이들은 잘 있을지, 무슨 일은 없었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선다. 분명히 시끌시끌 우당탕탕 소리가 1층에서부터 들려야 하는데 웬일인지 조용하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계단을 한 달음에 올라와 집 문을 열고 들어온 엄마는 거실 겸 안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채 아랫목에서 조용히 잠든 아이들을 발견한다. 잘 지내다 못해 동생까지 낮잠을 재우고 함께 잠든 큰 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엄마는 깨달았을 것이다.


아, 내가 얘들 때문에 지금까지 이 추위에 동동거리며 여기저기 다니다 왔지 참. 얘들이랑 행복하려고. 맞다.


엄마가 되고나니 오래 전 내 엄마의 그 행동의, 표정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요즘 들어 내 엄마의,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어 무척이나 앳되던 내 엄마의, 

고단함도 잊은 채 그저 행복하게 웃고있던 그 표정이 더 자주 떠오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